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폭죽놀이 4
평양시민들의 열열한 환호 속에 도착한 장춘성당은 방금까지의 흥분된 마음가짐을 삽시간에 가라앉힐 만큼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무엇 때문에 침묵의 교회라는 별칭이 붙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분위기다.
교황과 함께 오픈카에서 내린 정 위원장이 어딘지 모르게 잔뜩 어색한 티를 내었다.
아마도 생전처음 경험하는 종교적인 분위기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모양이다.
손을 모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교황과 함께 움직여야 할지를 몰라서 어색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때 다정한 표정으로 다가간 교황이 정 위원장의 왼손을 그의 오른손으로 맞잡았다.
조선천주교인협회 간부들의 안내로 두 사람이 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정 위원장의 왼손에서는 끈적끈적한 땀방울이 맺혔다.
그럴수록 교황은 더욱더 힘을 주어서 정 위원장을 저 안쪽까지 이끌고자 했다.
먼저 입장하여 대기하던 사람들이 모두 뒤로 물러서자 이제는 오직 두 사람만이 십자가상이 있는 정면으로 걸어갔다.
교황은 단상 앞에 이르고서야 정 위원장의 손을 놓아주고 홀로 무릎을 꿇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온 사제들과 마당에 모여 있던 신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앉아 교황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가만히 서있던 정 위원장을 몹시도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황이 울먹이기 시작하자 교황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사제들도 함께 울먹이며 기도했다.
울먹이는 소리는 곧바로 성당 밖으로 전염되더니 평생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북한사람들까지 울먹이게 만들었다.
교황의 기도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울음소리는 모두가 똑똑히 공유했다.
교황이 지배하는 강열한 분위기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급기야 교황 바로 뒤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정 위원장까지도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기도를 마친 교황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또다시 정 위원장의 손을 잡고 함께 성당 밖으로 걸어 나왔다.
교황은 마치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정 위원장의 손을 움켜잡았고 스스로 북한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교황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정 위원장은 교황을 자신의 전용차인 벤츠 리무진에 태우고 교황이 묵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함께 이동했다.
이 와중에서도 교황의 오른손은 여전히 정 위원장의 왼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영빈관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놓아주지 않았다.
여행자유화 조치 이후 평양에는 남쪽과 해외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하여 호텔의 빈방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대동강 변에 위치한 평양호텔을 통째 비워놓고 교황과 함께 입국한 손님들을 기다렸다.
평양호텔은 4층짜리의 아담한 호텔이지만 170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어 교황과 함께 입국한 삼백여명의 교황청 수행 인원이 투숙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문제는 역사적인 교황의 평양방문을 쫒아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거대한 인파가 12월 한겨울에 묵을 숙식공간이었다.
유럽 각 지역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천여명에 이르는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 그리고 지구촌 여기저기서 교황을 따라나선 족히 수만에 이르는 일반인들이 문제였다.
그 해결책을 북한당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평양대기도회가 열리는 능라도 종합경기장에서 제시했다.
부지면적만 12만 평이 넘고 15만 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다는 세계최대 규모의 능라도 종합경기장은 아름다운 대동강 변에 연꽃모양으로 우뚝 서있었다.
종합경기장 내 팔십 여개의 선수침실을 비롯하여 십여 개의 실내체육관과 각종 휴게실 회의실 사무실을 숙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수천 명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게끔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해외에서 몰려든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대동강 변의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자유롭게 강의 풍광을 즐기는 노숙야영을 자처했다.
북한당국도 노숙야영자들을 위한 간이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전력을 다해서 지원했다.
이렇게 되자 급작스럽게 수만 명의 인원이 몰려든 형편치고는 큰 무리 없이 숙식공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교황의 평양방문 이튿날인 12월 23일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백화원을 출발한 교황의 전용차 파파모빌레가 장춘성당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거리를 지나가는 평양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양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면서 교황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교황이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은 미국도 전쟁을 개시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전쟁의 먹구름까지도 물리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그들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뉴프레지가 예고했던 성탄절폭죽놀이의 기한이 임박하자 자연스레 세계인들의 이목은 평양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평양은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주시하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신했다.
교황이 집전하는 일요일 아침 미사를 보기 위하여 장춘성당의 앞마당과 그 주변일대까지 인파의 물결로 가득 들어찼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조선중앙 TV를 통해서 교황의 강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했다.
교황의 기도가 얼마나 절절했던지 신앙생활의 경험이 전무한 북한사람들조차 교황이 기도할 때는 함께 두 손을 모으는 행위를 따라 할 정도였다.
교황의 강론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축원하는 내용으로 일관했고, 교황의 기도 역시 오직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장춘성당의 앞마당으로 걸어 나온 교황이 해맑게 미소 지으며 자신들의 부모와 함께 참석한 북한 어린이들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몇몇의 아이들이 교황의 손짓에 반응하기 시작하자 금세 수십 명의 아이들이 교황을 둘러쌌다.
교황이 아이들에게 일일이 머리에 손을 얹어서 축복을 내리고 있었을 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은 마치 수줍게 미소 짓는 천사와 같았다.
교황은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손을 맞잡고 놀기도 하면서 저녁이 될 때까지 그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다음날 장춘성당에서 발표된 교황의 성탄절 메시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기원하는 메시지였다.
특별히 한반도의 평화를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선제공격을 온몸으로 반대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지만 이에 맞서는 뉴프레지 대통령의 반응 또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서슴없이 미친 영감탱이라고 부를 정도로 교황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무작정 평화만 외쳐대는 교황의 태도를 경멸했다.
사실 뉴프레지는 어려서부터 대단히 보수적인 색채의 남부지역 복음주의 교파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매사를 선과 악이라는 2분법으로 구분하는 버릇이 있었다.
핵으로 일본을 위협하고 미국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북한은 당연히 악당으로 분류되었다.
악당은 물리치고 응징해야 할 대상으로서 설사 적잖은 희생이 따른다 하더라도 그 희생을 감수해야 된다는 신념이 그를 지배했다.
교황이 평양의 장춘성당에서 성탄절 전야 행사를 진행하고 있던 특별한 상황에서도 뉴프레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들만의 특별한 성탄절을 위한 마지막 기도를 했다.
하지만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펜타곤에서도 이 시점에서의 성탄절 폭죽놀이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작전으로 분류하고 조용한 성탄절이브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