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80)

동북공정의 교육장 4

by 맥도강

택시는 갈 때에 비해서 두 배는 쏜살같이 달려왔고, 어느덧 배 교수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배 교수와 은하를 먼저 내리게 한 후 아침에 합의했던 요금을 정산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기사는 오늘 수입이 짭짤했던지 연신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몇 번씩이나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배 교수가 지갑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 선생, 오늘 지출이 과하신 것 아닙니까?

내가 너무 떠드는 바람에 환인시에도 못 가보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늦었지만 들어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세요.”

별로 시장기도 없었고 또 늦은 시간 폐가 될 것 같아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아닙니다. 내일 백두산일정도 있고 하니 그냥 가보겠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피곤하실 텐데 어서 들어가십시오. 오늘은 정말 여러 가지로 유익했습니다.”

배 교수는 내일 보자며 악수를 청한 후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하는 은하의 손을 이끌다시피 기어이 함께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백산호텔까지는 걸어서도 삼십 분 남짓, 나는 연길시의 야경도 구경할 겸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배 교수가 은하와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보니 방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최 씨가 방바닥을 걸레로 닦으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배 교수, 도둑이 들었나 봐! 손님하고 현장에 다녀왔더니만 방이 이렇게 되어 있었지 뭔가.

없어진 물건이라도 있는지 찬찬히 한번 둘러보게나.”

배 교수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방이야 뭐 훔쳐갈 것이나 있겠나 마는 이 자들이 이제는 아예 이성을 잃어버렸어.

하다 하다 이런 좀스런 패악질까지 저질러 다니…”

배 교수의 이 말은 자신들의 소행임을 분명히 하려는 듯 범인의 흔적을 확인한 후 하는 울분이었다.

벽면에 붙어있던 ‘고토회복지역’이라고 적어놓은 대형지도가 조각조각으로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그 자리에는 붉은 매직으로 ‘중국인으로 살기 싫으면 중국 땅을 떠나라’는 경고성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었다.

웬만큼 상황을 정돈한 뒤, 배 교수는 최 씨와 함께 오늘일의 찹찹한 마음을 달래고자 순두부집으로 들어섰다.

배 교수가 들어서자 탁자하나를 차지하며 막걸리를 마시던 젊은 사내들이 모두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몰골이 한눈에 보기에도 형편없었다.

한 명은 왼팔에 깁스를 하고 있고, 또 한 명은 머리통에 열십자 모양으로 반창고가 붙어있다.

또 한 명은 왼쪽다리를 깁스한 채 목발을 짚고 있었는데 눈두덩이와 입술 주위까지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부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여긴 웬일이십니까?”

한 달 전 분기토론회 때 사회를 보다가 봉변을 당했던 성주가 왼팔에 깁스를 한 채 배 교수와 최 씨를 바라보면서 반갑게 말했다.

배 교수가 잔뜩 애정 어린 따듯한 표정으로 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하는 말이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그래 몸들은 어떤가? 많이 상하지는 않았고?”

눈두덩이가 시퍼런 채 다리에 깁스까지 하고 목발을 짚고 있던 경태가 말했다.

“이제 웬만큼은 나다닐 만합니다,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식사하러 오셨습니까?”

“아니야, 답답한 일이 있어 막걸리나 한잔했으면 하고 왔더니만 자네들도 와있었구먼?”

성주가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자신들의 맞은편자리에서 의자 두 개를 마련하더니 자리를 권하면서 말했다.

“그럼 잘되었습니다, 저희들과 함께 하시지요, 최 사장님도 같이 앉으시죠?”

이렇게 해서 탁자하나에 다섯이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성주가 배 교수와 최 씨에게 막걸리 한잔씩을 가득 따뤄준후 주인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줌마!, 우리 교수님 아시죠?”

차분하면서도 후덕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배 교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암요!, 우리 배 교수님을 모르면 제가 조선 사람이 아니지요,

그나저나 교수님!, 요 앞전 분기 행사 때는 마음 많이 상하셨지요?,

우리 조선사람들이 그 일로 해서 더욱 단합하자고 말들이 많습니다,

교수님께서 잘 이끌어주십시오, 저희들은 그저 교수님만 믿고서 따라가겠습니다!”

배 교수가 자신의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켠 후 주인아주머니에게도 자신의 잔을 건네며 반잔만 따라주었다.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 동포들이 이렇게 단합하는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머리가 깨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부러지더라도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 단합해서 꿋꿋하게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통일될 때까지 우리 동포들이 이 시련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잃어버린 우리 간도땅을 되찾을 수가 있어요, 우리 동포들이 장해요, 암요 장하다마다요!”

