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음모 1
길림성 청사의 지하 3층에 위치한 비상통제구역, 이곳은 처음부터 특별히 보안을 요하는 중요회의를 위하여 설계된 장소였다.
완벽한 방음시설에 2중의 출입문 앞에는 완전무장한 경비병들이 좌우로 서서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다.
지금 이곳 소회의실에는 중국 군부의 실세인 리하오쑤(李昊蘇) 총 정치부 주임을 비롯한 모두 여덟 명의 당정군 고위인사가 참여하여 팽팽한 긴장감속에 벌써 한 시간째 회의 중이다.
이 자리에는 동북공정의 총본산인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을 직접 지휘하는 중국사회과학원의 허밍친(何應欽) 원장도 참여했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서둘러서 북경에서 출발하여 길림성 장춘으로 날아온 이유는 동북삼성지역, 그중에서도 특히 길림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최근 북한의 제1차 핵실험으로 일촉즉발의 위험수위까지 다다른 북미 간의 긴장도는 접경지역의 주민들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만약 북미 간의 핵전쟁이라도 발발한다면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길림성이 입게 될 피해는 불을 보듯 자명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북한의 핵실험을 바라보는 당국의 대응은 한마디로 뜨뜻미지근하기만 했다.
북한의 눈치나 살피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지도부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주민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나가는 실정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부랴부랴 중앙당 차원의 대책을 수립하고자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리하오쑤(李昊蘇) 총 정치부 주임을 파견했다.
리 주임은 평소 북한과 동북삼성의 문제는 동북공정으로 풀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동북공정의 최고 책임자인 허밍친 원장을 이곳까지 대동했다.
리하오쑤와 허밍친을 제외하고도 이 자리에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길림성을 움직이는 당정군의 핵심 인물들이 거의 다 참석했다.
이들이야말로 실제로 동북공정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실무책임자들이다.
길림성의 4역이라는 우커핑(吳克平) 길림성 책임비서, 마초우준(馬草埈) 정치부장, 항리우(杭立武) 감찰부장, 인창칭(殷長靑) 선전부장을 위시하여 선마오성(申武盛) 16집단군 참모부장, 그리고 왕징(王卿) 장백산천지회 회장이다.
회의 시작부터 여기저기서 흥분된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회의실은 이들의 격앙된 목소리로 자못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길림성의 제1인자와 2인자가 연속적으로 발언했다.
“핵실험 강행 25분 전에야 노동당 중앙연락부를 통해서 그것도 전보로 우리 외교부에 통보를 했다고 하니 이것은 저들이 우리를 얕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아주 본 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16집단군 참모부장께서도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은데”
지목을 받은 선마오성 제16집단군 참모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탁자를 손가락으로 탁탁! 치면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했다.
“지금 16집단군 고위 장성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번만큼은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중조국경 최전방에 배치된 우리 16집단군과 64집단군의 병력을 추가로 증파해서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정제되지 않은 초강경 목소리들이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왔다.
이들은 중앙당의 실세인 리하오쑤 총 정치부 주임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그동안 축적된 접경지역의 긴장감을 한꺼번에 토해 낼 심산이다.
"이번에 조선은 우리 측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눈치 안 보고 제멋대로 행동하겠다는 선전포고입니다,
저 망니니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동북지역 전체가 핵전쟁 터로 변할 수도 있는 대단히 위중한 상황입니다,
인민들의 동요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강력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조만간 당군정 연석회의를 소집해서 가장 강력한 불쾌감을 전달하는 수단을 모색해야 합니다."
"주석께 건의해서 조선으로 무상지원하는 원유 송유관을 전면 폐쇄하는 것은 물론, 일체의 원조를 중단하고, 평양주재 중국대사를 즉각 소환해야 합니다."
이때 청나라 전통복장의 옷소매 속에 양팔을 집어넣은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허밍친 원장이 이들의 발언에 가세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문제는 오늘날의 조선 권력집단이 너무나도 자주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동북공정의 완성을 위해서도 이 시점에서 조선의 자주성을 꺾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좋은 의견을 구하자고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는 홍일점인 사십 대 중반의 작달막한 키의 여성이 날카로운 눈매를 치켜뜨면서 허밍친 원장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길림성의 권력서열 4위 인창칭(殷長靑) 선전부장으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주변의 인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하여 독거미라는 별명이 붙은 대단히 냉철한 여성이다.
“그 자주성의 핵심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그녀가 허밍친을 대면하기는 이번이 세 번째였지만 그녀야말로 허밍친 원장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동북공정의 최전선은 길림성인데도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글쟁이가 북경에 버티고 앉아서 동북공정의 최고 책임자 입네 하면서 지시하는 꼴이 도대체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길림성 내에서 이루어지는 고구려, 발해의 유적지 조사도 모두 자신의 소관업무였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변강사지연구중심이라는 이상한 조직이 생기면서 모두 북경으로 넘어가 버렸다.
흑룡강파건 장백산천지회건 모두 자기 손바닥 안에서 놀았는데 요즘은 그들조차도 자신을 우습게 알고 허밍친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허밍친은 노련하게도 마치 학생을 가르치듯 차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해 나갔다.
과연 그에게서는 역사학계 최고권위자로서의 품위가 넘쳐났다.
그는 번쩍거리는 대머리를 꼿꼿이 든 채 인창칭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마치 너 같은 애송이는 내 적수가 아니라는 태도다.
“짐작하시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조선의 군부가 아니라 정일 국방위원장입니다.
우리가 똑바로 직시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조선의 자주성은 정일성 주석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망한 지 이미 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조선의 주석이 정일성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오늘날의 조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일 위원장이 그 자리에 앉고 싶어도 앉을 수가 없는 것이 오늘날 조선의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통치기반을 정일성 주석의 유훈통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창칭도 지지 않았다. 그녀야말로 자신의 가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팔로군 출신으로서 마오쩌뚱과 대장정을 함께 한 중국공산당 창건의 핵심 인사였다.
“그런데 정일성이라는 약발이 과연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정일의 아들 대와 그 손자 대에까지 이어질까요?”
“글쎄요,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볼 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정일 위원장이 없는 조선을 상상해 보고 그다음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것은 곧 조선사회 전체가 정신적인 구심체를 상실한 채 급속한 공항상태로 빠져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조선의 군부는 우리에게 협력하여 저들의 살길을 모색하기에 바쁠 것입니다.
어차피 조선은 선군정치라는 미명하에 군부가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 위원장이 없는 조선을 우리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겠습니다."
허밍친을 향한 표독스러운 눈빛을 멈추지 않던 인창칭의 반격이 이어졌다.
"지금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하셨습니까?"
의기양양한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과연 조선이라는 나라에 상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나치게 학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