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경고 2
이렇게 하여 중국군부의 사주를 받은 박철 일당이 일망타진됨으로써 정 위원장 중심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던 쿠데타 음모는 좌절되었다.
북한은 일체의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국가정보원의 보고를 통해서 최근 북한에서 역대급 규모의 군 숙청작업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황색파일 속에 담긴 정 위원장의 답신서에는 대통령의 제안을 심사숙고 하겠다면서도 내부 반발을 정리하기 위해서 당분간 공표하지 말 것을 제안했었다.
이로써 민 대통령이 정 위원장의 친서에 대하여 함구하고자 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그러나 이전의 전례들에 비추어보면 일망타진된 박철 일당이 받은 처분은 꽤 관대한 편이었다.
정 위원장의 권력 초창기에는 이 정도의 죄목에 대해서는 십중팔구 공개처형이 틀림없었겠지만 사십 대 중반의 정 위원장은 확실히 여유가 넘쳤다.
가급적이면 처형대신 무기교화형으로 처벌하고자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이 더 가혹한 처벌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가을분위기가 완연해진 시월로 들어서자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들이 더욱 엄혹해졌다.
괌에서 출격한 전략폭격기들이 종전보다도 더 자주 더 오랫동안 목격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상공을 날아다녔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아침 뉴스의 도입부는 미군의 평양 선제공격이 임박했다는 관련기사로 시작되었지만 의외로 서울과 평양은 마치 남의 일인 양 조용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폭풍전야의 고요일 뿐,
지금 당장이라도 죽음의 백조가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리는 광란의 날갯짓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엄중한 상황이었다.
청와대 신청사의 3층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의 집무책상을 사이에 두고 윤 비서관과 최 실장이 대통령과 마주 보고 서 있었고 모두는 흰색 와이셔츠 차림이다.
2년 전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제왕적 권력의 상징처럼 불통의 공간이었던 청와대본관 건물을 과감하게 헐어냈다.
그 자리에 광화문정부청사 규모의 청와대 신청사를 건립했다.
16층 규모의 빌딩을 건축하면서도 외관은 기존의 청와대 본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청와대의 상징성만큼은 변함없이 존속됐다.
3층에 위치한 대통령집무실을 중심으로 청와대의 모든 참모 기능들이 빼곡하게 배치됨으로써 백악관을 능가하는 효율적인 소통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윤 비서관이 말하는 동안 대통령도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낀 채 윤 비서관의 얼굴을 정면으로 주시했다.
“우리의 예상대로 정 위원장도 내심으로는 중국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박철 일당의 숙청으로 북한체제를 친 중국화 하려는 작업은 이제 불가능해졌습니다”
머리를 숙인 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최 실장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저의 부주의가 보위부장의 판단을 흐리게 한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죄인이라도 되는 냥 의기소침해하는 최 실장을 향해서 대통령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그 당시 최 실장이 적당히 흘려준 정보 때문에 중국군부와 결탁된 반통일세력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어요”
“그렇습니다! 실장님의 현명한 처신으로 이제 우리 남북한은 통일을 향한 첫발을 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박철 일당에게 이번일은 작은 구실에 불과했을 뿐 이번 일이 아니었더라도 저들의 거사를 미루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들은 자생적인 동북공정의 조력자들입니다,
실제로 고구려 멸망기에도 적지 않은 수의 당나라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자생적으로 존재하는 토착왜구 세력들이 적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히려 대통령과 윤 비서관으로부터 칭찬에 가까운 말들이 이어지자 민망하다는 듯 머쓱한 표정으로 최 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참! 이 사람의 신중치 못한 행동이 오히려 이렇게 칭찬받는 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대통령님! 남북간의 최근 사정들이 알려지게 된다면 우리 쪽의 사정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최 실장의 방금 이 말은 지극히 현실적인 말이었다.
대통령이 들릴 듯 말 듯한 가벼운 한숨소리를 내면서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면서 대통령이 말했다.
“야당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겠죠?”
대통령을 따라서 함께 창가 쪽으로 이동한 최 실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극심한 국론분열 사태까지도 각오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윤 비서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이다.
“저희 팀에서 각계각층의 여론동향을 체크해 본 바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한반도실행계획의 제1단계는 남북한의 전면적인 여행자유화조치일 뿐 그 이상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동안 꽉 막혔던 통행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으로서 이것은 정치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천만 이산가족의 소망을 들어주는 인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북미 간의 스몰딜이 체결된 2년 전부터 개성공단과 금강산, 개성관광이 활발하게 재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다만 이번 참에 통행, 통신, 통관의 삼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개성공단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공단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내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통로가 될 수 있어 이번 조치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남과 북이 시행하고자 하는 것은 급격한 통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중국과 대만이 시행하고 있었던 자유왕래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으로 통일의 첫걸음은 시작되겠지만 어쨌든 그 시작은 심리적으로 편안한 방식이기 때문에 남북 모두에서 거부반응이 적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통행의 자유만으로도 흡수통일의 우려를 감내해야 하는 북한이 오히려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윤 비서관의 설명을 듣고 있던 최 실장의 얼굴이 차츰 밝아졌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마는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가 걱정입니다,
미국의 반대가 자명한 가운데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마저 작정을 하고 남북한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우리의 입지가 상당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윤 비서관이 최 실장의 우려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동북공정을 포기하지 않는 한 중국은 결단코 남북한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미국과 일본 중국이라는 3국과 동시에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누가 봐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이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우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방관자 정도로는 돌려세워야 합니다만…”
이때 대통령이 피곤한 듯 안경을 벗어 눈자위를 매만졌다.
어느새 벽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고 창문밖 저 멀리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며 대통령이 말했다.
“그들이 동북공정을 멈추지 않겠다면 한반도에 대한 방관자로 돌려세우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요,
그래요! 그놈의 동북공정을 멈추게 하는 것이 이 싸움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군요,
문득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별 셋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일제강점기, 간도 땅에 살던 우리 동포들은 남쪽고향과 북쪽고향 그리고 간도 땅을 더해서 별 셋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의 한 덩어리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별 하나! 별 둘! 별 셋! 그래요 까짓것 직접 가서 한번 부딪쳐봅시다!”
황색파일 속에 담긴 숙제를 풀기 위한 이들 세 사람 간의 전략회의는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