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94)

제국의 음모 3

by 맥도강

모두가 출근한 아침시간, 창우는 목이 타는지 연신 물을 들이켰다.

어젯밤 자신의 아파트에서 마신 술이 문제였다.

40도짜리 백두산들쭉술 큰 병 하나를 혼자서 다 비웠다지만 웬만해서는 이렇게까지 속이 쓰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은하의 배필감으로 점찍어둔 윤 선생을 초대하여 밤늦게까지 술잔을 주고받았다.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맥주까지 몇 병을 섞었더니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때 책상 위의 직통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한다.

보안이나 당과 관련된 사업이 있을 때만 울리는 비상전화였기 때문에 그는 긴장된 자세로 수화기를 들었다.

“예, 대외무역사업부 조선담당 과장 배창우입니다.”

“나 감찰부장이네. 자네 지금 당장 이리로 뛰어 와!

“예, 지금 즉시 찾아뵙겠습니다.”

길림성의 공산당 서열 3위인 감찰부장의 긴급호출이었으므로 그는 잠시도 머뭇거릴 새 없이 공항을 향하여 차를 몰았다.

연변조선족 자치주 청사에서 400킬로나 떨어진 장춘에 있는 길림성의 정무청사를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로도 족히 오십 분이나 걸리는 장거리였다.

장춘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정무청사에 도착한 창우는 방금 출발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7층에 위치한 감찰부장실까지 계단으로 무작정 뛰어올라 갔다.

창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서실장이 그의 몰골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는 짜증 난다는 눈빛으로 창우를 노려보더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턱짓으로 옆방을 가리켰다.


창우는 마치 죄인처럼 슬금슬금 옆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섯 평 남짓의 대기실에는 검정색 소파와 테이블 외 화분이 몇 개 놓여있을 뿐이다.

그는 창가에 서서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늦가을의 찬바람을 맞으며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말렸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일일까?

지난번에도 아버지 문제로 감찰부장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았던가!

그나마 당으로부터 주의처분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되었기에 망정이니 하마터면 출당조치를 당할 뻔했다.

금년에만 벌써 두 번째로 불려 왔으니 창우의 심장은 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소파에 앉아 있기도 거북하여 그는 연신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옆방의 비서실에서 나는 소리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웠다.

창우가 정무청사에 당도한 지도 한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땀에 젖은 얼굴이며 와이셔츠가 어느 사이에 깨끗이 말라있다.

담배 한 대를 더 피운 후에야 비서실장이 창우를 감찰부장실로 안내해 들어갔다.

“많이 기다렸나? 솔직히 말하면 난 자네가 연길에서 근무 중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지 뭔가.

정무청사에서 함께 근무하는 걸로 착각을 해서 회의 전에 보자고 했던 것인데 미안하게 됐네.”

“괜찮습니다,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이때 단정한 용모의 비서 아가씨가 차를 내어왔다.

감찰부장은 차를 권하면서도 매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배 과장! 자네의 투철한 당성은 내가 잘 알고 있지.

아마 자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당에 입당했을 거야.

그때부터 내가 관심을 가지고 쭉 지켜봐 왔으니 당에 대한 충성도는 내가 잘 알고 있지.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자네가 당을 위해서 큰일을 한번 해주었으면 해서 내 이렇게 보자고 했네."

창우는 이 말뜻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책임추궁을 하려고 호출한 게 아닌 것은 확실했다.


“당원으로서 국가와 당을 위해서 지켜야 하는 비밀 준수 의무를 기억하고 있겠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자네가 무덤으로 들어가는 그 시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점 명심하고 들어주게.

잘 알겠지만 발설하는 순간 자네는 당의 준엄한 문책을 받게 될 걸세”

감찰부장의 매서운 눈빛을 보는 순간 창우의 표정이 바짝 얼어붙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사흘 전 우린 조선에서 핵실험을 하기 이십오 분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네."

“…”

“벌써 몇 년이 지난 이야기네만, 사실상 조선 내의 첩보망이 일망타진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치욕적인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어.

우리 쪽 국경지역 국가안전국 책임자가 조선 정보당국에 삼십만 달러에 매수된 사건이 있었지.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구축해 놓은 첩보망이 하루 밤 새 완전히 와해돼 버렸어,

그 후로는 완전한 먹통상태라고 말할 수 있지”

“……”


감찰부장은 의도적으로 창우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때문에 창우는 몹시 피곤했지만 그저 감찰부장의 눈동자만 바라볼 뿐이다.

