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린 4
한참 열기가 달아오른 대통령의 연설은 이제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고 발언 수위도 위태위태하기만 했다.
순두부식당을 정점으로 꽉 들어찬 수천 명의 관중들이 숨소리마저 죽이면서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이제 역사적인 코리아연방의 출범이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코리아연방의 첫 번째 과제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제멋대로 팔아먹은 여기 동간도 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북한만의 작은 통일이 아니라 조선족 자치주까지를 포함한 대통합코리아연방을 수립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 동북지역의 가장 예민한 곳인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 연길시내의 한복판,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의 모국 대통령이 굳이 조선족 자치주까지 찾아와서 지금 대단히 위험한 대중연설을 하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조선족의 중국이탈을 부추기는 연설을 하고 있었으니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후벼서 파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치안유지의 책임자인 조선족 자치주의 공안국장은 사실나무 떨 듯 떨기만 할 뿐 그 어떤 대응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그 자신도 조선족으로서 중국공산당에 온갖 충성을 다하면서 어찌어찌하여 공안국장의 자리까지 올랐기에 지금 이 사태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당국은 국경근방 소수민족들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던 차였다.
그런데 모국과 국경을 접하는 조선족 자치주에서 자칫 독립투쟁의 불씨라도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당국의 무자비한 보복으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단 한순간의 방심으로 민족별로 갈기갈기 찢겨 나가 버린 구소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예상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김일경 공안국장 앞에 놓여있는 선택지가 다양하지도 않았다.
엄청난 후폭풍을 예상하면서도 사태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의 모가지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국의 대통령을 함부로 체포할 배짱도 없었고 수천 명의 동포들을 자극하는 해산작전을 전개할 능력도 없었다.
그저 길림성공안청에 보고하여 현재의 사태에 대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릴 수밖에는 없었다.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길림성공안청장의 목소리도 떨렸다.
“김 국장! 내 말 잘 들으시오,
오늘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사태가 폭동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지금의 사태를 잘 관리하는 것이오,
내가 이 밤중으로 내려갈 테니 그때까지는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조치하시오! 내 말 알아듣겠소?
어설프게 대응하다가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자칫 폭동으로 비화될까 봐 두려워하는 길림성공안청장의 긴장감이 절절이 배어 있었다.
제발 오늘 밤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초조하게 서있던 김 국장 옆으로 훠치산이 부하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국장님! 무슨 좋은 구경이라도 났소?
공안이 벌벌 떨면서 뒷전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데 폭도들 진압이 되겠소?
그렇게 겁이 나면 공안대신 우리가 나서 주리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김 국장이 훠치산을 바라보며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윗사람들 믿고서 함부로 까부는 것도 눈치껏 해야지,
여기 모인 사람들을 자극해서 진짜로 폭도로 돌변하면 너네 조직인들 무사할 것 같해?
까불더라도 좀 생각이란 걸 하면서 까불어란 말이야!”
김 국장의 말에 훠치산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자신들의 계획을 알 리 없는 김 국장이 내일 이후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생각할수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연변국제호텔의 대형 세미나실,
아침 열 시부터 시작된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의 제100회 특집행사가 드넓은 홀 안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특별 프로그램이 초대박을 터트리고 말았다.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은 서도밴드의 공연이 벌써 한 시간째 진행되고 있었다.
사랑가에 이어서 바다를 열창할 때는 세미나실을 꽉 채운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함께 합창하는 감동적인 모습이 연출되었다.
십 년 전, 조선 팝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태어난 후 지금은 K팝과 더불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장르의 창시자가 바로 서도밴드다.
향후 삼 년 치의 공연 일정이 짜여있던 서도밴드를 연변에 살고 있는 성주가 그것도 갑자기 섭외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 비서관의 삼일특공대는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참견하면서 오늘의 거사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예고된 열한 시 삼십 분이 다가오자 연변국제호텔 앞은 족히 십만을 웃도는 거대한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서도밴드가 신의 한 수가 되었지만 어제저녁 연길시장에서 있었던 사건이 우리 동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통령은 부서기장이 정성껏 준비한 중국방문 일정의 마지막 조찬행사에 참석했다.
느닷없는 한국대통령의 방문으로 그 뒤처리를 감당해야 했던 지방 관료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심히 못마땅했을 것이다.
특히 어젯밤 연길시장에서 행한 대통령의 발언은 그 도가 지나쳐서 감당하기가 어려운 수준이었다.
애당초 의전 책임자였던 길림성의 당 서기장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부서기장은 일체의 감정표시 없이 자신의 소임을 다 하고자 했다.
이렇듯 진정 어린 부서기장의 모습에 적잖이 감동받은 대통령은 부서기장에게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부서기장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다가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사정들이 한숨 돌리게 되면 부서기장님을 꼭 한번 초청하고 싶으니 부디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잔뜩 말썽만 피우고 떠나는 대통령이었지만 부서기장은 변함없는 온화한 표정과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저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자 하였습니다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초청해 주신다면 꼭 방문드리고 싶습니다”
밤새 달려온 길림성공안청장의 진두지휘 하에 새벽부터 중무장한 수백 명의 공안들이 호텔근방을 철통같이 경호했다.
공안청장은 1층 세미나실에서 방금 끝난 서도밴드의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의 행사를 전격적으로 금지시키고 내방객 모두를 내어 보냈다.
호텔곳곳에 부착된 모든 홍보물의 철거를 지시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호텔에서 연길국제공항까지는 5Km 남짓한 짧은 거리로서 차량으로 이동할 경우 고작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약속되었던 시간이 다가오자 성주의 날카로운 눈빛 신호가 떨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오십여 명의 연구소 청년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몰려나온 동포들을 길가에 도열시켰다.
대통령 일행이 공항으로 출발하려는 순간까지도 끝내 장 서기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서 대통령이 부서기장의 환송을 받으며 연변국제호텔을 나서는 장면을 CNN방송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곧 재미난 사건이 터지기라도 한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