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경고 4
그제야 대통령도 태산같이 무거워 보이던 금테 안경을 벗어 벌겋게 충혈된 눈자위를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안보실장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러 간 사이 대통령은 창 너머 펼쳐진 잔디정원을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워싱턴의 지금 시각이 어떻게 되나요?”
비서실장이 집무실의 벽에 걸려있던 벽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보다 열세 시간이 늦으니까 아침 아홉 시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초조한 기색으로 벽시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안 되겠어요! 내가 직접 뉴프레지 대통령과 통화해야겠어요,
이 실장! 백악관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통화할 수 있도록 협의를 해보세요!”
비서실장이 이번에도 벽시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오늘밤 열 시경이면 워싱턴은 아침 아홉 시가 될 테니까 그 시각에 통화가 될 수 있도록 백악관과 협의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이제는 우리도 강경하게 나가야 합니다!
선제공격이 시작되면 한미동맹에 의해서 우리가 저들 편에 설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우린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북한을 도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시켜서 백악관이 그 위험까지를 계산하도록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대통령님! 뉴프레지 대통령은 셈법이 분명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한 이익보다도 손실이 크다면 주저할 수 있습니다”
“암요! 백 퍼센트 손해 보는 장사라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어야지요!
뉴프레지가 현명한 장사꾼이라면 발을 뺄 수밖에 없도록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구정물을 뿌려야 합니다!
그것도 마구마구 뿌려대야 합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지금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어요?”
그 사이 미 안보보좌관과 통화를 마친 최 실장이 거의 초주검 상태로 돌아왔다.
오십 분 넘게 진행된 통화에서 우리 측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확인한 튼볼 보좌관은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백악관이 처음으로 한국리스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제 나머지는 대통령의 몫이었다.
오늘 밤중으로 뉴프레지와 통화하고 싶었던 대통령은 허탈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비서실장을 보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또 뭐가 잘못되었나요? 표정이 왜 그래요?”
그렇잖아도 흑색에 가깝던 비서실장의 얼굴이 더욱 어두운 색으로 변색되었다.
손수건으로 눈가 주위를 닦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뉴프레지 대통령의 일정이 바빠서 통화조차도 힘들다고 하더니 큰 소리로 항의하여 겨우 내일 아침 시간대로 잡혔습니다,
저들이 이제는 우리하고도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큰일입니다 대통령님!”
대통령이 최 실장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최 실장도 양복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이마 부위를 닦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백악관의…”
갑자기 최 실장의 목소리에서 쉰 소리가 났다.
튼볼과의 통화 중 높였던 목청 탓에 일시적으로 부담이 왔던 모양인데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백악관의 행보로 볼 때 내부적으로는 모종의 결정이 내려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내일 아침이라고 했지요? 뉴프레지와 통화해 보면 저들의 속셈을 알 수 있겠지요,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내야 합니다! 우리 땅에서 전쟁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대통령은 자정이 되어서야 최근 청와대 신청사 내로 이전해 온 관저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할 뿐 새벽녘이 될 때까지 도무지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차라리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대통령은 관저의 거실에 앉아서 새벽부터 연신 커피만 마셔댔다.
뉴프레지 대통령과의 예상 통화내용을 점검하면서 그를 설득할 수 있는 문맥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았다.
‘인명피해…
그중에서도 막대한 미군의 인명피해…
철수…’
이를 보다 못한 영부인이 손수 샌드위치를 만들어와 가만히 대통령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곧 큰 전쟁이 날 것 같다고 국민들이 두려워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만은 막으셔야 합니다,
지금 당신의 역할은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는 거니까 전쟁만은 막아내셔야 합니다!”
아무 말 없이 영부인의 나지막한 호소를 듣기만 하던 대통령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잘 알고 있어요! 그것이 우리 국민들이 나에게 부여한 막중한 임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꼭 그렇게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드디어 워싱턴 시간으로 저녁 일곱 시가 가까워졌다.
대통령 집무실의 벽시계가 아침 여덟 시를 갓 넘겼을 때 양국 정상 간의 통화가 시작되었다.
민 대통령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뉴프레지 대통령님! 정말로 선제공격을 단행하실 겁니까?”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화끈하게 물어보니 상대도 화끈하게 화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방법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아요,
대화만 해서는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됐어요,
2년 전의 스몰딜 합의 때도 사실 난 북한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국대통령의 눈물겨운 중재 노력도 있고 해서 눈 한번 질검감고 믿어본 것인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요?
모조리 폐기했다던 장거리 운반수단들이 멀쩡하게 나타났어요!
이제는 북한지도자가 하는 말은 그 어떤 말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따분한 짓 그만하려고 합니다,
더 이상 중재 같은 것은 통하지 않으니까 한국대통령도 날 설득할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뉴프레지 대통령님! 지금 뭔가 잘못 판단하시는 겁니다,
문제를 일으킨 쪽은 오히려 일본이었습니다!"
“됐습니다! 다 지난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기로 하고, 지구상 최고의 불량국가가 가지고 노는 위험한 물건을 우리가 제거해서 한반도를 안전하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거예요,
동결이니 어쩌니 하면서 사실상 북핵을 묵인해 준 스몰딜 따위는 이제 쓰레기통에 집어던져 버리고 CVID 방식으로 말끔하게 해결해 보일 테니까 한국대통령이 많이 협조해 주세요!”
뉴프레지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한국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조롱했지만 민 대통령은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약소국의 대통령이었던 까닭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초강대국을 설득해야만 했다.
“대통령님! 내가 아는 한 코피작전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공격받는다면 그들은 분명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즉각 반격할 것인데 그 대상은 평택 미군기지와 주일미군기지가 유력한 타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공방전이 벌어지다 보면 한국민들뿐만 아니라 미군 측의 엄청난 인명피해도 불가피합니다,
즉각 중지하셔야 합니다!”
“하하하, 누가 코피작전을 한다고 합니까?
어디 동네 아이들 뒷골목 싸움질도 아니고 우리는 그런 시시한 작전은 안 합니다,
처음부터 초토화 작전으로 바로 갑니다!
딱 두 시간이면 평양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거예요,
한국대통령께서는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지 마시고 한 두어 시간 하와이나 괌으로 여행 오셔서 한숨 푹 주무시다 가세요?
그러면 모든 작전은 종료됐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