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가는 길 4
이 말을 듣고 있던 창우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북한의 생명줄을 틀어쥐고 있는 건 중국이라고 봐야 됩니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원유공급만 중단시켜 버리면 북한은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돼버린단 말입니다.
흑룡강성 대경유전에서 출발한 대북송유관이 평안북도 봉화화학공장까지 모두 지하로 매설돼 있지요.
이 송유관을 통해서 북한에서 사용되는 원유의 90퍼센트를 중국이 무상으로 공급한단 말입니다,
이것만 중단시켜 버리면 모든 게 올 스톱이지요.
탱크는 석유 없이 움직여집니까?
북한 내 산업시설의 가동률이 현재도 30퍼센트 밖에 안 되는 실정인데 그마저도 모두 멈추어야 한단 말입니다.
앞전에 대포동미사일 사건이 터졌을 때, 원유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평소의 절반 이하로 원유공급이 줄어들었지요,
그런 일들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천만에요!
누가 목숨 줄을 틀어쥐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던 겁니다.
이런 형편에 북한이 중국을 상대로 역사논쟁을 벌여요?
어림반 푸릇 치도 없는 소리죠. 북한의 사정이 그렇게 한가롭지가 않습니다.”
북한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창우의 말이었으니 모두는 고개를 끄득였다.
대북 무역사업을 관장하는 실무책임자다 보니 한 달에 한두 번은 북한으로 들어가고 자연히 친분이 두터운 북쪽의 고위층 인사들도 여럿 있었다.
이러한 자신의 직무 때문인지 그는 동북공정과 관련된 문제라던가, 예민한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지만 부득이 발언할 때도 언제나 중국당국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말씀 중에는 발해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북방사에 대해서는 오히려 북한이 주도한 측면이 많다고 하셨는데요,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북방사에서 찾으려는 이유도 그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배 교수가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를 바로하며 내 질문에 답했다.
“6, 70년대에 북한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했다면서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했지요.
이렇게 되니까 당시 한국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를 강조하면서 거기서 통일의 기백을 찾으려고 했단 말입니다.
자연히 한국에서는 우리 민족의 북방사를 소홀히 다루게 되었고, 사대주의와 친일잔재의 산물인 반도사관으로 그 역사관이 축소되어 갔던 거라고 봅니다.
94년 당시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시절이었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민들이 굶어 죽던 그 시절에도 단군릉을 완성했어요.
그만큼 그들은 정권의 정통성을 우리 민족의 북방사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전번 한일 월드컵 때 보니까 요즘 한국청년들의 기상도 대단합디다.
붉은 악마 응원단이 치우천왕(蚩尤天王)을 자신들의 상징물로 들고 나온 걸 봤는데 그 기상이 훌륭하잖아요?
난 그때 눈물이 핑 돌더구먼. 얼마나 대견스러운 일이야.”
창우는 웬만한 신호등은 아예 무시하면서 차를 몰았다.
계기판의 속도계는 시속 150킬로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달려오기를 두어 시간, 드디어 길림성 백산시에 들어섰다는 안내 표지판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백산시에서 1박을 하고 내일 아침에 백두산을 올라갑니다.
작년에 왔던 그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창우가 작년에 왔던 그 호텔로 모시겠다고 하자 최 씨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작년에 왔던 그 호텔 말이지? 좋지, 좋고말고!
참, 은하는 처음 가보겠구나. 배 교수! 우리 오래간만에 백두산 도라지주 한잔하자고.”
최 씨는 벌써부터 신이 난 어린아이마냥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창우가 아버지와 최 씨를 모시고 작년에도 백두산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중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 간에도 신구세대의 갈등상이야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창우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그 무엇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방에 장백산이라는 큰 팻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부터 백두산으로 들어서는 길인 모양이다.
우거진 숲 뒤로 계곡물이 흐르는 경관 좋은 자리마다 여기저기 호텔들이 들어서 있었다.
차는 다소 한적한 자리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호텔 앞마당에 정차했다.
개량한복 차림에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중년의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창우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뒤따라서 내리는 배 교수와 최 씨에게도 허리를 깊숙이 구부리며 인사하는 말투에서 간간히 일본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우리 동포가 틀림없어 보였다.
창우는 이 사람에게 나와 은하를 소개했다.
“이 사장님! 이쪽은 내 동생 은하, 그리고 여기는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계시는 윤 선생입니다.
이분은 이 호텔의 주인이신데 조총련계열의 우리 동포 사업가이십니다.
나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서 이곳에 올 때마다 이 사장님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자, 인사하세요.”
그러자 이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허리를 깊숙이 구부리며 악수를 청한 후 창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배 과장님, 신세라뇨? 신세는 오히려 제 쪽에서 지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두 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정태라고 합니다.
편하게 지내다 가십시오. 우선 안으로 드셔서 여장부터 푸시지요.”
그의 안내로 2층 객실로 올라갔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최고의 성수기라 할 수 있는 가을의 주말이지만 호털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좌측으로 나란히 붙은 객실 세 개를 비워두었다.
“윤 선생, 피곤하실 텐데 샤워부터 하시죠.”
“아닙니다. 전 자기 전에 씻을 테니까 배 과장님부터 먼저 씻으세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주변경치가 일품이니 은하와 같이 산책이나 다녀오세요.
여섯 시경에 식사가 준비될 테니 그때까지만 오시면 됩니다.
참 단단히 챙겨 입고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창우의 권유가 없었더라도 백두산주변의 경치도 구경할 겸 산책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은하와 함께 다녀오라는 창우의 배려까지 있어 벌써부터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다.
난 처음부터 간편한 등산복차림이었으므로 그냥 나오려다가 단단히 챙겨 입으라는 창우의 말에 혹시 몰라서 준비해 온 겨울외투까지 끼어 입었다.
나오면서 은하를 부르고 싶었지만 배 교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서는 아쉽지만 혼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가 백두산이란 말인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서 천천히 걷다 보니 그야말로 대자연의 온갖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소리, 새소리, 다람쥐소리,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백두산이 살아 숨 쉬는 장엄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색찬란한 천연색깔로 치장한 가을 백두산자락의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한 감동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가슴이 벅차고 눈이 부시어서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