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89)

백두산의 포효 2

by 맥도강

백두산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모두는 벅찬 감동으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시퍼런 물이 백두산의 최고봉에 한가득이나 담겨 있었다.

그야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맑디맑은 천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최 씨의 말대로 정말 운이 좋았을까? 아니면 배 교수의 말대로 백두산의 뜻이었을까?

우린 물안개 한 점 없는 너무나도 깨끗한 천지를 보게 되는 행운을 잡았다.


밝은 햇살을 반사시키며 온 천지를 금빛 은빛으로 물들이는 천지의 장관을 어떤 말로써 표현해야 할까?

난 벅찬 감동에 잠시 가슴을 움켜잡았다.

은하도 자신 앞에 펼쳐진 이 장엄한 순간의 감동을 만끽하려는 듯 휘날리는 머리칼을 그대로 둔 채 말없이 서 있었다.

잠시 후 영롱한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미소 짓는다.


천지! 하늘의 연못이란 뜻으로 천 년 전 대규모의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호수다.

당시의 폭발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웅덩이의 깊이는 천 미터에 달하고, 터져나간 봉우리의 잔해들은 오늘날 동해 건너 일본에서까지 발견될 정도다.

당시 거란에 의해서 영토의 많은 부분을 빼앗긴 발해 유민들이 여기 백두산을 중심으로 발해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백두산의 화산폭발로 발해는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배 교수가 내 옆으로 다가와 천지를 오른손으로 가리키며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보시오! 여기가 바로 우리 민족의 혼이 일어섰던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란 말입니다!

우리 민족의 뿌리가 반만년을 내려 뻗은 출발지가 바로 여기입니다.

저 천지가 담고 있는 물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담고 있어요.”

세찬 바람 때문에 큰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으므로 그는 큰 소리로 고함치듯이 말했다.


얼마나 추웠던지 입가에는 침샘 덩어리가 보기에도 흉하게 뭉쳐 있었지만 그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윤 선생! 여기 천지를 가로질러서 저쪽 반대편 6할은 북한령이고, 이쪽으로 그 나머지 4할이 중국 령입니다.

이 경계는 1962년 조중변계조약을 통해서 확정되었어요. 이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이 회담은 오늘날까지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지고 있는데, 배 교수의 설명은 이러했다.

1712년 조청 간의 국경회담으로 양국이 결정한 국경은 분명히 ‘동위토문, 서위압록’이다.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는 것이어서 물줄기가 송화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여기 동간도 땅 일대가 분명한 우리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당시 북한 당국은 이 부분을 망각한 채, 천지를 가로지르는 국경에 합의함으로써 우리 민족에 큰 죄를 짓고 말았다.

다만, 동쪽의 국경을 중국 측의 주장대로 두만강으로 확정하는 대신 천지에서 두만강으로 흐르는 네 개의 지류 중 최상류의 지류를 경계로 삼았던 것은 그나마의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최 하류부터 석두수, 홍단수, 석을수, 홍토수 중 청일 간의 간도협약 때는 석을수를 경계로 삼았던 것을 최상류의 홍토수로 그 경계를 정함으로써 천지의 60퍼센트가량이 북한령이 되었다.


어쨌든 중국은 간도협약으로 획정된 국경보다 뒤로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것은 당시 중국 내 소수민족과 주변의 약소국들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던 주은래의 덕을 본 것이라 한다.

이로 인해 주은래는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로부터 국토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몰려서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또다시 울분에 가까운 배 교수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북한이 해방 후에 잘만 했더라면 이 천지를 포함해서 동간도 땅의 일부인 연변만이라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단 말입니다.

왜 그 기회를 못 살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 이야기는 나로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귀가 번쩍 뜨였고, 배 교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해방 이전까지 간도 땅에는 일본의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있었단 말입니다.

당시 일본군을 쫓아내고 이 땅을 점령했던 군대는 소련군이었어요.

