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폭죽놀이 3
대통령이 재중동포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출국하던 바로 그날,
윤 비서관은 연길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은하에게 급히 연락하여 지금 즉시 출국할 것을 재촉했다.
이후 전개될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을 때 신속하게 출국하지 않으면 큰 문제에 봉착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윤 비서관의 예상보다도 전격적으로 계엄령이 발동되면서 자치주를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원천 차단되고 말았다.
그 순간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면서 다방면에 걸쳐서 소식통을 두고 있던 창우의 판단력은 매우 빨랐다.
일단 연길시내의 외곽으로 은하를 급히 피신시켰다.
은하가 피신했던 곳은 연길시 외곽의 작은 시골집으로 창우와 은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추억의 옛 집이었다.
오래전 배 교수가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남에게 팔았던 옛 집을 가끔씩 연변을 방문하는 은하를 위하여 최근에 다시 매입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소유권을 넘겨받지 않은 상태라 당분간은 공안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지만 그 안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성탄절 이브를 이틀 앞둔 토요일 오전,
성탄절 폭죽놀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신의 사도가 서울공항으로 입국했다.
대통령은 천천히 트랩을 내려오는 교황을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북미 간의 전쟁을 막기 위하여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남북한의 여행자유화 조치로 공격의 표적이 대단히 산만해졌고 마지막 단계에서 중국마저 발을 빼게 만들었다.
미군단독으로 수행하는 전쟁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었지만 뉴프레지는 여전히 성탄절 폭죽놀이를 중단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되돌려놓을 최후의 마지막 카드는 이제 교황의 평양방문뿐이다.
당초 미국은 핵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이라는 악당을 혼내주는 단순한 구도를 원했다.
악의 축인 평양이 착한 도쿄를 괴롭히는 단순한 구도가 형성되어야 했다.
그래서 ‘짠’하고 미국이라는 정의의 보안관이 나타나서 평양을 실컷 두들겨 패주는 서부영화 같은 극적인 장면을 원했다.
이렇게 단순한 그림이 그려져야 초강대국의 존재감이 부각되어 지구상 유일의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끼어든 한국정부의 농간으로 오히려 한반도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고 미국은 피해자를 괴롭히는 악당으로 둔갑됐다.
급기야 교황까지 등장하여 성탄절미사를 평양에서 개최하겠다고 저 난리를 부리는 통에 당초의 구도와는 정반대의 구도로 변질되고 말았다.
대통령과 교황이 함께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은 생중계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구촌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백악관의 대통령집무실에서 안보보좌관 튼볼과 함께 이 모습을 지켜보던 뉴프레지는 TV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질렀다.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것 같은가!
당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주고 말겠어!
지상최대의 성탄절 폭죽놀이를 내가 멋떨어지게 보여줄 테니까 모두들 기대하라고!”
사전에 수백 대의 관광버스를 준비한 한국정부로서는 일거에 몰려든 손님들일지라도 교통편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다.
오전 열한 시경 교황을 따라나선 수만 명의 십자군 행렬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경유하여 평양을 향해서 출발했다.
놀라운 사실은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이미 시행되고 있었던 것인데 버스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서도 출입신고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다.
전체구간이 하이패스 구간으로 변경되어 모바일 여권이 발행된 스마트폰을 지참하는 것만으로도 출입신고 절차가 자동으로 처리되었다.
자유여행 사십여 일만에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인 특유의 진취적인 문화가 첨단 IT기술과 접목하여 그 위력을 발휘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관광버스의 행렬이 향했던 제1차 집결지는 북한 유일의 천주교 성당인 평양의 장춘성당이었다.
1980년대 후반 북한은 대외적인 선전차원에서 비밀스럽게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천주교인 두 명을 어렵사리 찾아냈다.
실제로 이들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하게 되면서 북한에도 가톨릭신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인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 해 장춘성당이 건립되어 교황청에서 파견한 특사가 축성식과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지나는 동안 교황의 평양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들이 마을 도처에 내어 걸렸다.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성하의 평양방문을 환영합니다’와 같은 극진한 문구들 일색이었다.
차량 행렬을 향해서 손을 흔드는 북한주민들의 표정에서는 전쟁대신 평화를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들이 서려 있었다.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는 통상 두 시간이면 도달하는 거리다.
하지만 교황이 연도에 도열한 주민들의 환영인사에 일일이 손을 흔들면서 천천히 달려온 까닭에 오후 두 시를 넘겨서야 평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평양의 도심이 시작되는 버드나무 거리에 다다르자 일행들은 평양시민들의 압도적인 함성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장춘성당까지 이어진 거리의 양쪽으로 남녀노소의 평양시민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찼다.
삼백만 평양시민 중 족히 일백만은 거리에 나왔을 정도로 엄청난 환영인파였다.
이들은 양손에 꽃술과 한반도기를 격정적으로 흔들면서 단 하나의 단어만을 외쳤는데 그것은 바로 ‘평화!’였다.
드디어 리무진 차량에서 교황이 내리자 정 위원장이 먼저 다가와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최고 수준의 인사를 나누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자세를 바꿔가면서 모두 세 번의 포옹을 한 후 서로 맞잡은 손을 평양시민을 향해서 번쩍 들어 올렸다.
도로가에 도열한 채 이 모습을 지켜본 평양시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의 간절한 심중을 표현했다.
“평화! 평화! 평화!”
일백만의 평양시민들이 함께 합창하는 평화라는 단어 속에서 전쟁을 거부한다는 북한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 장면들은 실시간으로 생방송 중이던 CNN을 통해서 전 세계인들의 안방까지 그대로 전송됐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평화!’라는 구호는 지켜보던 세계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스무 대의 호위 오토바이가 선두를 형성한 가운데 교황과 정 위원장이 함께 탄 오픈카의 카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연도를 가득 매운 평양시민들이 열정적으로 꽃술을 흔들어대는 광경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일렁이는 것처럼 전율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