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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31)

마지막 경고 5

by 맥도강

거의 막말에 가까운 미국 대통령의 거친 언사에 민 대통령도 그만 발끈하고 말았다.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분명히 경고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이 전쟁을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

약소국 대통령으로부터 버젓이 경고한다는 말까지 듣게 된 뉴프레지의 입장에서는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버렸다.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감히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경고를 하시다니요!

그리고 대통령께서 뭔가 크게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전시상황에서는 한국군의 지휘통제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혹시 잊고 계셨다면 차후로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입장은 이제 번복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한국대통령께서도 굳건한 양국동맹의 틀 속에서 적극 협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민 대통령도 더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게 된다면 한반도가 감당해야 될 참혹한 핵전쟁의 참상은 불을 보듯 뻔했다.

“오히려 뉴프레지 대통령께서 크게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한미동맹이라면 그런 동맹은 추오도 유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다,

기어이 선제공격을 단행하시겠다면 우리 정부로서는 부득이 한미동맹을 파기하고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겠습니다!”


이쯤 되자 전화기를 움켜쥔 뉴프레지의 오른손이 심하게 요동치면서 뒷목부위에서 불쑥 핏대가 솟아올랐다.

순간의 흥분을 자제하지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뉴프레지가 수화기를 있는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이것은 자제력을 잃어버린 초강대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였다.


뉴프레지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자 민 대통령도 무겁게만 느껴졌던 전화기를 내려놓고 허탈한 표정으로 허리를 의자 뒤로 바짝 누였다.

두 정상은 최소한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은 채 서로를 끝 간 데 없이 밀어붙였고 결국 넘지 말았어야 할 금지선이었던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거론하고 말았다.


이제 전쟁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리고 전쟁에 임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도 분명하게 밝혀졌다.

적어도 북한과 전쟁하는 미국은 한국의 동맹이 아니며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적성국이 될 수도 있음을 미국대통령에게 선포했다.

미국이 적이라면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함께 싸우는 동맹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생경한 구도는 자칫 국론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구도였다.

따라서 설사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독도전쟁 이후 한미 양국의 갈등상을 지켜봐 왔던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심전심으로 대통령과 같은 마음이었다.

특히 국방부장관과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의 든든한 조력자를 자처했다.

최 실장이 통화를 마친 대통령에게 다가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잘하셨습니다 대통령님!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잘 전달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똑 부러지게 말씀을 해주어야 미국 측에서도 오해 없이 한국리스크를 계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방부 장관도 단호한 어투로 대통령에게 말했다.

“우리 땅 독도를 지켜주려다가 발생한 일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전쟁만큼은 우리가 막아주어야 합니다!

미군철수까지 거론했으니 백악관에서도 전쟁을 섣불리는 개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내를 차분히 바라봤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발언을 전달했으니 백악관으로서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동맹국의 대통령이 이토록 반대하는 전쟁을 감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클 테니 말입니다,

뉴프레지는 철저한 장사꾼입니다, 장사꾼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법이죠”

최 실장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안경대를 매만지면서 다시 말했다.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저들은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봐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님께서 보이신 강력한 반전 의지가 백악관을 상당 부분 흔들어 놓았을 테니 말입니다”

NSC회의를 소집하기에 앞서 안보 관련 핵심 참모들은 대통령과 생각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민 대통령이 뉴프레지 대통령과의 통화에 안보 관련 장관과 핵심참모를 배석시킨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뉴프레지 대통령의 인내심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이보세요 한국대통령! 지금 미합중국 대통령을 상대로 협박하시는 겁니까!

한국대통령이 미군철수를 거론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내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죠?”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가 몇 시간 만에 다시 전화해서는 또다시 몇 시간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버렸다.

민 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뉴프레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 이미 할 말은 다했으니 더 이상은 자극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다.


수화기에서는 초강대국 미국대통령의 흥분된 목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한미동맹을 파기하겠다고요?

주한미군을 철수하라고요?

한국대통령은 마치 남과 북이 서로 뭉쳐서 세계최강 미군을 상대로 전쟁이라고 하겠다는 결기를 보이시는데요,

내가 볼 때 한국대통령이 뭔가 큰 착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미동맹을 한국대통령 마음대로 파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본데 과연 한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내 생각엔 오히려 한국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것 같은데요”


수화기를 잡은 약소국 대통령의 오른 손목 실핏줄이 곧 터져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상기된 얼굴은 목 부위까지 흑색으로 변해버렸다.

약소국의 대통령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초강대국 대통령의 도 넘은 발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가 나 뉴프레지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 비극이군요!

로널드 레이건호가 일본해에서 철수했을 때 그날부터 난 밤잠을 설치고 있어요,

지금 내가 어떤 심정인지 아십니까?”

이후 두 정상 간에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민 대통령이었다.

“정히 그러실 수가 없다면!”

뉴프레지 대통령을 흥분시켰던 민 대통령의 그 말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도 체념했다는 듯 더 이상은 반응하지 않았다.

“전쟁이 개시된다면 그동안 미국이 개입했던 그 어떤 전쟁보다도 막대한 미군의 인명피해도 따져봐야 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실익도 없는 그야말로 이상한 전쟁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북한을 설득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미군의 인명피해까지 생각해 주시니 대단히 고마운 말씀입니다만 그 문제는 우리가 따로 대책을 마련해 두었으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제는 NEO작전도 끝나가는 실정이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군요!”

“대통령님께 다시 한번 더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금년 말까지라도 제게 시간을 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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