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91)

백두산의 포효 4

by 맥도강

마치 연설하듯이 오른손을 들어 열정적으로 말하는 그의 말투 하나하나에는 그만이 가지는 어떤 독특한 힘이 서려있었다.

이제는 아예 자신의 안경까지 벗더니 그것을 오른손으로 흔들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 손동작이 어찌나 절도가 있고 목소리에 힘이 넘치던지 나도 모르게 그의 연설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흥분의 도가 세어지더니 자기도취에 휩싸이는 듯 말의 악센트가 강해졌다.

그의 흥분상태로 봐서는 또다시 무슨 사고를 낼 것만 같아 우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멀리 바라보면 앞날이 열리는 법이거늘, 우리가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그때를 대비해서 우리 민족이 한 덩어리로 뭉쳐야 하거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단 말입니다!

소련이 저렇게 산산이 분해되어 2등 국가로 전락할 줄 누가 알았겠소?

유고슬라비아는 또 어떻게 분해되었소? 모두가 민족 별로 갈기갈기 갈라섰지 않았어요?

지금의 중국은 강력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십 년 후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니겠소?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 체제가 붕괴되었을 때, 우리는 연변에 조선족 자치국가의 설립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리하여 남과 북 그리고 여기 동간도를 합친 대한반도의 통일을 추진하게 될 겁니다!

간도 땅 찾기 운동은 중국의 동북공정 음모에 대항하는 우리 민족의 소리 없는 전쟁이란 말이오!”


배 교수의 말이 여기에 까지 이르자, 갑자기 '끼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가 급정차했다.

창우가 뒤를 돌아보더니 맹수가 포효할 때 발산하던 그 눈빛으로 배 교수를 노려보면서 소리 질렀다.

“아버지 미쳤어요?”

벽력 같은 소리로 고함을 친 창우는 차에서 내리면서 차문을 발로 차버리며 닫았다.

그리고 저쪽 편으로 한참을 걸어가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침대칸에 누워있던 최 씨는 앞 좌석에 머리를 부딪치며 바닥에 떨어졌고 연신 '아이고, 아야~ ' 소리를 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은하도 많이 놀랐던지 얼굴색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은하는 최 씨가 걱정되었던지 괜찮으시냐며 최 씨를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듯했다.

배 교수는 ‘나쁜 놈의 새끼’라는 험한 말을 되뇌면서 최 씨와 함께 차에서 내려 창우와는 반대편으로 걸어가서 담배를 꺼냈다.

은하가 창우에게 다가가기에 나도 무심결에 그의 옆으로 다가갔고 은하가 어렵게 입을 뗐다.

“오빠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도 계시는데, 꼭 그래야만 했어요?

왜들 그러시는지, 정말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오빠, 진정하고 계세요. 아버지한테 가볼 테니…”

은하는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아버지에게로 뛰어갔다.

창우는 먼 산만 바라본 채 내게 말했다.

“윤 선생, 미안합니다. 내가 성미가 좀 급해서 실례를 범했어요

“…”

“거 참, 우리 아버지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니 큰 걱정입니다.

여긴 한국이 아니라 엄연히 중국인데도 말입니다.

도대체 말을 가려서 하는 법이 없으니 보통일이 아닙니다.

방금 아버지가 한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아십니까?,

중국이라는 대용(大龍)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말이란 말입니다.”

창우는 이 상황을 용이라는 영물을 등장시켜서 설명했다.

자고이래로 용은 왕이라는 절대 권력에 비유되는 상상의 동물로 비쳐왔다.

용의 역린을 건드린다는 것은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의미했다.


창우의 눈은 피곤과 절망이 뒤범벅이 된 채 벌겋게 충혈되었다.

“내가 명색이 중국공산당의 당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중국의 고민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중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중국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제국주의가 자리 잡고 있어요.

일면 관대한 척 보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대단히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인구의 92퍼센트를 차지하는 한족들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단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국토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55개의 소수민족이지요.

중국의 역사 속에서 한족(漢族)이 전국토를 통일하여 광범위하게 전 중국을 통치한 역사는 사실 알고 보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소수민족과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소수민족의 융화 단결은 오늘날 중국의 생존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서장자치구의 서남공정이나 신장자치구의 서북공정 그리고 조선족 자치주의 동북공정은 모두 중국의 소수민족 중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된 티베트와 위구르, 조선족을 특별 관리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장기프로젝트란 말입니다.

