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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62)

목련꽃배송작전 3

by 맥도강

사실 정 과장이 목련꽃 배송작전을 설계할 때부터 홍 반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정보가 바탕이 되었고 기왕이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설계도를 준비했다.

“기수 씨의 역할은 나중에 따로 말해주도록 하죠,

명심할 사항은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머릿속에서 작전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려야 합니다!

특히 배은하 씨를 머릿속에 담아주시면 안 됩니다!

그냥 일상적인 여러분들의 생활만 생각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행하셔야 합니다,

밖에 준비된 트럭은 경태 씨 명의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앞으로도 편하게 사용하십시오!”


트럭 한 대를 거저 준다는 말에 경태와 기수가 놀라운 표정으로 창가로 다가갔다.

마당에는 진짜로 방금 출고한 파란색의 더블 캡이 정차되어 있었다.

기수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경태의 머리를 토닥이면서 함께 자리에 앉자 정 과장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모레 아침이면 은하 씨와 함께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습니다만 한 가지 명심할 사항이 있습니다,

휴대폰을 사용할 때는 공안으로부터 도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통화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우린 처음부터 만난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계엄령이 발동된 조선족 자치주로부터 목련꽃을 구출해 낼 작전회의를 마쳤다.


두 모녀는 소목청을 나서자마자 곧장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고 구룡촌 마을로 향했다.

버스로도 족히 세 시간을 더 달려가야 했으므로 구룡촌 마을 진입로에 설치된 공안의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경태는 1톤 더블 캡을 운전하는 내내 싱글벙걸 즐거운 표정이다.

옆 자리의 기수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마디 건넨다.

“너 인마! 트럭 한 대 얻었다고 싱글벙걸인 것 아니지?”

“공짜로 얻었으니 기분이야 째지지! 또 뭐가 있을라고?”

“지금 너 경선 씨 얼굴이 떠올라서 마음이 싱송생송한 것 맞잖아 인마!

내가 모를 줄 알았지?”

꼭 뭔가를 들킨 사람처럼 경태가 어색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안 되겠다 싶었던지 그냥 실토하고 말았다.

“귀신같은 놈! 내 맘을 어떻게 알았어?

꼭 은하누나를 닮은 게 첫인상이 너무 좋더라!”

“그래 옛날부터 성주하고 넌 은하누나라면 껌뻑 갔었지,

내가 봐도 경선 씨의 분위기가 은하누나하고 비슷한 데가 있었어,

그래도 넌 인마 총각인데?”


기수의 이 말에 경태가 피식 웃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흔 넘은 총각! 그것도 벼슬이가?

난 아무래도 관계없다 경선 씨만 좋다면…”

경태의 마음을 확인한 기수는 더 이상의 놀림대신 경태의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생각해 보면 경태에게서 여자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까마득하게 오래된 일이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상상해 보았더니 의외로 노총각과 한번 다녀온 돌싱녀가 꽤 잘 어울렸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연길시내에 들어섰다.

여차하면 짓뭉개어 버리겠다는 듯 탱크와 장갑차들이 줄지어 서서 살벌한 공포분위기를 조장하고 있었다.

조선족 자치주를 상대로 벌이는 중국 당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처럼 보였다.

최근 환구시보의 사설을 통해서 언급되기 시작한 조선족 자치주의 해체가 실제로 눈앞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경태의 더불캡 트럭은 대로변에 설치된 인민해방군과 공안의 합동 검문소 앞에서 정차했다.

두 사람을 차에서 내리게 한 공안이 소지품을 모두 책상 위에 올려놓게 한 후 하나하나 샅샅이 살펴봤다.

그런데 노트북의 모니터에서 두 사람의 출입국 기록이 나타나자 의자에 앉은 채 노트북을 빤히 쳐다보던 공안이 경태와 기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다들 못 나가서 난리인 판국에 하필이면 이 시점을 택해서 들어오는 이유가 뭐요?

이 시국에 굳이 계엄령이 발령된 조선족 자치주에 들어오겠다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요?”


공안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경태가 대뜸 당돌한 태도로 돌변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남의 나라에 일하러 갔다가 내 고향집을 찾아오는데 뭐가 이상하요?”

피 끓던 이십 대 시절부터 배 교수와 함께 이곳 연변지역에서 민족운동을 해오면서 다져진 반골기질이 욱하고 터졌다.

하지만 지금 드러내는 감정은 다분히 계산된 감정이었다.

한국을 남의 나라라고 규정하면서 같은 중국인임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었다.


이때 기수도 거들고 나섰다.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내 집을 찾아가는데 뭐가 이리도 복잡하요?

우리가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 거요!

신속하게 좀 처리합시다!”


자리에 앉아서 두 사람의 여권을 쳐다보던 공안이 재촉하는 경태와 기수를 다시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빙긋이 웃었다.

중국을 고국이라고 부르는 이 자들에게서 사상범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알 수 없어 두 사람의 휴대폰으로 자신의 번호를 꾹 눌렀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더불캡의 차량 앞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촬영을 한 후에야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취업목적의 F4비자를 확인한 이상 두 사람의 신분은 입증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유심히 관찰하겠다는 암시였다.


검문을 통과한 더불캡은 연길시장을 지나다가 습관적으로 향토연구소 방면으로 향했다.

그 앞을 천천히 지나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이들이 발견한 사람은 대림동 중앙시장에서 활동하던 바로 그 칼치였다.

서울에서 은하의 행방을 대라며 행패를 부리던 칼치일당을 경태와 기수의 기지로 경찰이 덮쳤을 때 칼치는 체포되지 않고 도망쳤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여기에 있었다.


향토연구소 앞을 몇몇 부하들과 함께 서성이던 칼치가 연구소의 정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벌써 보름째 문을 쳐닫아났구먼!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니 도대체 어디 로들 숨어든 거야!”

칼치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행동대장 훠치산에게 전화했다.

“형님! 이것들이 어디서 잠수를 타고 있는지 연길 시내에서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요?”

칼치의 휴대폰으로 훠치산 특유의 악센트 높은 쇳소리가 들려왔다.

“철통같이 경계를 서고 있는데 지들이 도망갔으면 어디를 갔겠어?

어쨌든 연변 근방에 숨어있을 테니까 외곽으로도 샅샅이 뒤져봐!

회장님의 특명이니까 공안 애들보다는 무조건 우리가 먼저 찾아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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