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88)

백두산의 포효 1

by 맥도강

다음날, 햇살마저 뽀송뽀송한 감촉이 느껴지는 화창한 아침이다.

백두산의 온갖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어서 일어나라고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창우는 옆 침대칸에서 입은 옷 그대로 엎드려서 자고 있다.

몸에선 아직도 술 냄새가 진동하는 것으로 봐서는 새벽이 되어서야 올라온 모양이다.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밖으로 나왔다.

배 교수는 등산복차림으로 호텔 주변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고, 최 씨는 그 나름대로의 운동을 참으로 독특하게 한다.

아마도 그 자신이 개발한 맨손 체조의 일종인 듯 연신 두 손을 올렸다 내렸다, 허리를 숙였다 폈다 하는 단순한 동작을 끝도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은하는 빨간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두 다리를 모았다 폈다 하늘을 향해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귀여운 토끼가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수줍은 얼굴이 되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은하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녀 바로 옆에 배 교수가 버티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머뭇거렸다.

이때 최 씨가 특유의 밉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

“윤 선생, 온천물에 몸 좀 풀었어요? 물이 반질반질한 게 다른데 하고는 다르지 않아요?

창우는 아직 안 일어났나 봅니다.”

넋을 놓고 은하를 바라보다가 얼른 고개를 돌리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아, 예 편히 주무셨습니까? 배 과장님은 늦게 들어온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하던 운동을 이제는 그만 끝내려는지 옆의 나무벤치에 앉았다.

목에 걸친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밥 먹을 때가 다됐는데, 깨워야 되지 않나?”

주변을 혼자 거닐던 배 교수가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거, 큰일이네. 드디어 백두산공정이 시작되었어!”

배 교수는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난 갑자기 어제 일이 생각나서 하마터면 웃음보를 터트릴 뻔했다.

어제 그 산골마을에서 땅의 소리를 들어보라며 자신의 귀를 땅바닥에 갖다 대던 기이한 행동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배 교수의 말이라면 항상 귀를 쫑긋거리던 최 씨가 이 말마저 엿듣고 말았다.

“뭐가 큰일 났어? 공정이 어쨌다고?”

“이 한심한 친구야. 동북공정의 마각이 백두산에서 그 이빨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단 말이야.”

그제야 최 씨도 배 교수가 또 동북공정 이야기를 하나보다 생각했던지 이제는 아주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어이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그놈의 동북공정이 이번에는 또 이빨을 드러냈어? 거참 고얀 놈일세!”

최 씨의 걸쭉한 입담에 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은하도 얼마나 웃었으면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배 교수도 어이가 없는지 멀건 표정이 되어 그를 바라봤다.

이때 창우가 방금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를 털면서 슬리퍼를 질질 끌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두 눈은 아직도 붉게 충혈된 상태다.

필경 어젯밤 우리가 올라온 뒤에도 한참을 이 사장과 긴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창우는 우리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고 식당에는 이 사장이 직접 산나물국으로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도 창우만큼은 아니지만 어젯밤 주독의 피로가 완연해 보였다.


나 역시도 어제는 꽤 많은 술을 마셨지만 신기하게도 뜨거운 산나물국 몇 숟가락으로 주독이 모두 해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시원한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 사장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이 사장의 표정에서는 앞날에 대한 감당하기 힘든 걱정들이 서려있었다.

그러면서도 요 며칠은 안개 때문에 천지를 본 손님들이 없었지만 우리 보고는 화창하게 맑은 천지를 보게 될 거라며 기분 좋은 덕담까지 해주었다.


창우의 사륜구동 지프차는 백두산의 정상 천지를 향해서 출발했다.

잘 포장된 도로였지만 경사가 급하여 사륜구동이 아니면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앞으로 달려가는 차들도 모두 사륜구동의 SUV 차량들뿐이다.

올라가는 동안 그저 산에 대한 경건한 마음만이 올라올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반쯤 열어놓은 차창을 통하여 불어오는 백두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들이마셨다.

내 심신을 이 거대한 산에 맡기고 싶었다.


이 와중에도 배 교수의 탄식은 계속되었다.

“윤 선생, 백두산정계비도 만주사변 때 일본 놈들이 뽑아 없애버린 마당에 이제 토문강의 흔적마저 지워버린다면 그야말로 동위토문은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동쪽국경인 두만강을 고착화시키는 그야말로 동위두문이 되고 마는 것이에요,

대체 우리 땅 간도의 고토는 어떻게 회복한단 말입니까. 답답한 노릇입니다. 답답한 노릇이에요.”

참으로 징그럽기까지 한 배 교수의 집착을 대하면서 난 ‘이 분이야말로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남들이 볼 때는 기이한 행동이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온통 그의 머릿속에서는 민족에 대한 걱정만으로 살아가는 진정성이 있었다.


이때, 나의 영원한 스승이신 서 교수님이 생각났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진통 끝에 출범하던 날, 내손을 꼭 잡으시고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시며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우리의 각오를 제2의 나당전쟁에 임하는 각오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난 지금까지 그분만큼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우리 민족의 혼을 지키고자 했던 그분의 고매한 인품 앞에선 언제나 숙연해졌고 그분처럼 살겠노라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순간, 서 교수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여기 백두산 자락에서 고토회복에 대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또 다른 민족주의자를 대하고 있다.

이 분의 하염없는 탄식을 바라보면서 서 교수님에게서 느꼈던 진정 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지금 배 교수는 은하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진실로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는 한 분의 스승으로서 내 가슴을 울리고 있다.

힘 좋은 사륜구동 지프차일지라도 높이 올라갈수록 숨이 차는지 헉헉거리는 차소리가 안쓰러울 정도로 맹렬하다.

나무들의 크기도 점차 작아지더니 이내 나무들의 흔적조차도 사라졌고 그 끝이 하얗게 말라가는 야생초들만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면서 우리를 환영하고 있다.

이제 목적지에 다 다른 듯 완만한 자리 한편에 십여 대의 다른 지프차들 사이로 우리 차도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천지를 향해서 걸어가는 동안 매섭게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최 씨가 추위를 이길 요량으로 양팔을 낀 채로 올라가며 말했다.

“배 교수, 오늘 우리가 천지를 볼 수 있을까?

이 사장은 안개 때문에 요 며칠 천지를 본 사람들이 없었다고 했는데 천지가 안 보이면 어쩌지?

작년에도 우린 못 봤잖아? 오늘만큼은 우리가 운이 좋아서 쾌창하게 맑은 천지를 보아야 할 텐데.”

최 씨가 천지를 목전에 두고 조급증을 내고 있었지만 배 교수는 오히려 느긋하게 말했다.

“모든 게 다 백두산의 뜻인 게지. 백두산을 영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보여주시면 감사하게 보는 것이고, 보여주지 않으시면 하는 수 없는 게지.”

과연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설레는 가슴으로 모두의 걸음이 빨라졌고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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