1959년 3월, 티베트의 수도 라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지 않았겠어요. 만약에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미국과의 전쟁이 두려워서 중국이 주저한다고 보십니까?

천만에요! 핵전쟁이라도 불사할 겁니다.

한 개의 소수민족을 봐주게 되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55개의 소수민족이 모두 분열돼 나갈게 분명한데, 중국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지금 용의 역린을 건드린 겁니다.

아버지도 죽고 나도 죽고 우리 조선족이 다 죽을 수 있어요!

나이를 드시면서 왜 저리도 철이 없어지는지 정말이지 괴롭습니다.”

담배가 다 떨어졌는지 창우는 그의 오른손으로 담뱃갑을 찌그러뜨렸다.

내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한 대 더 건네주자 담배를 잡은 그의 오른손이 떨렸고 불을 붙여주는 내 손도 덩달아 떨려왔다.

담배 한 모금을 가슴 깊숙이 들이마시더니 이내 길게 내어뿜는다.

“미안합니다. 선생 앞에서 내가 너무 소란을 떨었어요.

그러나 난 선생이 남 같지가 않아요. 우리 은하를 잘 보살펴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한 식구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선생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해할 수 있죠?

내가 우리 아버지를 단속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당신을 미워해서 하는 이야기로만 알아들으니 말입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교수님께서도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하신 말씀은 아닌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부자지간이지 않습니까? 두 분이 자주 말씀하시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도록 하시죠.”

창우는 내가 마음에 든다며 어깨를 두드린 후 이제 그만 출발하자며 다시 차에 올랐다.

차 안에는 배 교수도 최 씨도 창우와는 시선을 교차하지 않으려는지 차창 밖만 멍하니 쳐다보며 어두운 표정들을 하고 있다.

이때 은하가 아버지를 돌아보며 눈짓으로 뭔가를 채근했고, 배 교수는 그제야 마지못한 얼굴을 하면서 시선을 중앙으로 모았다.

그리고 맥이 풀려버린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아까는 내 말 중에 실언이 있었다. 미안하게 됐어.”

배 교수가 느릿하게 말하는 동안 그 모습이 어찌나 안 됐던지 가슴 한가운데서부터 찡한 그 무엇이 전해왔다.


은하가 창우를 바라보며 채근하듯이 말했다.

“오빠! 인제 마음을 좀 풀면 안 되겠습니까?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사과하시고 있지 않습니까?”

애타는 심정으로 은하가 사정하듯이 말하자 창우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운전석의 백미러로 배 교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런 말씀 자꾸 하고 다니시면 아버지뿐만 아니라 연변의 우리 조선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더 이상은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차후로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으면 앞으로 아버지는 제 장례식 때나 볼 수 있을 겁니다. 아시겠죠?”


배 교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차 안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살벌하면서도 적막한 분위기로 가득했고, 감히 어느 누구도 미동하지 못한 채 장석처럼 굳어 있었다.

차가 출발하면서 은하가 조수석의 차창을 반쯤 열고나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차 안에 산소가 공급되기 시작하자 긴장이 풀리면서 동맥의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개가 힘없이 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왔다.

찻소리, 바람소리, 팽팽하게 감도는 차 안의 긴장감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선잠이었지만, 그래도 잠이라는 마법은 시간을 초월하고 있었다.

국도에 진입했는지 차는 부드럽게 달리는 느낌이 들었고, 또 얼마 후 연길시내에 들어왔는지 주변의 사람소리들이 차창 밖에서부터 들려왔다.

지만 비몽사몽 간에도 눈은 떠지지 않았다.

은하가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눈을 떠보니 배 교수의 사무실 앞이었다.

들어가셔서 편히 쉬시라는 내 인사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배 교수는 휑하니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최 씨는 소천지에서 떠온 물통을 힘겹게 들고 가면서도 잘 가라며 내게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창우는 우릴 태운 채 백산호텔로 향했다.

차가 이동하는 십여 분의 시간 동안에도 우린 아무 말이 없었다.

백산호텔 앞에서 차는 정차했고 우린 모두 차에서 내렸다.

창우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으니 마음 쓰지 말라고 했는데, 그의 표정에선 무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창우가 먼저 차에 오른 뒤에도 은하는 또다시 금방이라도 눈물샘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한 후에야 차에 올랐다.

사라져 가는 그들을 힘없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은하가 나에게 미안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손을 흔드는 은하의 모습이 저만치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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