“작년에는 제16집단군 포병여단에 소속된 인민해방군 병사가 새벽에 국경을 넘어온 조선군인 다섯 명에게 몽둥이로 살해된 사건이 있었어,

이때 우리 인민해방군이 발칵 뒤집혔지.

베이징 주재 조선대사를 소환해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해방군 병사를 살해한 조선군인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었단 말이야.

그런데 저쪽에서 거부하면서 중조 간의 관계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악화 됐던 것이 사실이야.

이런 사정으로 우리 쪽의 정보라인을 새롭게 구축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네,

그러니 사흘 전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발생했고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란 말일세“

창우는 지금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겉으로는 대단히 놀라는 척 억지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감찰부장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서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하달하실 지시사항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신지…”

감찰부장이 창우를 전체적으로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는 자네가 수시로 그쪽을 드나드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 그쪽 관료들 중에는 터놓고 지내는 지인들도 꽤 있다지?”


이제야 창우는 감찰부장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조선의 친구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첩보망을 구축하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창우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의 친구들과는 오랫동안 교역 실무를 관장하면서 신의를 바탕으로 맺어진 사이다.

창우는 추호라도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었다.

십중팔구 그 결말은 총살형 아니면 아오지탄광행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찰부장은 창우의 이런 의중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자네가 그 역할을 맡아주었으면 하네!

비록 자네는 조선족 출신이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중국 공산당의 당원이지 않은가?

그래서 당이 자네를 믿고 하달하는 명령인 만큼 국가와 당을 위해서 결코 사양하는 일은 없으리라 믿네만!”

이런 아찔한 상황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창우의 동물적인 육감이 위력을 발휘했다.

지금 이 순간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당이나 직장에서 쌓아온 그의 업적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은 자명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의 친구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감찰부장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부장님! 당원으로서 주어진 소명은 최선을 다해야겠으나 저는 적임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역사업차 수시로 조선을 드나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무 외에는 어느 누구와도 사적으로 편한 대화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처지입니다.

그쪽 사람들의 경계심이 워낙 심하다 보니 저와는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지도 않습니다.

이런 저의 처지를 생각할 때 이토록 중요한 임무를 감당하기에는 적임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해하여 주십시오!”


이미 머릿속으로 정리된 듯한 창우의 의중을 노련한 감찰부장이 모를 리 없었다.

별안간 감찰부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일그러졌다.

자그마한 체구를 벌떡 일으켜 세우더니 창우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배신감이 농축된 분노가 섞여 있었다.

“자네! 지난달에도 당으로부터 주의처분을 받았었지? 자네 아버지 건으로 말이야.

지금 당에서는 자네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될 것이야.

그러니 잔말 말고 무조건 당의 지시에 따르도록 해!.

필요하면 자금은 얼마든지 지원할 테니 당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네.

내 말 알아듣겠나?”

지금 감찰부장은 창우의 개인적인 의견 따윈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명령했고

창우는 지금 그 자신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건성으로 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부장이 창우를 노려보면서 다시 말했다.

“목표는 코드 완, 정 위원장일세.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수시로 나에게 직접 보고해 주게. 내 말 알겠나?”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솔직히 말해서 저쪽에서의 제 처지로 볼 때 그 정도의 정보를 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더라도 혹여 정보거리라도 접하게 되면 부장님께 곧장 보고 드리겠습니다.”

창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감찰부장이 표시가 나도록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그의 눈빛은 창우를 믿지 못하는 눈치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창우만 한 적임자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항리우(杭立武) 감찰부장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그는 흥분된 상태에서도 한편으로는 창우를 달래는 노련함도 보였다.

“물론 당에서 하는 일이니 그렇게 엉성하게야 하겠나?

자네 말고도 여러 명의 정보원을 활용할 계획이니까 너무 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자, 그리고 이건”


그는 탁자서랍을 열더니 두툼한 편지봉투를 꺼내며 앞으로 내밀었다. 어림잡아도 상당한 액수의 돈이었다.

“이건 자네 활동비로 주는 것이니 부담 없이 쓰도록 해.”

이 상황에서 창우의 동물적인 육감이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했다.

자칫 우물쭈물하다가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뒷감당이 어려운 상황으로 내어 몰릴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부장님, 국가와 당을 위한 일입니다! 공작금이 필요하다면 그때 가서 제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당에서 베풀어준 은혜를 보아서도 소소한 자금은 제 사비로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 돈은 지금 받을 수가 없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창우의 이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찰부장이 모를 리 없었고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더 이상의 시험은 의미가 없었다.

적의를 지닌 사람처럼 창우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감찰부장이 굵은 실핏줄이 보일 정도로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창우역시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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