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선언 8
다음날 아침, 위펑 당서기와 조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제안한 첫 방문지는 집안 시에 있는 국내성이었다.
대통령이 국내성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당서기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예민한 시점에서 한국대통령의 고구려유적지 방문은 자칫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어 그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수 있었다.
“서기장님! 제가 아직 광개토대왕릉비를 가보지 못했습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유적지를 둘러보고 싶은데 어떻게 편의를 좀 보아주실 수 있을는지요?
다시 돌아오기도 번잡스럽고 하니 차라리 그 지역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바로 출국했으면 합니다”
당서기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승낙했다.
어제 북경에서도 이것저것 일정을 만들어서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것은 북경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이곳 주변에 묶어두었다가 출국시키라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광개토대왕릉비가 마치 중국의 유물처럼 표현한 대통령의 용의주도한 발언이 위펑 당서기의 경계를 일순간 허물고 말았다.
그리고 다분히 골치 아픈 손님을 경쟁관계에 있던 길림성의 장 서기장 관할로 보낼 수 있게 된 점도 한몫을 거들었다.
위펑은 정치적 야심도 컸지만 한번 결단하면 일처리가 대단히 신속한 인사였다.
당의 긴급 연락망을 통해서 길림성의 당서기장에게 연락을 취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위펑 당서기가 마치 큰 짐을 벗었다는 듯 홀가분하게 한숨을 내어 쉰다.
대통령일행이 국내성 입구에 도착하자 헐레벌떡 달려온 장더장 길림성 당서기가 진땀을 흘리면서 깍듯이 인사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던지 다수의 외신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장 서기장이 당황할 정도로 많이 모여든 기자들은 한국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윤 비서관은 대통령의 동선을 의도적으로 흘리면서 취재거리를 원하는 외신기자들의 먹잇감을 충실히 제공했다.
그런데 북경에서도 대통령의 동선을 세심하게 살피던 동북공정의 실질적 책임자 허밍친 원장은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준비된 한국정부의 사전 기획물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예정되었던 확대정상회담을 거부한 채 한국대통령을 동북지방에 머무르게 한 것은 당국의 큰 실수라고 판단했다.
북미 간의 큰 전쟁을 앞둔 특수한 시점에서 한국대통령이 그 어떤 의도도 없이 한가로이 관광만 즐긴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그것도 북경선언의 진앙지인 동북지방이 아닌가?
행여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위험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최근 달라진 중국의 정치 환경 때문이었다.
그래도 모택동 1인 통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등소평이 구축한 중앙정치국 7인 상무위원회가 작동하던 시절에는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왕조체제처럼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명실상부한 시 황제의 시대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시 주석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감히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대신 허 원장은 장백산천지회의 왕 회장에게 연락하여 한국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관찰하라고 지시했다.
혹여라도 한국 대통령이 승리자의 모습이 되어서 동북지방에서 출국하는 최악의 사태만큼은 막아야 했으니 말이다.
대통령은 장대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던 광개토대왕릉비 앞에서 마치 경외감에 도취된 사람처럼 양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하나의 잘 기획된 장면처럼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번쩍일 때 대통령이 또렷하게 말했다.
“바로 여기가 천년동안 중원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심장입니다!
나는 여기서 우리 민족의 힘찬 박동소리를 느끼고 있어요, 감개무량합니다!”
이제야 대통령의 의중을 알아차린 장 서기장의 얼굴빛이 새까맣게 돌변하더니 카메라의 표적을 피해서 서둘러 물러섰다.
잔뜩 화난 표정으로 관용차에 올라탄 후 어디론가 급히 전화했다.
누군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던 장 서기장이 무책임하게도 부서기장에게 대통령의 의전 책임을 떠넘기고 사라져 버렸다.
대통령은 다시 남서쪽 이백 미터 지점에 장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던 광개토대왕 능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중원대륙을 호령하는 거대한 태산의 모습이었다.
대통령이 돌계단을 따라서 능 위의 석실까지 올라가는 장면을 아래에서부터 카메라가 잡았다.
그런데 이런 각도에 잡힌 대통령의 모습은 광개토대왕 능과 어떤 일체감을 이루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북경대학에서 터트린 대통령의 폭탄선언을 고구려 최전성기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던 이곳 국내성에서 다시 한번 확실하게 다졌다.
오늘날의 길림성과 요령성 흑룡강성의 동북 3 성지역은 고조선부터 고구려 발해의 주 무대로서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고토가 분명하다는 한 편의 잘 짜인 이벤트처럼 보였다.
1712년 조선과 청나라 양국이 최종적으로 합의한 국경선은 백두산에 세워진 정계비의 기록대로 ‘동위토문 서위압록’이 틀림없다.
백두산을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토문강이, 서쪽으로는 압록강이 대통합코리아연방의 국경선이 확실하니, 여기 동간도 일대가 우리 민족의 영토임을 전 세계를 향해서 외치고 있었다.
이 대담한 모습이 담긴 영상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를 향해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