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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21)

한반도 실행계획 5

by 맥도강

6월의 마지막 늦은 밤 시간, 대통령이 윤 비서관을 호출했다.

그렇잖아도 정책과제의 초안이 완성되어 보고드릴 참이었는데 잘된 일이다.

윤 비서관은 보고서를 지참하고 재단사무실에서 서둘러 청와대로 향했다.

딱히 정해둔 일정이 없어도 무시로 대통령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에 윤 비서관은 가능하면 청와대와 재단사무실이 있는 서대문구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삼일정책팀과 관련된 지시나 보고가 있을 경우는 간혹 최 실장이 동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늘처럼 대부분 두 사람만의 독대가 이루어졌다.


집무실의 소파에 대통령과 마주 앉은 윤 비서관은 준비해 간 서류봉투에서 삼일팀이 작성한 보고서를 꺼냈다.

십오 쪽 분량의 ‘한반도 실행계획 초안’을 건네받은 대통령의 표정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붉은 사인펜을 손에 쥐더니 즉석에서 정독 모드로 돌입하여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갔다.

중요대목은 붉은 사인펜으로 밑줄을 치기고 하고 별표를 그리기도 하면서 삼십여 분을 그렇게 보고서 읽기에만 집중한 끝에 드디어 마지막장을 넘겼다.


보고서를 내려놓은 대통령이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치며 말했다.

“제1단계는 남북한의 전면적인 여행자유화가 핵심이군요,

그것도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시급하게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선제공격의 과녁을 흩트려서 전쟁을 막아보자는 말인데 그렇죠?”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그다음의 제2단계부터가 본격적인 통일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징적인 의미의 코리아연방정부를 구성하여 최소 십 년 이상의 충분한 숙성기간을 가진 이후 제3단계의 완전한 통일체로 나아가는 전개과정입니다”

“코리아연방정부라 대단히 흥미롭군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흥분됩니다,

그런데 제1단계의 남북 간 자유왕래는 독일의 통일과정을 참고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대통령님께서 제게 독일의 통일과정을 살펴보라는 말씀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화두가 되었다는 윤 비서관의 말에 대통령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우리 정책팀이 포인트는 잘 잡았습니다만 과연 북한 당국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겠군요,

남북 간의 자유왕래가 시작된다는 것은 북의 입장에서는 체제의 유지와 직결된 문제라서 정 위원장으로서도 결단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특히 군부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심상찮은 분위기로 볼 때 정 위원장으로서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중요한 변수는 중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요? 오히려 중국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네 대통령님, 최근 정 위원장의 고민은 중국에 대한 딜레마가 아닌지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의도를 알아차린 정 위원장이 중국을 멀리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동공이 부릅떠지고 있었다.

“중국의 의도?”

“네 동북공정입니다! 정확하게는 동북공정의 제3단계 영토문제입니다”

“계속해 보세요?”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고구려족은 중국변방 소수민족의 하나였고 고구려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역사교과서에는 고조선부터 부여 발해까지 현재의 중국영토 안에서 존재했던 우리 민족사를 통째로 중국사로 왜곡하고 있고요,

이것이 동북공정의 제1단계입니다,

제2단계부터는 실천단계로서 우리 고대사 유적지의 여러 현장들을 중국식으로 복원하는 유적지조작 단계인데 제2단계의 작업도 이미 오래전에 끝이난 상태입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사의 흔적들이 몽땅 거리 지워진 상황으로 보시면 됩니다”


대통령이 안경을 벗어 눈자위 주변을 손수건으로 압박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몰려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행위다.

“동북공정의 제3단계가 영토문제라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이죠?”

“고조선이? 부여가? 고구려가? 발해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소수민족이었다면, 이들이 지배했던 동북 3성 일대는 물론이고 한강 이북의 한반도마저도 역사적으로는 중국의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대단히 기분 나쁜 비약이군요!”

윤 비서관도 이 정도에서 멈추고 싶었지만 비약이라는 대통령의 말속에 담긴 안일한 인식을 흔들어주고 싶었다.

“실제로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한 1950년 이후 일정기간 괴뢰정권을 내세웠다가 서장자치구란 이름으로 편입시킨 것은 1965년이었습니다,

1986년부터 10년간 진행된 서남공정으로 티베트는 이제 중국의 역사 속으로 온전히 녹아들고 말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의 논리는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티베트의 현실이 앞으로 우리 민족이 겪게 될 동북공정의 제3단계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동북공정을 과거의 역사문제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이제 윤 비서관의 도움으로 동북공정의 실체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닌 미래의 영토가 걸린 현실의 문제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윤 비서관이 생각하는 대응책을 말해보세요?”

“중국이 시작한 역사전쟁에서 우리 민족은 한 치도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시작해야 합니다,

북한 또한 동북공정이 지향하는 최종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심으로는 극도로 중국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폼페이오 회고록에도 나와있듯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을 만큼 중국의 야욕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음,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데 맞아요!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장은 선제공격부터 막아내야 하는데… 임박한 북미전쟁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도 큽니다!”


대통령은 지금 미국의 선제공격이 현실화되었을 때 한반도에 불어 닥칠 참담한 현실을 꿰뚫고 있었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몸서리치듯 말했다.

“어떻게든 미국이 일으키고자 하는 지금 이 전쟁을 막아내야 합니다!”

“어쩌면 대통령님! 북중접경지에 배치된 중국군의 동태를 살펴보면 베이징의 현재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군의 선제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백악관의 결정을 저지하기 위한 그 어떤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도 유의 깊게 살펴볼 대목입니다”

“음, 중국이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이번 참에 동북공정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베이징의 의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자칫 북한 단독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까지 합세하는 3개국의 협공을 감당해 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어 몰릴 수도 있습니다, 대비해야 합니다!”

“… …”


윤 비서관은 지금 앞으로 한반도에 불어 닥쳐올 수 있는 위기상황들을 점검해 보았다.

그가 이끄는 삼일팀은 동북공정이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하는 중국의 한가로운 국가정책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선제공격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중국이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이 전쟁은 북한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전쟁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결말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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