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폭죽놀이 5
그러나 펜타곤마저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경악하는 사태는 실제로 일어나고야 말았다.
성탄절 폭죽놀이의 개시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국방부장관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명령의 진위여부를 뉴프레지 대통령에게 재차 물었지만 뉴프레지는 대단히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했다.
“장관! 나는 지금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장관에게 명령하는 것이오!
내가 한국대통령에게 공언했던 대로 12월 25일 자정을 기하여 성탄절폭죽놀이를 개시하시오!”
군통수권자가 내리는 공격 명령을 국방장관으로서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성탄절이브의 축제가 끝나고 드디어 운명의 25일 자정이 되었다.
동해와 서해에 집결해 있던 세 척의 항공모함에서 작전개시를 알리는 요란한 비상벨이 울려댔다.
두 달 가까이나 동서해상을 어슬렁거리던 항모전단에서 수십 대의 전투기들이 동시다발로 출격했다.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의 목적지는 북한영공, 보란 듯이 북한영공을 침범하는 도발을 감행하면서 북한의 대공포 사격을 유도했다.
지금 뉴프레지에게 필요했던 것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 명분을 쉽게 허락할 의사가 없었던 한반도는 두 정상 간의 핫라인 직통전화로 이 상황을 공유했다.
미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이 북한영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국방부장관의 보고를 받자마자 민 대통령은 곧장 정 위원장에게 전화했다.
“위원장님 인내하셔야 합니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지금 시위를 하고 있을 뿐 결코 교황이 계신 평양을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전 세계가 숨죽이며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먼저 반응하지 않는다면 결단코 저들이 먼저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공을 넘나들면서 잔뜩 약을 올리려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압니다,
우리 측의 대공포사격을 유도하여 전쟁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수작질이 분명하갔지요,
뻔히 알면서도 인내하기가 참으로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만 웬만하면 대통령님 말씀대로 할 테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위원장님! 우리가 동이 틀 때까지만 인내할 수 있다면 교황님의 말씀대로 한반도와 이 세상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세상에 사랑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날입니다,
당연히 하느님도 우리 편이 되어줄 것이니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평화를 기원해 봅시다!”
남북의 두 정상이 서울과 평양에서 서로를 다독이고 있었을 때 괌에서 출격한 스텔스폭격기들이 북한영공으로 다가왔다.
엔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편대가 각기 2000파운드의 핵무기를 탑재한 채 12200m의 고고도로 비행하면서 다가왔다.
그런데 북한영공으로 들어간 B‒2 폭격기 편대가 십여 분이 지나도록 되돌아 나오지 않았다.
한국공군의 장거리 대공감시 레이더망에서도 잡히지 않던 B‒2 편대의 이동경로는 경악스럽게도 평양 상공을 한 바퀴 비행한 후에 유유히 동해상으로 빠져나왔다.
정 위원장과의 통화를 마친 후에야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은 민 대통령은 심장이 멎는 듯한 큰 충격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후의 특이 동향은 감지되지 않았다.
정 위원장의 향후 선택이 걱정된 대통령은 직통전화기를 다시 만지작거리면서도 선뜻 수화기를 들지는 못하고 머뭇거렸다.
“대통령님 아마도 북한은…”
최 실장과 함께 대통령을 마주 보고 서있던 국방부장관이 신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했을 때 수화기를 들어 올리려던 대통령의 오른손이 멈추었다.
“계속 말해보세요?”
국방부장관이 다소 경직된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B‒2는 스텔스 폭격기이기 때문에 평양상공에 진입한 사실을 한미연합사가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우리조차도 몰랐을 극비 정보입니다,
북한은 아마도 지금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최 실장도 조심스럽게 거들며 나섰다.
“대통령님! 북한이 모르고 있다면 이 시점에서 굳이 우리가…”
생각이 정리된 듯 대통령이 집무책상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지금은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우리 모두의 침묵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최 실장이 대통령 앞으로 한 발작 더 다가서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입니다만 북미 간의 전쟁에 대해서 대단히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던 미 국방부장관의 태도로 볼 때 이것은 어쩌면 뉴프레지 대통령을 배려하는 마지막 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 실장의 이 말에 국방부장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표하는 말을 했다.
“실장님의 의견에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작전을 수행하던 폭격기 편대가 평양상공을 진입하고서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빠져나온 걸 보면 펜타곤의 명령이 그렇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
대통령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들의 추측이 진실이기를 기대하는 표정이다.
“큰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선제공격은 피하면서도 뉴프레지의 체면을 살려주는 이른바 어른의 백악관 어린아이 달래기란 말이죠,
끝까지 전쟁의 명분을 제공해주지 않은 북한당국의 인내심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잘하면 메리 크리스마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메리 크리스마스 말입니다!”
모두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평화를 위한 침묵 모드에 동참했다.
드디어 성탄절 아침의 새벽 동이 트자 집무실에서 꼬박 밤을 지새운 대통령 일행을 위하여 영부인이 손수 샌드위치와 커피를 만들어 왔다.
대통령집무실의 바로 위층으로 관저가 옮겨온 이후 영부인은 이렇듯 몸소 간식을 준비하는 등 지근에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집무실의 공기를 팽팽하게 짓누르던 긴장된 분위기 탓에 쟁반만 내려놓은 채 서둘러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렇잖아도 커피 한 잔이 몹시도 그리웠던 대통령이 커피 잔을 들면서 또다시 기대 섞인 발언을 했다.
“이제 날이 밝았으니 우리나라를 뒤덮었던 전쟁의 먹구름도 물러갔겠지요?
암요! 떡하니 교황님께서 우리 땅을 지키고 계시는데 성탄절 폭죽놀이는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잔뜩 기대 섞인 표정으로 최 실장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예 지금부터는 교황님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간밤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2029년 성탄절 아침의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자연스레 세계인들의 시선은 교황이 머무르는 평양을 항해서 집중되었다.
실제로 어젯밤 스텔스 폭격기가 평양상공을 진입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을 통틀어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교황의 제2차 집결지인 능라도종합경기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황을 따라서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능라도종합경기장 인근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 구름같이 몰려든 군중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평양시민들이었다.
오만여 평에 이르는 운동장의 상공에는 대형 애드벌룬에 매달린 평양대기도회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위풍도 당당하게 떠있었다.
구십아홉 개에 이르는 운동장의 문을 통해서 끝도 없이 사람들이 밀려들자 십오만 석의 좌석은 이내 만석이 되고 말았다.
앉을자리가 없어 뒤쪽에 서있는 사람들만 해도 족히 수만은 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