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경고 1
최 실장과 윤 비서관이 대북특사로서의 소임을 마치고 청와대로 귀환했을 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통령은 급한 마음에 최 실장이 건네주는 황색의 서류봉투를 직접 개봉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집무책상에 앉아서 소가죽 봉투의 접힌 부분에 달린 은색의 단추 두 개를 당기자 ‘딱’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봉투가 열렸다.
맞은편에 서있던 최 실장과 윤 비서관도 입술이 바짝 마르는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이 모습을 주시했다.
대통령이 왼손으로는 소가죽 서류봉투의 밑 부분을 잡은 채 오른손으로는 서류봉투에 꽉 끼는 크기의 파일을 힘을 주어서 빼내고 있었다.
최 실장이 도와줄 요량으로 대통령에게 다가가려고 했을 때 대통령의 오른손으로 삐죽삐죽 빠져나온 파일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의 문양이 선명하게 박힌 황금색의 파일이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통령이 천천히 파일을 펼쳐보았다.
맞은편에 서있던 두 사람은 대통령의 얼굴만 쳐다보면서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대통령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고 있었다.
옅은 미소였다.
다시 파일을 접은 후 책상의 가장 아래쪽 서랍 속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대북특사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사실을 당분간 보안에 부쳐야겠습니다,
물론 이 파일의 존재에 대해서도요”
대북특사가 서울로 돌아간 바로 그날 초저녁 무렵이었다.
온 사방에 자신의 목을 옥죄일 올가미가 처져 있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모른 채 박철은 백두산이 있는 삼지연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미제가 선제공격을 개시하면 삼십만 인민해방군이 일시에 압록강을 건너오게 되어 있어!
대원수놈이 제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해도 채 한 달도 버텨내기가 어려울 것이야,
까짓것 고구려가 조선 거면 어떻고 중국 거면 어떻단 말인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는 않을 테니 이번 기회에 나도 대원수가 한번 돼봐야 갔어! 크흐흐흐’
박철을 태운 지프차가 삼지연의 호젓한 숲 속 길로 접어들었다.
박철이 비밀스럽게 보위부의 안가로 사용 중인 소백수 초대소에는 북한군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보위부 요원들의 철통 같은 경호 속에 다섯 명의 군단장들이 시간차를 두고 들어오자 먼저 와있던 박철이 격한 포옹을 하면서 뜨거운 동지애를 과시했다.
드디어 박철을 중심으로 회합에 참여하기로 했던 인사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박철이 한 명 한 명을 주시하면서 오늘 결의하게 될 중요 용건을 단도직입식으로 꺼냈다.
“미제가 전쟁을 개시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갔어!
중국 측의 닦달이 보통 심한 게 아니야!”
몇 조각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애써 옆으로 빗어 넘긴 모양새가 위태롭게만 보이던 자가 습관인 양 오른손으로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신중하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아직도 간만 보려는 자들이 많아서 좀 더 설득을 해야 돼!
이대로 부딪치면 우리 세력이 약해서 안 돼!”
박철이 초조한 기색으로 다시 말했다.
“오늘 내가 대북특사로 온 뚱땡이 놈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어 그래!
북남 간의 휴전선을 이참에 허물어 버리자 뭐 그런 비슷한 애기를 했었단 말이야!
아직은 대원수가 남조선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미제의 선제공격이 확실해지면 그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어,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방을 날려야 되지 않갔어?”
이들 가운데서 얼굴 생김새가 가장 거칠게 생긴 자가 두 주먹으로 탁상을 내리치면서 고함치듯이 말했다.
“뭐야! 그 말은, 남조선이 우리 공화국을 흡수통일이라도 하겠다는 말 아니네,
이런 썅! 그걸 그냥 내버려 두었단 말이야!
그런 개떡 같은 소리에 우리 대원수는 뭐라고 반응했는데?”
박철이 주변을 살피면서 이번에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대원수의 답신서를 몰래 뜯어봤지 않았갔어!
그런데 딱 부러지게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는 안 했지만 앞으로 잘해보자고 했으니 그 말이 그 말 아니 갔어?
남조선에서 전쟁배상금으로 받았던 백억 달러의 절반을 뚝 잘라서 챙겨주었는데 못해줄 것이 뭐가 있갔어? 그렇지 않네?”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군단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담배연기를 천장으로 쏘아 올렸다.
