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대고려연방 (38)

자유통행 6

by 맥도강

드디어 세계인들에게 요란하게 예고되었던 그날이 되자 판문점 자유의 집 일대는 몰려든 내외신 기자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합의사항을 발표한다고 했으니 전면적인 여행자유화를 뛰어넘는 초대형 메시지를 기대하면서 잔뜩 입맛을 다셨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된 시간인 열 시가 다가오자 내외신 기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자유의 집 일대가 온통 금빛 물결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남북한의 국회를 통째 판문점으로 옳겨놓은 듯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에서부터 가슴팍에 금배지를 단 의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태양빛에 반사된 금배지들이 여기저기서 빛을 발산하여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한국의 국회의장단과 원내대표단 각 상임위원회의 의장단까지 참석했고, 북한에서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단과 3개 부문위원회 위원들까지 총출동하여 그 위세를 과시했다.

경쟁적으로 터트리기 시작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자유의 집 앞마당에서는 남북한의 실무진들이 준비한 특별한 이벤트가 시작됐다.


오늘의 메인이벤트에 앞서 흥겨운 전통놀이 한판이 펼쳐졌다.

한지바구니가 매달린 대나무장대를 중심으로 사물놀이패가 신명나게 놀기 시작했다.

열기가 달아오르자 남북의 두 의회수장을 필두로 남북한의 정치인들이 모래주머니 몇 개씩을 움켜쥐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징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한지바구니를 향하여 각자의 손에 쥔 모래주머니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세계인들은 오징어 게임에서도 보지 못한 이 재미난 놀이에 푹 빠져들었다.

대나무에 매달린 종이바구니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지만 모래주머니의 공격 횟수가 더해지자 어느덧 조금씩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북한의 입법위원들이 합심하여 다시 집중적으로 그 틈새를 공격하자 드디어 종이바구니가 떡하니 두 동강 나고 말았다.

이때 현장에 모인 내외신기자들은 물론이고 TV 생중계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지구촌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축 대통합코리아연방 통일헌법제정 준비 위원회’라고 써진 현수막이 힘차게 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통일헌법제정 준비 위원회는 순수하게 남북의 두 의회가 중심이 된 위원회였다.

남북 의회의 두 수장이 공동 준비위원장이 되고 남북의회에서 각기 다섯 명씩 모두 열 명의 위원들로 구성되었다.

위원회가 내년 3월까지 통일헌법의 시안을 마련하게 되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 남북 의회의 의결절차를 거쳐서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내년 7월 중 헌법제정을 위한 제헌선거를 거친 후 대망의 통일헌법을 공포하면 늦어도 내년 하반기 중으로 통일정부를 구성하기로 전격 합의되었다.


그동안 철저하게 보안에 부쳐왔던 한반도의 통일 일정이 드디어 전 세계인들 앞에 화려하게 공개된 것이다.

이렇게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놓고 일순간 터트리는 충격요법이 필요했던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리려는 성탄절 폭죽놀이의 부당성을 최대한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도보다리 위에서 민 대통령에게 전해 받은 보고서를 정 위원장이 토시하나 달지 않고 전폭적으로 수용했던 것도 사실은 현실적인 타당성에 그 이유가 있었다.

삼일특공대는 처음부터 북한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 타당성에 주안점을 두고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 6월 말 삼일특공대가 작성한 제2단계의 한반도실행계획을 보고하면서 윤 비서관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완전한 통일은 십 년 후쯤으로 이월시키고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 가능한 체육과 산림 도로 철도분야라던가 문화 예술 관광 교육 분야에 걸쳐서 조심스럽게 확대해 나가는 안입니다,

이념, 정치, 국방 같은 딱딱하고 서로 대립되는 분야들은 모두 내려놓고 이삼십 대 젊은 세대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그냥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봤으면 합니다,

당연히 코리아연방의 국기는 한반도기가 될 것이고 애국가는 아리랑이 되겠죠,

‘코리아연방’이라는 국호아래 남북한의 팔천만 국민들이 서로 부담 없이 하나 될 수 있는 작은 통일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코리아연방정부의 역할은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기존 남북한 정부의 역할은 자연히 축소되어 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통일의 마지막 단계인 제3단계의 한반도실행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학술적인 차원에서나 잠시 다루어지다가 공염불처럼 사라지고 말 보고서였지만 성탄절 폭죽놀이라는 민족최대의 비상시국 앞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한반도 실행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통일 밑그림은 기회를 만난 불씨처럼 거센 활화산으로 불타올랐다.

자유의 집 앞마당에서는 ‘축 대통합코리아연방 통일헌법제정 준비 위원회’라고 써진 현수막이 힘차게 펄럭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대고려연방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