중국은 국공내전이 한창인 때라 여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

1948년 2월 소련 중공 북한이 평양에서 체결했던 문서가 있어요.

이 문서에 따르면 동북지방의 일부를 3개 한인자치구로 확정하고 이를 장차 북한에 귀속시킨다고 합의했단 말입니다.

북한은 애당초 길림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개현을 되돌려 달라고 했어요.

지만 최종적으로 합의를 보기로는 오늘날의 길림성 동부에 있는 연변조선족 자치주에 해당하는 3개현을 돌려받기로 3국이 합의를 봤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유야무야 되어버렸어요,

전쟁 후라도 돌려받았어야 했는데 합의까지 해놓고 왜 못 돌려받았느냐 말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당시 북한은 우리 민족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겁니다.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면적이 한반도의 사분의 일이나 됩니다. 이 땅만이라도 그때 회복했어야 했단 말입니다.”


배 교수의 눈가에는 두꺼운 뿔테안경이 하얗게 서리가 맺히면서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백두산이 양분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고토인 간도 땅을 잃어버렸다.

천지를 가로질러 백두산이 양분된 우리 민족의 현실이 서글펐을 것이다.

잃어버린 간도 땅을 되찾아야 하는 민족적인 과업은 시급한데도 양분된 조국의 무기력한 현실이 서글펐을 것이다.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고토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집불통 민족사학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 후 배 교수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만세를 부르며 외치기 시작했다.

흡사 포효하는 백두산 호랑이의 모습과 같았다.

“백두산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다!. 간도땅의 주인도 우리 민족이다!.”

어느새 최 씨도 함께 만세를 부르며 따라서 외치기 시작했다.

“백두산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다!. 간도땅의 주인도 우리 민족이다!.”

그 순간,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집중되었다.

제정신이 아닌 기이한 사람들의 행동쯤으로 치부하면서 일제히 수군거리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싸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창우가 이러한 민망한 분위기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지 나와 은하의 팔을 잡아끌었다.


창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와! 졌습니다, 졌어요! 오늘부로 우리 아버지한테 완전히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이건 뭐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디 불안해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윤 선생, 이제 내 마음을 좀 아시겠습니까?

은하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똑똑히 봤으니까 오빠 심정을 좀 이해해 줘라.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돼 갔나?

완전히 돌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 말이다.”

흥분한 창우가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고 있었을 때, 은하는 말없이 반대방향으로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눈가 주위를 닦고 있다.

어깨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은하를 진정시켜 주고 싶었지만, 창우가 그런 여동생을 사정없이 윽박질렀다.

“바보처럼 울기는 왜 울어!”

그렇게 말하고는 그의 손수건으로 은하의 얼굴을 닦아준 뒤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자 우리는 사진이나 찍읍시다.

은하도 돌아 서서 윤 선생하고 다정하게 한번 서 봐.”

창우는 미리 준비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우리더러 포즈를 취해 보라고 재촉한다.

덕분에 난 스스럼없이 오른손으로 은하의 허리를 살짝 잡은 자세로 포즈를 취했다.


창우는 언제 그렇게 불같이 화를 냈을까 싶게 다시 천연덕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햐, 제법 자세가 나오는 게 어제오늘 맞춰본 자세가 아닙니다. 윤 선생!

솔직히 고백해 봐요. 우리 은하하고 포옹 몇 번이나 해봤어요?”

이 말에 은하가 내 뒤에 숨으며 부끄럽게 웃어 보였고, 나도 뒤통수가 가려운 표정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제 천지폭포 앞에서 포옹한 것을 들켜버린 어린아이처럼 우린 그렇게 순진한 표정이 되었다.

창우는 연신 싱글벙글 장소를 옮겨가며 계속 다양한 포즈를 주문했고, 은하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내가 유도하는 포즈의 자세를 잘 따라주었다.

아버지도 사진을 찍어 드리자는 은하의 말에 창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지 십오 분쯤 뒤에 내려오라는 말을 남긴 채 곧장 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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