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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51)

중국의 역린 5

by 맥도강

곧 재미난 사건이 터질 것을 기대하며 TV모니터를 지켜보는 이들은 북경에서도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허 원장은 곧 발생할 재미난 사건의 최종책임자였으므로 초조한 표정으로 집무실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사태의 추의를 관찰했다.

방금 전에도 왕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큰소리로 호언장담 했었다.

“원장님! 주변국의 일개 대통령이 중화제국에 맞서면 어떤 꼴로 쫓겨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겠습니다,

개망신을 당해서 줄행랑치는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보게 될 겁니다,

으핫핫핫! 이번에는 실수가 없을 테니 저만 믿고서 편안하게 지켜보셔도 됩니다!”


방금 왕 회장과의 통화를 마친 허 원장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런 궂은일을 처리하는 데는 장백산천지회만 한 조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일처리 방식이 너무도 거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주변국의 대통령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지나치게 거친 방식은 불가하다고 단단히 주의는 주었지만 그럼에도 허 원장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감히 대통합코리아연방을 거론하다니!

제아무리 주변국의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어!

우리의 경고를 보여주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그래도 왕 회장만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허 원장이 돌아서며 양 손바닥으로 무르팍을 내리쳤을 때, 그가 입은 붉은색의 청나라 전통복장에서는 착 감기는 듯한 절도 있는 소리가 났다.


연변국제호텔의 앞마당에는 몰려든 외신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공항까지 대통령의 차량을 추적하면서 생중계하려는 방송차량들은 이미 출발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다.

양 도로가에는 떠나가는 한국대통령을 환송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정반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든,

어쨌든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인파들로 붐볐다.


이때 저만치서 언제나처럼 흰색 정장차림의 왕 회장이 좌우에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거만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가 주변을 쓱 한번 둘러보더니 도로변에 꽉 들어찬 인파들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시거연기를 뿜어댔다.

한국대통령 망신주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드디어 대통령의 의전차량이 호텔지하 주차장을 천천히 빠져나오고 있었을 때 훠치산의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표적 출발’

훠치산이 문자를 확인한 후 휴대폰을 높이 들고 좌우로 크게 흔드는 사전에 약속된 행위를 개시했다.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에게 행동개시를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이 동작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이들은 놀랍게도 도로가에 도열해 있던 수백 명의 공안들이었다.

공안들이 일제히 빠지면서 자리를 비켜주자 어림잡아 일천도 더 돼 보이는 일단의 청년들이 두 방향에서 움직였다.

장백산천지회가 동원한 괴청년들은 각자의 호주머니에 썩은 달걀 네 개씩을 집어넣은 채 도로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호텔의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대통령의 의전차량이 도로에 진입하기 위하여 우회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천지회의 행동대장 훠치산이 검정색 장갑을 낀 오른손을 쭉 뻗더니 엄지손가락을 땅아래로 툭툭 흔들어 댔다.


작전개시를 알리는 손짓 신호와 동시에 대통령의 의전 차량을 향해서 썩은 달걀들이 집중적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탄 의전차량이 삼백 여 미터를 지나는 동안 썩은 달걀이 쉼 없이 날아들었고, 결국 준비한 한 트럭 분량의 달걀을 모두 던지고서야 투척행렬은 끝이 났다.

도로가는 노란색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썩은 달걀로 인해서 시궁창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역겨운 냄새가 낭자하자 임무를 마친 일단의 괴청년들은 저들끼리 키득키득 웃으면서 이 성공적인 한국대통령 망신주기를 자축했다.


손수건으로 코를 털어 막은 채 먼발치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왕 회장이 공안들을 진두지휘하던 길림성의 공안청장에게 대놓고 엄지 척을 보냈다.

대단히 흡족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약속대로 잘되어 가고 있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장백산천지회의 썩은 달걀 투척장면은 내외신기자들에겐 놓칠 수 없는 특별한 취재거리가 되었다.

세계 유수의 방송매체들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한국대통령의 환송회 장면을 긴급속보형식으로 내어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압권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흩어지려는 군중들 사이에서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의 청년단원들이 자리를 지켜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군중들이 더 이상의 동요 없이 자리를 지켰다.


상황이 웬만큼 평정되자 호텔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또다시 검정색의 리무진 차량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겨우 네 대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공안의 오토바이 호위까지 받으며 대통령이 탄 의전차량이 도로에 올랐다.

부서기장이 도로까지 따라 나와서 따듯한 미소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번에는 진짜가 틀림없었다.


성주는 은하로부터 대통령 의전 차량의 위장작전을 전해 들었던 터라 천지회의 달걀투척 이후를 대비했다.

환송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재중 동포들은 썩은 달걀냄새로 인하여 차마 자리를 지키고 있기가 힘들었지만 청년단원들의 고함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극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은 어제 연길시장에서 영숙의 제보를 받은 경호팀이 부서기장에게 특별히 요청하면서 기획되었다.

대통령 의전차량의 위장전술은 심지어 공안에게도 비밀에 부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되었는데 놀라운 일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탄 리무진이 멀쩡하게 시야에 나타나자 보도양쪽에 끝없이 도열해 있던 수많은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십여 미터 간격으로 수백 장의 현수막들이 일제히 펼쳐졌다.

빨간색 바탕에 파란색의 글씨로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라고 새겨진 현수막이었다.

연도에 모인 군중들은 신기하게도 그 인원수가 점점 더 불어났다.

엄청나게 많은 현수막들이 펼쳐지고 우레와 같은 만세소리가 들리자 계란투척 이후 흩어지던 구경꾼들조차 다시 운집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다음 작전이 개시되었다.

성주가 비닐봉지 속의 오색종이를 한 움큼 부여잡은 채 공중으로 힘껏 뿌렸다.

이것을 신호로 도로 양쪽에 도열해 있던 사람들이 오색종이를 허공에 뿌리면서 만세를 불렀다.


운집한 우리 동포들의 손에는 향토연구소의 청년단원들이 나누어준 비닐봉지가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만세!”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도로의 양방향으로 도열한 인파의 행렬을 공안은 오만이라고 추산했지만 대부분의 취재기자들은 십만 이상이라고 기사화했다.


색색의 종잇조각을 뿌리면서 만세를 부르는 광경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진한 감동을 자아냈다.

이렇듯 감동적인 광경을 차마 차량 안에서만 지켜볼 수 없었던 대통령이 천천히 달리는 리무진의 선루프 위로 상반신을 드러내며 일어났다.

두 손을 흔들면서 우리 동포들의 만세장면을 좌우로 바라보던 대통령이 갑자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연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동포들도 덩달아서 함께 눈물 흘리며 대통합 코리아연방을 목이 터져라 연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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