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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22)

위기의 순간 1

by 맥도강

한편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북경에서는 이번 기회에 그들의 오랜 숙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겉으로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닌 척 위장하고 있었지만 물밑에서는 전략회의를 거듭하면서 숨 가쁘게 움직였다.


청나라 시대의 전통복장이 잘 어울리는 사회과학원의 허 원장이 원장집무실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회과학원은 동북공정의 총본산인 변강사지연구중심을 직접 지휘하는 입장이라 허 원장이 동북공정의 사실상 책임자라 할 수 있다.

어젯밤 중앙군사위원회의 부주석이 극비리에 회합을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북한군부 관리 사업에 대한 중요한 논의가 있었다.

독도전쟁 이후 미국의 선제공격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북한군부의 일부 세력이 은밀히 군부에 접근해 왔다고 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현실화된 마당에 북한군부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의탁하여 그들의 권력과 안전을 도모하려는 뜻이다.

이제야말로 그 질긴 고구려 민족세력을 제거하고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해 온 동북공정의 대미를 장식할 때가 되었다는 말인데.

그러나 방심은 금물, 21년 전의 악몽이 지금도 선연하지 않은가,

정 위원장의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에도 북한 군부를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하여 중국으로 복속시키려던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무산된 적이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허 원장은 장백산천지회의 왕 회장을 떠올리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당시 왕 회장의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하여 다된 일이 뒤틀어졌다고 생각해 온 터라 그 자만 생각하면 심기가 불편해졌다.


북경의 시 주석 집무실은 밤늦은 시각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독도전쟁이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 속에서 시 주석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중대한 결단을 단행했지만 이후 번민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작은 돌섬 하나를 지켜주기 위해 국가의 명운을 건 도박을 감행했다.

북미 간의 스몰딜 이후 북한경제는 남북경협의 활성화로 모처럼만에 활력이 넘쳐나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북핵의 잠정적인 동결 조치로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까지 얻었다.

이렇듯 아쉬울 것 하나 없던 북한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미국과의 전면전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남과 북은 본시 같은 민족이란 사실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어차피 우린 저들의 이 민족일 테니 수틀리면 전쟁도 불사하는 사이겠지만 말이다.

남과 북이 진짜로 통일이라도 된다면? 그래서 우리에게 대응하기라도 한다면?

세계 8위의 경제규모에다 NK차르봄바와 같은 가공할 핵무기를 일백 여기나 보유한 통일 한반도의 위상을 떠올리자 끔찍한 악몽을 떨쳐내겠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이것은 한낱 새끼호랑이가 곧바로 성체 호랑이로 변신하는 문제로써 중국으로서도 용인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


그래서 북한을 병합해 버리자는 군부의 오랜 요구사항을 독도전쟁을 겪으면서는 더 이상 묵살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들의 바로 코앞에 전혀 관리가 안 되는 백두산호랑이를 마주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선제공격을 목전에 둔 미국이 은밀히 중국의 협조를 구해왔을 때 시 주석은 북한영토의 병합을 묵인해 주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순망치한의 관계가 될 수 없다면 중국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 질긴 고구려의 뿌리를 뽑아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번민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은 팔십 년의 혈맹을 그것도 적성국 미국과의 합동작전으로 굴복시킨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던 탓이다.


막바지의 장맛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7월 말,

보위부 차량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검정색 중형 승용차가 이 밤중에 평양 시내를 들어섰다.

자정 무렵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출발하여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달려오는 두 시간 내내 차창 밖은 칠흑 같은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평양을 방문하는 국가안보실장과 윤 비서관이 일부러 이런 척박한 날을 선택했던 것은 미국의 감시망을 따돌리려는 남북한 당국의 고육지책이었다.


핵탄두를 장착한 죽음의 백조 B­1B가 어제도 북한 동해상을 유유히 날면서 무력시위를 하고 돌아갔다.

지하 65미터의 벙커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어 정 위원장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최근 들어서 더욱 자주 출현했다.

이것은 북한 지도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미국이 가진 대단히 효과적인 수단이었는데 이럴 때 우리 정부의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형식적인 외교관례 따위는 일체로 생략한 채 제1호 청사로 알려진 노동당본관 지하주차장으로 곧바로 직행했다.


호위사령관의 안내로 정 위원장의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 그곳에는 정 위원장을 정점으로 기라성 같은 북한의 권력실세들이 포진해 있었다.

최근에 정치국상무위원으로 등극한 정숙과 림광철 정찰총국장 그리고 박철 보위부장이 남쪽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최 실장에 대한 북측의 신뢰는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

최 실장은 민 대통령의 복심과도 같아서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대북특사로는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최 실장이 정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한 파란색 파일 속에는 에이포 용지 한 장에 쓰인 민 대통령의 친필 편지가 담겨있었다.


정 위원장이 자신의 집무책상에 앉아서 대통령의 편지를 읽고 있는 동안 여섯 명의 남북인사들은 정 위원장의 얼굴표정만을 주시하면서 경직된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숨소리마저 느껴지지 않는 긴장감이 1호 청사 집무실안의 공기를 팽팽하게 흡입했다.

많은 글자가 쓰인 편지가 아니었음에도 이십여 분의 시간이 지날 때까지 정 위원장의 눈동자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편지만 쳐다봤다.

미국의 선제공격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남북한의 전면적인 여행자유화조치를 제안하는 내용이었고 사십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선례는 있었다.

1989년 11월 10일부터 동독이 시행하려던 여행 간소화 행정조치는 결과적으로 동독의 완전한 몰락으로 귀결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위험한 조치를 남한의 대통령이 제안했고 이에 대한 첫 반응을 지금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보이려는 상황이었다.

물론 다른 북쪽 인사들은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삼십여 분간이나 파란색 파일 속의 편지만 응시하던 정 위원장이 파일을 가만히 접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안의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지 의식적으로 미소까지 띠면서 일행들을 응접소파로 안내했다.

정 위원장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위사령관의 지휘로 신속하게 찻잔들이 놓였다.


정 위원장 특유의 컬컬한 목소리에서는 친서 내용의 심각성이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이 새벽에 먼 길 오시느라 고생들이 많았습니다!”

정 위원장이 찻잔을 들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사람들도 찻잔을 집어 들었다.

“이 차의 빛깔이 참으로 곱지 않습니까?

백두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녹차를 채집해서 우려낸 진짜배기 백두산 야생녹차란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윤 선생!”


정 위원장이 윤 비서관을 콕 찍어서 친근감을 드러내자 최 실장과 윤 비서관은 적잖이 놀랐다.

정 위원장은 20년 전 동북아역사재단의 팀장이던 윤 비서관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다 장백산천지회의 보복테러를 당한 사실까지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우리 장군님께서도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윤 선생의 활약상을 높이 치하하셨는데 제게 남기신 유훈이 뭔지 아십니까?”


정 위원장이 갑자기 유훈애기를 꺼내자 모두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경계해야 된다! 이런 말씀을 하셨단 말입니다”

정 위원장은 지금 북측인사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 말에 당황하는 자를 색출하겠다는 듯 온통 주의를 기울였다.

정 위원장의 이런 행동은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서 대물림된 일종의 습관이었다.


북한의 자주의식은 고구려 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주의식을 반대하는 사대주의자들은 당시나 지금이나 쥐새끼들처럼 지천에 숨어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야음을 틈타 중국과 내통하면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고구려의 자주성을 꺾으려는 역당들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니 늘 이렇게 경계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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