한반도 실행계획 3
윤 비서관은 최근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가안보실 제2차장 산하 통일정책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창립멤버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재단에서만 잔뼈가 굵은 윤 비서관을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최 실장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문제와 북한문제에 정통하여 정부의 통일정책을 대통령의 철학과 공유하면서 입안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했던 것이다.
국가안보실의 제2차장은 과거 외교안보수석의 업무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교정책비서관과의 통일된 정책공유가 윤 비서관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국문제만큼은 항상 미세한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사드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를 사실상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로 편입되는 것으로 의심했다.
강력한 사드 레이더로 중국 동북부지방에 집중 배치된 탄도미사일 둥펑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 큰 위협으로 인식했다.
미중 간의 전면전에 대비하여 미국은 모든 영역에서 항모전단을 중국본토로 접근시킨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방어 전략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드로 탄도미사일이 무력화된다면 그래서 미 항모전단이 거침없이 중국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사드는 미중 양국의 군사적 균형을 깨는 심각한 공격용 무기로 간주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윤 비서관의 생각은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있었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사드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치 중화제국이 변방의 속국 길들이기 하듯이 한국 길들이기의 전략도 포함돼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이란 존재는 미국이라는 현실의 적과 직접적인 대치를 막아주는 완충지대로 인식되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의 관계로 말이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온갖 망나니짓을 다하더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카드라는 뜻이다.
윤 비서관은 이 대목에서도 일반적인 생각 이상을 했다.
동북공정의 최종단계는 고구려 발해의 역사나 유물현장을 중국의 것으로 왜곡하는 단계에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섬뜩하게도 옛 고구려영토의 완전한 중국병합이 그들의 최종 목표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윤 비서관은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한 특별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별도의 TF팀을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최근까지도 자신이 이끌었던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 2실 제3팀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이 문제로 서 교수님을 찾아뵀을 때 교수님께서 제안하신 방안이었다.
“재단의 제3팀이 본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정책수립을 주 임무로 하는 팀이지 않은가,
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은 반드시 동북공정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인데 이것을 간파하는 학자들이 많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일세,
대통령께서 자네에게 부여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얼마 전까지 자네가 이끌었던 제3팀을 활용하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네만,
우리 간이니 하는 말이지만 사실 제3팀만 한 역량을 갖춘 팀을 그것도 짧은 시일 안에 새롭게 구축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네,
적어도 통일문제만큼은 이십 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함축된 우리나라 최고의 능력집단이 아닌가 말일세,
자네가 만든 자네의 팀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의 현재 처지가 조직을 떠난 입장인지라…”
잘 우러난 녹차 잔을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서 교수가 얼굴에 잔뜩 미소를 머금고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오히려 이사장님께서도 기뻐하실 거야,
자네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지원하실 분이시지,
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인데 다 같이 협조해야지,
자네 후임이 된 장 팀장 그 친구가 아마도 자네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하는 연구원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예, 제 눈빛만 봐도 저의 생각을 훤히 읽는 친구죠,
우리 3팀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최상의 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자네들을 재단에 추천한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네,
오천 년 우리 민족사가 질곡의 연속이었지만 끝내 중국에 복속되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의 DNA가 우수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독도전쟁 이후 우리 민족은 그야말로 거센 바람 앞의 등잔불같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지만, 어쩌면 이것이 기적처럼 찾아온 민족통일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시기 자네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엄청 무거워이, 잘해 주리라 믿겠네!”
서 교수의 말처럼 절체절명의 이 위기를 통일의 기회로 되살려내기 위해서는 그 밑그림을 탄탄하게 잘 그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로 민족 사학자인 서 교수와 양 이사장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 윤 비서관은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 2실 제3팀에서 그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사안의 성격상 정책팀의 존재여부는 우리 정부 내에서도 A급 대외비에 해당되었고, 팀의 책임자인 윤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직보 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거리에는 6월 중순의 산들바람이 불어와 낭만의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업되었다.
윤 비서관은 종종 팀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 후 이 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딱딱한 사무실보다는 넓은 공간에서의 대화가 사고의 폭을 넓힌다는 선입견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서관님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돌파구라고나 할까요?”
이 말에 윤 비서관의 표정이 밝아지며 장 팀장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면서 말했다.
“해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지?”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독도전쟁 직후부터 팀 내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정책팀이 구성되기 이전부터 논의를 하고 있었단 말이지?”
“네!”
지금부터의 대화는 거리에서 자유롭게 나눌만한 그런 무심한 주제가 아니다.
윤 비서관이 앞장서서 익숙한 발걸음으로 거리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찻집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어김없이 간판에 매달린 작은 종에서 울려 퍼지는 청아한 종소리가 오랜 단골손님을 먼저 알아보고 반겼다.
‘커피가 있는 찻집 풍경’이란 나무간판이 미풍에 흔들리면서 종소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 아래 육중하게 생긴 목문을 열고 들어가자 갓 볶아낸 구수한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 찻집의 매력은 전통찻집이면서도 커피 향이 진동하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취향들이 자유롭게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와 근방을 지날 때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자주 찾는 곳이 되었다.
윤 비서관은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는 언제나처럼 가볍지 않은 대화나누기에 적당한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다.
“장 팀장이 찾은 돌파구가 뭔지 어디 보따리 구경을 한번 해볼까?”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그 속에 해답이 보일 것 같습니다”
해답이 보인다는 장 팀장의 말에 윤 비서관은 하려던 말조차 아끼며 더욱 귀를 쫑긋거렸다.
“그전에 우리 팀의 이름을 생각해 봤는데요, 팀원들 간에 좀 의외의 이름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삼일특공대라고…”
“삼일특공대? 뜬금없이 웬 특공대?”
“지난 삼일절에 독도에서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흑군파가 맞붙었던 사고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이 자신들을 삼일특공대라고 불렀다 합니다,
따지고 보면 독도전쟁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고 110년 전 삼일독립운동의 맥을 이어나가면서 그 속에서 해답을 찾아보자는 취지입니다,
외세의 방해를 물리치고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한 정책개발이 목적이라면 특공대와 같이 민첩하게 치고 나가자는 뜻에서 의견을 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