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음모 2
묘하게 분위기가 중앙과 지방의 대치전선으로 흘러가자 이번에는 우커핑(吳克平) 길림성 책임비서가 나섰다.
자칫 길림성의 책임자들이 북경에서 내려온 인사들과 대립하는 태도로 비쳐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급히 수습에 나섰다.
“우리 길림성은 동북삼성 중에서도 조선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위수지역이기 때문에 항상 조선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실정입니다.
몇 년 전부터 조선의 불편한 속내를 알면서도 중조 국경선에 공안 대신 인민해방군을 대거 투입하여 국경수비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명분은 탈북자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어느 시기 급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조선 내부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조치였습니다.
이번에 조선의 핵실험으로 술렁이는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서도 당국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점을 리하오쑤 주임께서 각별히 참고하여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길림성의 조무래기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댈 때는 심기가 불편했지만 그래도 책임비서가 자신의 체면을 살려주니 이제는 자신이 이곳에 내려온 목적을 분명히 밝혀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인민복 상의를 탁탁! 털면서 일어나더니 좌중을 천천히 살펴본 후 발언을 시작했다.
오늘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쳐다보면서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려는 심산이었다.
“본인이 급히 북경으로부터 날아온 이유는 조선과 가장 가까운 이곳 길림성의 분위기를 파악하여 중앙당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중앙당의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현시점에서 중국은 한반도에서 여타의 위기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반대합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의 핵심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길림성의 최고 책임자들을 모신 자리에 허 원장과 함께 비선조직의 대표도 자리를 함께 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차후로는 변강사지중심의 정당성이나 허밍친 원장의 활동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각해 주자 허밍친 원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옆자리의 감찰부장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것은 극비사항입니다만 정 위원장의 최근 건강상태는 최악입니다.
머지않아서 정 위원장의 유고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이럴 땐 우리 중국이 가장 민첩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닥쳐올 앞날의 불안감 때문에 혼란스러운 조선의 군부를 적극 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속하게 친 중국정권을 수립하도록 조종해야 합니다.”
리하오쑤 주임은 우커핑(吳克平) 길림성 책임비서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회의실의 분위기를 더욱 긴장상태로 몰아갔다.
“국가적인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의 종국적인 목표는 조선의 완전한 흡수합병입니다.
따라서 조선 인민은 물론이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국제관계를 철저하게 조종해야 합니다!”
그는 잠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실내에서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 사람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때였다. 아직까지 중앙당 상무위원의 발언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왕징이 오른손을 가볍게 들면서 끼어들었다.
모두들 의아한 눈빛으로 그의 이런 당돌한 태도를 주시했지만 주변의 시선 따윈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오히려 느긋한 표정이다.
동북삼성 일대를 주름잡는 삼합회의 두목답게 자신만의 독특한 중저음의 톤으로 발언했다.
“한국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요? 전쟁이라도 한판 벌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리하오쑤는 왕징의 느닷없는 돌출성 발언에도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여유롭게 답변하기 시작했다.
“단언합니다만, 한국은 무시해도 좋습니다.
우리와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조선을 지키려는 의지가 그들에게는 없는 게 분명합니다.
또 그들의 내부사정으로 살펴볼 때 국론이 갈라져서 민첩하게 대처할 수도 없어요.
장담하건대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긴 싸움입니다!”
이제 리하오쑤는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하달하기 위해 우커핑을 지목하였다.
“우커핑 책임비서!”
“옛! 주임 동지.”
"핵실험 직전에 그것도 저들의 통보를 받고서야 정보를 접했다는 것은 우리의 수치가 분명하오!
이런 저급한 수준의 대조선 정보망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소!
중앙당 차원의 정보망과는 별개로 성 차원의 별도 정보망을 구축해 보시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조선의 내부사정을 오류 없이 파악하는 것이오,
최상의 정보보고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갈래의 정보를 취합하여 교차분석하는 과정이 시급하게 되었소”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커핑이 번들번들한 대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쩔쩔매자 리하오쑤는 다시 한번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그리고 오늘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여덟 명이오.
만약 오늘의 회합 내용이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그 출처를 반드시 밝혀내서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오. 모두들 아시겠소?”
리하오쑤의 질책은 참석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의 보안유지가 실패로 끝난다면 그 뒷감당을 각오하라는 엄포였다.
리하오쑤와 허밍친을 제외한 여섯 명의 참석자들은 회의실을 나가면서 모두 맥이 빠진 모습들이다.
애당초 북경에서 내려온 리하오쑤 주임의 의도는 접경지역의 책임자들에게 한가한 브리핑이나 받자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모르고 무려 두 시간 가까이를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댔으니 얼마나 한심하게 비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