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배송작전 8
검문소를 빠져나와 국도를 달린 지도 한 시간가량이 흘렀을 때 어느덧 기수의 심리상태도 안정을 회복했다.
뒤쫓아 오는 차량도 없고 국도에 설치된 검문소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이제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황금색 태양빛이 대지를 조금씩 밝히고 있었을 때 차창 밖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은하가 차 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웠다.
“저 때문에 다들 위험한 상황에 처하신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합니다,
저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위험들을 무릅쓰는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은하의 자조 섞인 말에 대한 반응이었을까,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있던 경선엄마가 아무 말 없이 은하의 손을 가만히 감싸며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답변은 조수석에 앉아있던 경태가 대신했다.
“누나가 뭐라니요?
우리가 존경하는 배 교수님의 따님이시고 대통합코리아연방을 구상하신 윤 비서관님의 부인이시지 않습니까?
누나는 우리가 볼 때도 평범하지 않지만 중국이 볼 때는 효용가치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나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건 사사로운 개인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누나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저 멀리서부터 헬리콥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지나가는 소방청의 헬기정도로만 생각했지 설마 하니 자신들을 추격하는 헬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시간대에 장춘방향으로 달려가는 파란색의 더불캡 트럭을 공중에서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도를 낮춘 헬리콥터는 몇 백 미터를 먼저 날아간 뒤 전방의 차량흐름이 뜸한 지점을 택하여 전격적으로 착지를 시도했다.
국도 한가운데서 갑자기 헬리콥터가 착지를 시도하자 운행하던 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하면서 연쇄적으로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소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유유히 헬리콥터에서 내린 훠치산 일행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국도 상에서 장애물들을 이리저리 비켜가며 거침없이 내달렸다.
일행들 중에서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경태가 머리를 들었을 때는 연쇄충돌의 중간쯤에 파묻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립무원의 상황임을 확인하고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더군다나 차창 밖에선 부하들과 함께 달려온 훠치산이 검정색 가죽장갑으로 흐르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훠치산이 자신의 휴대폰에 내장된 은하의 여권사진과 실물을 비교하더니 감격의 파안대소를 하면서 곧바로 왕 회장에게 전화했다.
“회장님 기뻐하십시오! 드디어 잡았습니다!
배은하 년이 틀림없습니다, 옛! 즉시 끌고 가겠습니다”
휘치산의 눈짓 신호로 패거리들은 오직 은하 한 사람만을 끌어냈고 그 사이에 뒤쫓아 온 박 소장 일행은 나머지 사람들을 체포하여 모두 수갑을 채웠다.
은하를 태운 헬리콥터가 백두산의 서문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을 때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가던 일행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
은하는 장백산천지회에 잡혀갔고 나머지 일행은 공안에 체포되고 말았으니 국정원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던 목련꽃 배송작전은 의심의 여지없는 완벽한 실패였다.
작전의 현지 책임자인 정 과장으로부터 이 같은 처참한 소식을 보고받은 곽 차장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정 과장! 헬기의 도착장소를 알아낼 수는 있겠나?”
“공안청이 아니라 소방청에 소속된 헬기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장백산천지회가 있는 서문 쪽일 가능성이 큽니다만 최대한 알아보고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곽 차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사무실의 책상을 두 주먹으로 내리 치면서 앞으로 불어 닥칠 뒷일 걱정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렇다고 이 중차대한 사실을 윤 비서관에게 통보하지 않을 도리도 없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전체 16층의 청와대 신청사 안에서도 대통령집무실과 같은 층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참모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늘 긴박하게 움직이는 국가안보실의 상황과는 달리 통일정책비서관실의 최근 표정만큼은 달랐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아침햇살이 부담스러웠던지 의자를 돌려 앉은 윤 비서관은 오늘도 침울한 분위기 속에 휩싸인 채 도무지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삼일특공대를 이끌고 있는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생각할 때 일분일초도 허투루 사용할 수 없는 비상 상황의 연속이다.
통일을 향해서 힘차게 내달려야 할 이 중차대한 시기에 이토록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큰 스트레스였다.
온통 머릿속은 사랑하는 아내를 사지에 내팽겨 두었다는 자괴감으로 꽉 차 있었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둔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면서도 결단을 미루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사정을 세심하게 헤아려주는 그분을 실망시킬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염없이 멍 때리는 시간만 길어지고 있었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성공 아니면 실패를 알리는 전화가 분명하다.
스마트폰을 잡은 윤 비서관의 오른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곽 차장의 머뭇거리는 말투에서 일순간 정적이 흘렀고 윤 비서관은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간파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차장님!”
차마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았던 곽 차장의 무거운 음성이 들려왔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만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을 만나 작전이 잘 안 됐던 모양입니다”
불길했던 직감이 적중하자 윤 비서관의 목소리가 더욱 떨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집사람의 신변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곽 차장의 한숨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윤 비서관의 뇌리에 까지 전해졌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오늘 아침 작전중에 은하 씨가 미상의 단체에 납치되어 어디론 가 끌려갔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후의 사정에 대해선 아직까지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만 현지에서 계속 추적 중에 있으니 좀 더 기다려봐야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곽 차장의 휴대폰에서는 더 이상 윤 비서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맥이 풀려버린 사람처럼 윤 비서관의 두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 윤 비서관은 자신의 울고 있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하여 어금니를 깨어 물고 있는 중이다.
한참을 그렇게 들고 있던 곽 차장의 휴대폰에서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윤 비서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상황에서 제가 뭘 해야 되죠?
무슨 일이든 다할 테니까 말씀만 해주십시오!”
“은하 씨를 구하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의 일이지 윤 비서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괴롭겠지만 우리의 일은 우리에게 맡겨두고 윤 비서관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해 주세요,
한 가지만은 약속드리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은하 씨를 구출하는 우리의 임무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됐습니다! 차장님의 그 말만 믿고서 저는 저의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끝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