잠시 후 오늘은 주인아주머니가 배 교수에게 대접하겠다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김치 한 접시와 막걸리를 아예 큰 주전자로 가지고 왔다.

최 씨가 이들의 몰골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하는 말이다.

“자네들 그 몸으로 술들을 마셔도 괜찮겠는가?”

머리에 반창고를 붙인 기수가 막걸리 한 사발을 남김없이 들이키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인제는 괜찮습니다, 교수님 제잔도 한잔 받으시지요?”

배 교수는 기수가 따르는 잔을 받으며 다시금 이들을 훑어보고 있다.

“나와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맺은 후로 자네들이 고생이 많음일세!”

성주가 펄쩍 뛰는 표정으로 배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들은 교수님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든든하지가 않습니다."

이번에는 기수가 무슨 은밀한 말을 하려는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나저나 교수님!, 들리는 말로는 그때 그 패거리들이 장백산천지회란 소문이 있습니다."

이 말에 최 씨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장백산천지회라면 그 악명 높은 삼합회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네?,

그럼 이것 보통 큰일이 아닌데, 보통일이 아니란 말일세, 큰일이야!”

“쉿!, 최 사장님 좀 조용히 말하십시오!, 남들이 듣겠습니다!”


채 열 평도 안돼 보이는 식당 안에는 실제로 이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성주가 호들갑을 떨고 있던 최 씨를 다급하게 자중시키고 있었다.

그제야 최 씨가 주변을 돌아다보더니 자신의 왼손으로 입을 다물게 한 후 조심하겠다며 머리를 몇 번이고 끄덕인다.

기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배 교수는 최근 그 자신 주변에서 벌어졌던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상황들이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들고 있던 막걸리 잔을 단번에 들이켠 후 오른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하는 말이다.

“이 자들이 지금 여유를 잃어가고 있어, 무엇이 그리도 초조한 지 대국으로서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단 말일세,

그것이 걱정이야!, 우리야 힘이 없으니 밟으면 밟힐 수밖에,

그런데 말이야, 전에도 자네들에게 인동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우리 민족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찬 겨울바람을 이겨낸 인동초와 같다고 볼 수 있지.

바람이 불면 눕고 밟으면 밟히고, 세찬추위에는 하얗게 잎이 말라버리는 볼품없는 잡풀에 불과하지만 봄이 되면 또 오뚝이처럼 꿋꿋하게 되살아난단 말이야!,

진정한 승리자는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될 것이야!,

우리 모두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 모진겨울을 이겨내자고! 그래서 희망찬 새봄을 맞이해야 되지 않겠나?”


기수가 배 교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교수님!,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천지회가 단순한 삼합회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힐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모르긴 해도 교수님을 집중적으로 괴롭힐 것 같은데 교수님께서도 모쪼록 몸조심하셔야겠습니다”

이때 의자 옆에 세워둔 목발이 쓰러져 그것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던 경태가 거들고 나섰다.

“천지회는 삼합회와 연결된 극우단체라고 합니다,

동북삼성지방 일대에서 활약하는 중화주의 극우단체이기 때문에 우리 조선동포들이 과녁이 될게 뻔합니다,

저들은 동북공정을 방해하는 세력을 주타깃으로 삼아서 무지막지하게 테러를 가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모두들 조심해야 될 것 같습니다, 특히 교수님께서 더욱 조심하셔야 됩니다!”


자신의 손으로 입까지 틀어막고 있던 최 씨가 입방아를 찧고 싶어 도저히 못 참겠던지 어느새 머리를 쏙 들이밀었다.

“도대체 천지회 가들은 뭣 땜시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그 난리라 하던가?”

성주가 최 씨를 정색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최 사장님!, 부동산에 놀러 오는 분들 앞에서도 오늘 있었던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저자들이 교수님 주변에 끄나펄을 붙여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저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더욱 가혹한 테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말조심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이 사람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시나!, 나 이래 봬도 입무거운 남자야”


최 씨의 이 말에 모두는 큰 소리로 폭소를 터트렸다.

“내 지금 이 순간부터 오늘 들었던 이야기는 모조리 잊어버림세!. 그럼 됐는가?”

배 교수가 최 씨의 등을 두드리며 말한다.

“그래 이 사람아, 우리 모두 조심하세나”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었던지 배 교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착잡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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