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대고려연방 (70)

우리민족의 고토 3

by 맥도강

내가 연변으로 출장오기 한 달 전인 9월 초의 어느 토요일 오후다.

연길 시장 인근에 위치한 백여 평 규모의 작은 극장 앞, 일단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건물이 지어진지 백 년도 더 됐을법한 낡은 극장에는 붉은색의 한글로 ‘민족극장’이라는 현판이 위풍도 당당하게 걸려있다.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 명의로 된 전단지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 조작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격한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극장 안에는 이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자리를 가득 채웠다.

무대 위에는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의 분기토론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무대 왼편의 작은 단상에서는 촌스러운 콤비양복을 입은 이십 대 중반의 사회자가 행사를 시작하려는지 마이크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아, 아, 마이크상태 괜찮습니까?”

뒤편의 객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잘 들린다고 화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가 주최하는 분기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예년에 비해서 두 배나 많은 동포 여러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사회를 보는 저로서도 이렇게까지 많은 동포들이 참석하실 줄은 몰라 솔직히 얼떨떨합니다.

아무튼 참석해 주신 동포 여러분들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쪼록 오늘의 토론회가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에게 유익한 토론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토론에 앞서 본 연구소의 소장님이신 배우석 교수님께서 주제발표를 하시겠습니다.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배 교수가 단상으로 걸어 나오자 객석의 중간부터 앞쪽으로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그 광경은 배 교수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기 충분했다.

단상에 선 배 교수가 특유의 표정 없는 얼굴로 객석을 세심하게 훑어봤다.

그러더니 아래로 편 양손으로 모두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 뒤에야 일어선 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배 교수의 주제발표가 시작되었다.

“최근에 나는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였던 오녀산성이 있는 요녕성 환인시와 발해의 수도 상경성이 있는 길림성 영안을 비롯하여 요동 일대를 둘러보고 왔댔습니다.

가는 곳마다 입구의 안내판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고구려는 중국 변방에 있던 민족정권이라고 써놓았어요.


오골 산성과 박작산성은 대표적인 고구려의 축성양식이쟎아요?

그런데 그곳조차도 고구려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완전히 중국성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더란 말입니다.

중국식 문화를 상징하는 사자석상을 입구에 설치해 놓고는 버젓이 당나라의 장성이라고 선전하고 있었어요.

한 마디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심지어는 박작산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지경이에요,

만리장성이 무슨 고무줄이라도 되는 냥 자기들 마음대로 쭉쭉 늘리고 있어요,

역사가 무슨 장난도 아니고 지금 이 자들의 하는 짓거리가 우습지도 않아요,

집안의 환도산성, 환인의 오녀산성, 장화의 성산산성, 요동반도 대련에 있는 비자산성, 이런 성들도 전부 관광자원화 시키면서 하나같이 중국성이라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었어요.”

이 대목에서 배 교수는 격한 감정을 이기기가 어려웠던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극장 안을 한 번 쭉 둘러봤다.

“발해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차마 눈을 뜨고서는 바라볼 수가 없었어요.

이번에 가보니까 지난 2년 동안 비밀리에 상경성을 정비해 놓았는데, 완전히 당나라 식으로 조작을 해 놓았더란 말입니다.

온돌의 흔적이며 우물 터의 양식이며 발해고유의 특징을 모두 지워버리고 완전히 당나라 식으로 복원해 놓았는데 정말이지 기가 막혀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지금 배 교수는 최근에 우리 고대사의 유적지를 체계적으로 둘러보았을 때를 회상하면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동북공정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우리 고대사의 역사현장 왜곡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를 설명하면서, 특히 그가 둘러본 상경성의 모습을 설명할 때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치듯 말했다.


갑자기 배 교수가 아무 말 없이 객석 뒤편의 천장을 응시했다.

아마도 흥분된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모양이다.

배 교수는 단상을 오른손으로 내리치면서 격정적인 연설을 계속해 나갔다.

“중국이 지금 이런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를 자기네들의 역사로 왜곡시키기 위해서 중국에 있는 우리 민족의 모든 유적지를 철저하게 조작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저지르는 중대한 범죄행위로써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원래의 상태대로 복원시켜 놓아야 합니다!.”


이때 객석의 앞쪽에서부터 일제히 ‘옳소!’하는 고함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 고무된 배 교수는 한층 상기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중국의 이런 행위는 대국답지 못한 옹졸한 행위로써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중국이 그런다고 해서 엄연히 존재했던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저들의 역사로 뒤바뀔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말과 함께 앞의 단상을 또다시 힘차게 내리쳤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노 교수의 열정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여기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이 이 같은 중국의 패악질을 막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일치단결해서 우리 민족의 숨결이 서려있는 이 땅을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배 교수의 연설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았고 객석에서는 “옳소!”를 연발하면서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때였다. 중간쯤의 객석에 앉아있던 깍두기머리를 한 사내가 벌떡 일어서더니 배 교수를 향해 벽력같이 큰 소리로 고함쳤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쇠를 깎는듯한 쇳소리처럼 가늘면서도 악센트 높은 쉰소리로 대단히 듣기가 불편했다.

“이것 봐, 영감! 그럼 지금 이 땅이 도대체 누구 땅이란 말인가?

조선 땅이야? 중국 땅이야?”

배 교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 사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앞쪽에 앉은 이들도 모두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자 그의 날카로운 쇳소리는 계속되었다.

“지금 당신이 밟고 있는 이 땅이 마치 중국 땅이 아니라 조선 땅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데 당신 혹시 미친것 아니야?”

이 말을 신호로 “끌어내!, 박살 내 버려!”와 같은 험한 말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난동을 부리는 자들은 극장객석의 중간 이후에 앉아있던 백여 명에 이르는 자들이었다.


