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린 6
CNN의 전파를 탄 이 압도적인 장면들은 이번에도 남과 북의 팔천만 국민들은 물론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촌사람들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달래면서 다 함께 지켜봤다.
이 시각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동북지방의 한가운데를 겨냥하여 차르봄바급의 수소핵폭탄이 터져버린 격이었다.
북경의 고관대작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온몸을 부덜부덜 떨어야 했고 급기야 동북공정의 실질적 책임자인 허 원장은 솟구친 뇌혈압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집무실의 책상을 의지한 채 겨우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도 기어코 이 말을 내뱉었다.
“왕징 네 이놈!
저따위의 건달 놈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저런 놈을 믿어서는 이런 꼴을…”
전혀 예상 밖의 장면들이 현장에서 급반전의 형태로 전개되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슬금슬금 물러나는 자들은 장백산천지회의 패거리들이었다.
왕 회장도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피우던 시거까지 길바닥에 내던져버리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돌아섰다.
“저 저런 흉악한 조선족들 때문에 모든 걸 다 망쳐버렸어! 에잇 퇫!”
동북 3 성지역, 그것도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시내의 한 복판이다.
모국의 대통령이 십만이 넘는 자기 민족 동포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지금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수백 장의 현수막에 적힌 글귀를 액면 그대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광경을 연출한 이들의 의도는 명백했다.
중국에서 조선족 자치주를 분리하여 코리아연방에 대통합시키겠다는 것이다.
TV를 지켜보던 길림성의 당서기는 갑자기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극도의 공포감이 몰려왔다.
썩은 달걀을 던져서 한국대통령의 출국 길에 망신을 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수만 아니 십만도 더 되는 조선족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와서는 오색의 종이가루를 뿌려대며 대통합코리아연방 만세를 외치고 말았다.
대통합코리아연방 만세라니!
저 말은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만의 통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 자치주까지를 포함하는 대통일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장 서기장은 이젠 정말로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에 TV를 향해서 재떨이를 던지면서 광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생중계 영상을 지켜보던 시 주석은 즉각 왕 서기를 주석실로 불러들였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달려온 왕 서기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사정없이 왕 서기의 무르팍을 구둣발로 걷어찼다.
끙끙거리면서 일어서는 왕 서기를 향해서 이번에는 양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후려갈긴 후 큰 소리로 고함쳤다.
“지금 즉시 상무위원회를 소집하시오!”
구둣발로 걷어 차인 무르팍을 매만지면서 우물쭈물거리던 왕 서기에게 시 주석이 또다시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왕 서기의 머리를 한 대 더 내려치려다 말고 주석실의 집무책상을 내리치면서 분노를 달랬다.
“어서 꺼지지 못해!”
북경의 주석집무실에서는 시 주석을 중심으로 모두 일곱 명의 정치국상무위원들이 자리에 앉았다.
이들의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들이 연신 흘러내렸다.
시 주석의 날벼락을 피하기 위하여 공산당 상무위원으로서의 체통 따위는 무시하고 무작정 달려왔다.
“이것은 소수민족의 반란 행위가 분명합니다,
엄중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왕 서기가 좌중을 바라보면서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시 주석이 팔짱을 낀 채 지그시 눈을 감자 다시 큰 소리로 그가 말했다.
“저 사태를 적당히 넘긴다면 이제 겨우 진정상태에 들어간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또다시 독립의 기운들이 뻗쳐 나올 겁니다,
이번 차에 소수민족들의 독립의지가 발현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조치해야 합니다!
조선족을 강하게 억눌러서 그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다른 상무위원들도 제각기 한 마디씩을 거들면서 이구동성으로 단호한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니까 초장에 짓밟아야지요,
조선족 자치주에 대하여 신속하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탱크부대를 진격시켜서 혼란을 진압해야 합니다!”
“조선족의 자치주 권한을 박탈해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당국의 단호한 의지를 천명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한국대통령을 중국법원에 기소하고 한국과는 국교를 단절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시 주석의 인상이 더욱 찡그려지면서 길게 한숨을 내어 쉰다.
“퓨∼”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시 주석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색됐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시 주석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 내 잘못입니다, 한국대통령의 북경대 연설 이후 내가 너무 흥분했어요,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서 정해진 공식일정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얼마나 목이 탔던지 찬물 한 컵을 쉬지도 않고 들이킨 시 주석이 탁자에 물 컵을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자 컵 속의 남은 물들이 쏟아져버렸다.
“지금 한국대통령이 우리에게 보여 주려는 의도는 명확합니다!
우리더러 동북공정을 멈추라는 것이에요,
조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조선족 자치주를 심하게 흔들어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균열을 내겠다는 협박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코리아연방이 조선족 자치주까지를 포함하는 대통합 코리아연방을 추진하겠다고 나선다면 다른 소수민족들이 너도나도 독립하겠다고 미쳐서 날뛸 것 아닙니까?
우리의 약점을 파고드는 무서운 경고가 분명한데도 당의 상무위원이란 작자들이 비과학적인 감정 배설만 늘어놓고 있으니…”
시 주석이 생각을 정돈하면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었을 때였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왕 서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시 주석에게 실추된 자신의 충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한국대통령의 출국을 보류시키고 동북지역에서의 소란난동죄에 대하여 엄중한 사과를 받아내야 합니다,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 무식한 왕 서기의 태도에 시 주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오른 손가락으로 어서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왕 서기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입장을 정한 듯 시 주석이 자리를 바짝 당겨 앉자 다른 상무위원들도 자리를 당겨 앉으며 시 주석과 눈동자를 맞추었다.
“이런 때일수록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차분한 음성으로 말한 후 시 주석이 왕 서기를 바라볼 때는 냉철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단순 무식! 과격한 행동이 작금의 사태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 성찰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국익을 위한 어떤 고차원적인 해법들이 모색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이 말입니다!”
시 주석의 호통소리에 왕 서기가 온몸을 떨면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