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79)

동북공정의 교육장 3

by 맥도강

은하가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때 화장실 방면으로 걸어가는 은하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참고 있던 소변을 해결할 작정으로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 배 교수가 서있는 자리로 바바리코트를 입은 웬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사내의 얼굴이 하도 험상궂게 생겼기에 배 교수도 흠칫 경계하는 눈치다.

이 사내가 배 교수의 얼굴 가까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밀착시키고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웃었다.

그러더니 배 교수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봐, 영감! 우리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거 명심하고 있지?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도 항상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영감은 여기가 한국인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 여기는 중국이야, 중국!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사내는 씹고 있던 오징어 다리로 배 교수의 얼굴을 톡톡 치더니 이내 사라졌다.

별안간 벌어진 이 황당한 상황에 배 교수는 그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허탈하게 웃기만 할 뿐이다.

난 배 교수가 방금 무슨 일을 겪었는지 까마득히 모른 채 담배를 피울 요량으로 건너편의 정자나무 밑으로 갔다.

은하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지 그대로 서 있기만 할 뿐이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돌아왔을 때, 그제야 배 교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향해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윤 선생, 소련이 경제적인 문제로 무너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안에 있던 소수민족들이 모두 독립해 나가면서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이 졸지에 2등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이 모습을 지켜본 중국이 소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자국 내의 소수민족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공정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고 봐야 합니다."


배 교수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구둣발로 짓이겼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봐요. 만약에 한국이 북한을 흡수통일해서 북한이 잘 살게 된다면, 길림성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우리 조선족들이 동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신장자치구의 위구르와 서장자치구의 티베트도 덩달아서 동요할 수 있는 문제란 말입니다.

중국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이유로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어떤 식으로든 반대하려고 할 겁니다, 단순히 반대만 할까요?

글쎄요, 중국은 생각보다도 훨씬 무서운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 점을 잘 알아야 해요.”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불현듯 하버드대학의 마크 바임턴 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최근 들어 중국정부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소수민족이 바로 동북지역에 있는 조선족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중국은 한국이 통일된 후 옛 고구려 땅의 일부였던 간도일대를 한국영토라고 주장할 것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될 경우 중국의 입장이 실제로 수세에 몰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은 동북지역의 3개 성인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이 중국의 영토라는 것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1949년까지 단 한 번도 중국 중앙정부가 장기적으로 통치한 적이 없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가 힘들어지는데 중국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고, 동북쪽 국경을 유지하며 영토를 보존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아래서 나는 중국이 티베트 역사를 편입시키는 서남공정에 이어 동북지역의 문제를 다루는 동북공정을 시작했다고 본다.“


다시 택시는 한참을 달렸고, 얼마를 더 이동하자 우리 눈앞에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웅장한 모습의 장군총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높이가 13미터인 장군총은 그 보존상태가 너무나도 완벽하여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더 걸어가자 광개토대왕릉으로 짐작된다는 태왕릉이 나타났다. 그 규모가 장군총보다 네 배는 더 커 보였다.

다시 조금 더 걸어가자 높이가 6미터도 넘어 보이는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릉비가 우리들 앞에 우뚝 서있었다.


웅장한 광개토대왕릉비를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그런데 동북공정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중국 남서부에 있는 티베트의 서남공정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어요. 그 끝이 어디인가를 말입니다.

동북공정의 최종목적지가 어딘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일종의 거울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반도의 통일 이후를 대비하여 간도지방을 계속 관할하기 위한 포석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다른 의도도 가지고 있다고 봐야 됩니다.

만약에 북한이 어떤 사정으로 급격하게 붕괴된다면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우선권을 주장할 것인가 하는 음모도 숨어있다고 나는 확신하지요.”

순간 두려운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북경대학에서 교환연구원으로 공부하고 있을 때 그 대학의 왕소부 교수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했을 당시 그 땅은 중국 고대영토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은 중국의 지방민족이자 지방정권인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 지방을 점령하기 전에는 한사군, 낙랑군 같은 것이 있어서 중국이 직접 통치하는 상황이었다.

낙랑군은 중국의 영토였다.”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북부와 중국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해서 이 같은 논리로 설명하며 왕소부 교수는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의 북부까지도 중국의 고대영토라고 주장했다.

한 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미국인 학자 스티븐 모션이 자신의 저서 헤게먼<Hegemony>에서 밝힌 내용도 생각났다.

“정 위원장 정권이 붕괴하면 중국은 군대를 북한으로 이동시켜서 괴뢰정권을 수립하거나 자국의 조건에 따라서 한반도 통일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정권수립을 포함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나는 조용히 티베트의 현실을 떠올려 보았다.

1986년부터 십 년간 진행된 서남공정으로 티베트의 역사는 이제 완전히 중국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티베트가 동북공정의 거울이라는 배 교수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순간 온몸이 떨려오는 전율이 느껴지면서 소름이 돋아났다.

나는 태왕릉과 장군총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큰 칼을 높이 치켜든 채 무덤을 박차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쳐부수기 위해서 고구려의 용맹한 십만 대군을 이끌고 먼지 뻘뻘 날리며 만주벌판을 말 달리는 환영이 내 앞을 지나갔다.

상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새어 나왔다.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는 것으로 집안시의 유적지를 둘러보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우린 다시 택시에 올라 압록강 변을 내달렸다.

이천 년 전 만주대륙을 지배했던 우리 민족의 영광이 집약되어 있는 국내성이 이토록 처참하게 변해버린 현실 앞에서 난 가슴이 아팠다.

유적지마다 설치된 안내문과 각종 관광안내 책자 그리고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고구려는 한반도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주장으로 도배가 되었다.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일개 지방정권에 불과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중국, 너무도 속이 훤히 내다보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목격하면서 대국답지 못한 옹졸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중국이 차라리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다섯 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압록강 너머로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다.

그 옛날 고구려 땅에서 그 옛날 고구려 땅으로 지고 있는 노을이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지면서 울적한 마음이 물밀듯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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