이 고함소리에 맞춰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극장의 뒤쪽 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몽둥이를 든 건장한 청년들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나와 순식간에 무대 앞과 양옆을 에워쌌다.

이렇게 되니 앞 좌석을 중심으로 앉아있던 채 백 명이 되지 않는 우리 동포들을 백 수십 명에 이르는 정체불명의 중국인들이 둘러싸는 형국이 되었다.


조금 전 배 교수에게 악다구니를 하며 고함을 치던 사내가 갑자기 무대 위로 뛰어올라갔다.

사회석에서 이 말도 안 되는 돌발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주를 무대 밑으로 밀쳐버리고 우격다짐으로 사회자의 단상을 차지한 그가 바로 장백산천지회의 행동대장 훠치산이다,

훠치산은 단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배 교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봐, 영감! 답을 해 보란 말이야.

당신이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 조선 땅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까는 잘도 지껄여대더니만 왜 이제는 겁이 나서 말을 못 하겠나?”


배 교수는 피곤했던지 두툼한 검정색 뿔테안경을 벗었고, 손수건으로 눈가 주위를 닦은 후 다시 안경을 섰다.

그는 정색을 하며 이 무례한 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체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요?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남의 학술행사를 이런 식으로 방해한단 말이오?”

“학술대회? 무슨 놈의 학술대회가 이따위가 다 있단 말인가!

얌전히 살아가는 조선족들을 선동하는 이따위의 불순한 행사를 겉포장만 학술대회라고 위장하면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배 교수가 이 무례한 자의 말을 받으며 나름으로는 위엄을 갖추어 준엄하게 꾸짖었다.

“우린 지금 그 옛날 이 동북삼성지방 일대에서 엄연히 존재했던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지키고자 토론회를 가지는 것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당신네들의 역사인 냥 왜곡시키고 또 그 현장을 조작하고 있으니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외다!”


배 교수의 이 말에 그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사회석의 단상을 양손으로 내려쳤다.

그 바람에 마이크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극장 안은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훠치산이 마이크를 다시 단상에 올린 후 고함을 질러댔다.

“지금 이 땅은 우리 중국 땅이야!

따라서 우리 중국 땅에서 있었던 과거의 모든 역사는 당연히 우리 중국의 역사란 말이지.

고구려건 발해건 우리 중국의 소수 민족 중 하나였던 예맥족이라는 부족이 세운 우리 중국의 지방정권이었어.

그런데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당신네 조선족들은 지금껏 우리 한족보다도 오히려 더한 혜택을 누리며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오지 않았나.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당신들은 지금 이 땅이 중국 땅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훠치산의 악다구니에 가까운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몽둥이를 들고 있던 패거리들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수십 명의 괴한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폼새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배 교수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한바탕 시원하게 웃은 뒤 더욱 위엄 있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시오!.

이것이 어디 세계를 품을 만큼 배포가 크다는 사람들이 할 짓이라 생각하시오?

왜 이리도 여유가 없소이까? 무엇이 그대들을 이토록 초조하게 만들고 있소이까?

역사유적지를 조작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치사한 짓이외다!,

한번 조작한 유적지는 원상으로 회복하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그대들은 이번에 인류사에 씻지 못할 유치하고도 치졸한 짓을 한 것이외다!.

대국답지가 않아요? 당신들이 제정신을 찾아야 합니다!.”


배 교수의 이 말을 끝으로 무지막지한 폭력잔치가 시작되었다.

몽둥이를 쥐고 있던 자들이 객석 앞쪽에 앉아있던 우리 동포들에게 마구잡이식의 몽둥이찜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배 교수는 이들의 난동을 막아보려고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몽둥이세례는 더욱 가혹해질 뿐이다.

그렇게 삼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지켜보던 훠치산의 명령이 있고서야 몽둥이찜질은 중단되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배 교수를 바라보며 훠치산의 기분 나쁜 쉰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우리 중국이 땅에서 연변조선족 자치주라는 자치행정을 허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신들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당신들의 문화까지도 보장하는 우리들의 선의를 이런 식으로 되갚는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의 선의를 베풀어주기가 어려워지겠지.

이 땅에서 조선족의 자멸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차후로는 자중 또 자중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야.

영감! 오늘은 이 정도에서 그칠 것이나 차후로 또다시 이런 분열반동적인 작태가 재현될 때는 뼈마디도 추리지 못할 줄 아시오.

우린 결단코 허튼소리를 하지 않소, 똑똑히 명심하시오!”


그 말과 동시에 청년들 몇 명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와 대형 걸개현수막을 떼어낸 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때 이들의 손목에는 파란색의 천지문양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훠치산이 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향하자 그를 필두로 몽둥이를 든 수십 명의 패거리들과 뒷좌석에 앉아있던 백여 명에 이르는 한통속들이 일시에 극장을 빠져나갔다.

극장의 맨 뒤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자가 있었다. 모자부터 구두까지 올 백색 차림인 천지회의 왕징(王卿) 회장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이 빠져나간 극장 안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범벅이 된 피 냄새로 역겨운 냄새들이 진동했고, 머리가 깨어지고 팔이 부러지고 어깨가 탈골되어 그 고통으로 사방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가까이나 난동과 폭행이 이어졌는데도 그 어디에도 중국 공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중국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배 교수는 무릎을 꿇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다.

그의 통곡은 오랜 세월 분명 우리의 영토였건만 지금은 남의 나라가 되어버린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민족의 비애를 대변하는 것이다.

무거운 검정색 뿔테 안경을 바닥에 벗어놓고 어깨가 들썩이도록 통곡하고 있는 그에게로 처참한 몰골의 우리 동포들이 다가왔다.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대고려연방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