“그 정도면 사실상 동의한 거네,
미제의 공격이 목전에 다가오자 대∼ 원수 놈의 심장이 오그라들었던 거겠지!
그나저나 전쟁배상금으로 받은 오십억 달러는 대체 어디다 숨겨둔 거네?”
“39호실로 흘러 들어갔다면 혼자서 다 처먹겠다는 속셈이지 안 갔어!”
“우린 십 원 땡전도 구경 못해봤잖아?”
“그러니까 대∼ 원수 놈이지! 달리 대원수 갔어?”
이들이 폭소를 터트리며 정 위원장을 맘껏 조롱하고 있었을 때 박철이 이들의 머리를 자기 쪽으로 바짝 불러 모은 뒤 속삭이듯 말했다.
“때를 놓치면 우리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어!
그전에 우리가 먼저 선방을 날려야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단 말이야!
중국군부가 확실하게 우리의 뒷배가 되어 주갔다는데 주저할 것 없잖네?
이번 참에 군부를 전면에 내세우는 선군체제로 전환시켜 버리자고!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면 나머진 그냥 따라오게 돼있어!
두고 들 보라구! 대부분은 그냥 쎈놈 쪽에 달라붙게 돼 있으니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갔다는데 어느 누가 반대하갔어? 안 그래?”
그러자 박철의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군단장이 자신은 박철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럼 대∼ 원수 놈은 어떻게 조치하는 것이 좋갔어?”
박철이 얼굴 표정을 가다듬으면서 무슨 큰 결심이나 한 듯이 말했다.
“후한을 남기면 안 돼야! 심장마비를 가장해서 보내버려야지!
그 집안의 내력이 심장 쪽에는 문제가 좀 많지 안 갔어?”
이때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럽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무슨 일이 발생했다고 판단한 박철의 부관이 황급하게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자신의 머리를 겨누는 권총을 감지하고는 머리 위로 양손을 올렸다.
어느새 안가를 둘러싼 십여 대의 지프차에서 권총을 빼어든 양복 입은 장정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안가 주위를 겹겹이 둘러싼 수십 명의 정찰총국 요원들이 십여 명의 보위부 요원들을 제압하는데 걸린 시각은 고작 오 분이 걸리지 않았다.
밖의 어수선한 상황에 몇 차 레나 부관을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자 박철이 화난 표정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부관! 부관 이 새끼 어디 갔어! 뭐가 이리도 시끄러운 거야!”
밖으로 몇 발작을 더 걸어 나온 박철이 자신을 겨누던 총구에서 새어 나오던 으스스한 찬 공기를 감지했다.
박철이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서 다시 안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박철을 겨냥하던 총구에서 총소리가 났다.
오른쪽 다리에 총상을 입은 박철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일단의 정찰총국 요원들이 소백수 초대소 안으로 들이닥쳤다.
초대소 안에 있던 군단장들이 권총을 빼어 들고 저항하려고 했지만 자신들을 향해서 무수히 많은 총구가 겨냥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차츰 전의를 상실했다.
밖에서 현장을 지휘하던 정찰총국 제 1과장이 귓속에 이어폰을 찬 모습으로 들어왔다.
오른손에 든 권총을 안가에 모여 있던 군단장들에게 일일이 겨누면서 소리쳤다,
“역도들을 체포하라시는 대원수님의 명령이 계셨습니다, 순순히 응하시라요!”
정 위원장의 명령이라는 말에 이들은 모두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권총을 내려놓았지만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거실 등에 반사된 머리 피부가 유난히도 반질거리던 대머리 군단장만큼은 이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서 권총을 겨눈 뒤 떨리는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내부의 상황이 웬만큼 종결되자 뚜벅뚜벅 구두소리를 내면서 림광철 정찰총국장이 초대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잖아도 거만한 표정의 림광철이 걸음걸이마저 거만 기를 더하면서 패배자들을 노려봤다.
“군단장씩이나 되는 작자들이 땟놈한테 나라 팔아먹을 생각들이나 하고 고것도 모자라서 감히 대원수님을 상대로 말장난질을 해!
그러고도 살아남기를 바라지는 안 갔지?”
섬뜩한 이 말은 박철 일당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1과장이 박철이 앉았던 소파 아래를 더듬거리면서 도청장치를 떼어냈다.
박철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