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대고려연방 (61)

목련꽃배송작전 2

by 맥도강

두 사람의 의사를 확인한 홍 반장은 곧장 이들과 함께 모처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작전 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한시라도 마음이 급했던 곽 차장은 현지의 정 과장에게 전화했다.

“정 과장! 계엄령이 해제되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되면 목련꽃 배송작전을 개시할 수 있도록 설계도를 한번 만들어봐!

현지 사정에 밝은 블랙요원 두 명을 파견해 줄 테니까 아마 도움이 될 거야!”


곽 차장의 특별 지시를 받은 정 과장은 이번 작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그림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현지의 상황이 워낙 위중하여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이었고 설계도의 윤곽이 드러나자 서둘러서 작전은 개시되었다.


오후 세 시경 길림성 장춘공항에 내린 경태와 기수는 기다리던 국정원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검정색 지프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자 선글라스를 쓴 채 조수석에 앉아있던 정 과장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우선 말해둘 게 있습니다,

서울에서 교육받은 대로 블랙요원의 신분은 블랙일 뿐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끝까지 명심해야 합니다,

만약 생포되어 고충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두 분을 부정하게 될 겁니다”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경태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뜻인지 잘 아니까 길게 설명 안 해도 됩니다!”

지프차는 두어 시간을 더 달려서 한적한 대로변에 위치한 제법 큰 여관에 도착했다.


힘찬 필력으로 나무현판에 새겨진 ‘소목청’이라는 글씨가 미풍에 흔들렸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며 건물들의 관리 상태로 봐서는 한눈에도 유서 깊은 상급여관으로 보였다.

여관 종업원의 안내로 2층의 큰 룸으로 들어서자 칠십 대와 삼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두 여인이 테이블에 앉아서 다소곳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두려운 눈빛으로 목례하는 것으로 봐서는 순박한 시골 아낙네들로 보였다.


세 남자가 멀찍이 떨어져서 각자 자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여전히 짙은 선글라스 속에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있던 정 과장이 방안의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여기 두 분은 모녀지간인데 현재 배은하 씨가 기거하고 있는 구룡촌 마을의 옛집에서 최근까지도 생활하시던 분들입니다,

배창우 씨가 이분들로부터 옛집을 다시 사들였지만 서류상으로는 아직도 이 아주머니의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 현시점에서 배은하 씨와 그 옛집은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한눈에도 풍기는 분위기가 단정해 보이는 젊은 여인이 다시 일어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경선이라고 합니다,

배 사장님이 여동생을 살리는 일이라면서 부탁하시기에 나서기는 했지만 무섭고 떨려서…

거저 시키시는 대로는 해보겠습니다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앉은자리에서 딸을 바라보던 엄마가 답답하다는 듯이 투박한 경상도 억양으로 쏘아붙였다.

“뭣이 무섭다더노!

그냥 평소 우리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 거지,

배 사장님 아니었으면 우리는 길가로 나앉았을 텐데 이만한 일도 못할라꼬!”


정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여인 앞으로 다가가더니 가볍게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평소 하시던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평소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두 모녀가 작전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이랬다.

구룡촌 마을에서 메주콩농사를 지으며 무탈하게 살아가던 딸 내외에게 불행이 닥친 건 몇 년 전이었다.

연길시장에서 메주콩 거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사위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오랜 병원생활 끝에 결국 사위가 빚만 잔뜩 남긴 채 죽게 되자 사단이 발생했다.

담보로 잡혀있던 구룡촌의 집을 빚쟁이한테 헐값에 넘기고도 빚을 청산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마침 은하를 위해서 옛집을 다시 매입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창우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아주머니를 찾아왔다.

빚쟁이와는 달리 창우는 정당한 시세를 쳐서 집을 되사주게 되었다.

그 덕분에 빚쟁이의 빚을 모두 청산하고도 얼마간의 장사밑천까지 손에 쥐었다.

창우에게 집을 판 후 연길시내의 한 여인숙에서 생활하던 두 모녀를 다시 찾아간 창우는 정 과장의 구상대로 솔깃한 제안을 하게 된다.

구룡촌의 시골집을 평생 무료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줄 테니 동생 구하는 일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모녀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창우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고, 답답하던 여인숙 생활을 청산하고 지금 구룡촌마을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정 과장이 이 정도까지만 설명했는데도 머리회전이 빠른 경태가 제일 먼저 이 상황극의 스토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스럽네요, 은하누나와 경선 씨를 바꿔치기해서 빠져나온다면…”

정 과장이 오른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면서 경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 분들은 메주콩 농사를 지어서 인근의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근의 시장은 길림성 관내의 시장을 말하는 것인데 연길시장뿐만 아니라 때로는 장춘시장까지도 이동을 합니다!”

이번에는 기수가 끼어들었다.

“시장 갈 때를 이용해서 은하누나하고 바꿔치기를 하면…

그러고 보니 은하누나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해서 서로 바꿔치기를 한다고 해도 눈에 띄지는 않을 것 같네요”


이때 경선이 녹차 주전자를 들고서 일어나 일일이 일행들의 잔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한층 화기애해 지면서 벌써부터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동지의식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경선이 다가오자 경태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잔을 받쳐 들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이는 이 모습을 기수가 유심히 지켜봤다.


녹차 한 모금을 음미하던 정 과장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아주머니와 경선 씨는 애당초 구룡촌의 집을 판사실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계속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장춘시장에 납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요,

내일은 평소와 같이 하루 종일 시장에 내다 팔 콩을 가려내는 일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모레새벽 일찍 다시 장춘시장으로 이동하게 될 텐데 이때 은하 씨가 경선 씨를 대신하여 자연스럽게 구룡촌 마을을 빠져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것으로 작전은 종결됩니다”


정 과장은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경태와 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은 오늘 당당하게 연길시내로 들어가면 됩니다,

경태 씨는 서울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고요,

기수 씨는 당분간만 다니러 왔습니다, 내 말이 맞죠?”

경태가 기수를 힐끗 쳐다본 후 빙긋이 웃으면서 기수 몫까지 한꺼번에 답변을 했다.

“저 친구는 연길에 처자식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만, 나야뭐 딸린 처자식이라고는 없으니 완전히 돌아온 게 맞지요”


이제야 기수는 경태의 속내를 짐작하겠다는 듯 경태와 경선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혼자서 살포시 웃었다.

“경태 씨는 내일부터 우리가 준비한 1톤 더불캡으로 용달 일을 시작하게 될 텐데 그 첫 일이 바로 아주머니의 메주콩을 장춘시장까지 배달하는 일입니다”

정 과장의 이 말에 경태와 기수는 내심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태는 서울에 있을 때부터 연길에 돌아가면 용달배송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지금 정 과장이 그 계획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대고려연방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