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01)

신뢰의 문제 4

by 맥도강

이때 최 씨가 투덜거리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은하는 최 씨가 방으로 돌아오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 씨는 자신의 잔을 단번에 털어 마신 후 창우에게도 잔을 건네며 독백처럼 투덜댔다.

“엥이! 부동산에 놀러들 왔으면 조용히 장기들이나 둘 일이지 뭔 놈에 궁금한 것이 그리도 많은지…….”

최 씨의 이 말은 제집 드나들듯 부동산을 들락거리던 인근의 건달 두 녀석이 오늘따라 이 집의 동태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기에 하는 독백이었다.


배 교수는 60년 지기인 최 씨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정 위원장이 유고된다고 보고 조선의 군부를 충동질했겠구먼.”

최 씨는 지금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눈치다.

“군부한테는 지금까지처럼 선군정치를 보장해 준다는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간섭은 중국이 막아주기로 하고, 원조도 조선 군부가 요청하는 만큼 충분히 지원하기로 그렇게 약속했다는 겁네다.”


최 씨가 채워준 잔을 단숨에 받아 마신 창우가 술상을 옆으로 치우더니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순간 창우는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나도 조선 사람입니다.

중국 땅에서 중국 공산당원이 되어 중국 사람처럼 살고 있지만 난들 왜 우리 민족이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아버지 이 일을 어쩌면 좋같습니까?”


배 교수는 그의 가슴팍으로 얼굴을 파묻은 창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문제는 조선의 인민들인데 그들이 가만히 있는다면 조선은 이제 영원히 중국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야.

위구르나 티베트처럼 말이야.

그들이 들고서 일어나야 하는데…”

배 교수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독백처럼 하는 말이다.

그러는 사이 창우는 아버지의 따듯한 품속에 파묻혀 어린아이 마냥 곤히 잠들었다.

그런데 여기까지의 장면을 밖에서 몰래 엿듣는 자가 있었다.

홀에서 장기를 두는 척하던 작자 중 하나가 이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창우의 이부자리를 마련해 준 배 교수는 주방에서 술상을 치우던 은하에게 다가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문을 열었다.

“은하야, 너 요즘도 윤 선생하고 연락을 주고받네?”

“예, 아버지. 이메일로 연락하고 있습니다.”

“그럼 너 말이다…. 아니다 됐다.”

배 교수는 무언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다 말고 돌아섰지만 은하는 아버지의 심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서울에 있는 윤 선생에게 급히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빠를 통해서 최근의 북한 사정을 알아봐 달라던 윤 선생님의 부탁도 있었던 터라 은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서둘러 택시를 탔다.

은하가 머무르고 있는 창우의 아파트는 배 교수 사무실과는 걸어서 이십 분 남짓한 상가 밀집지역 뒤편의 5층짜리 단동 아파트다.

택시에서 내린 후, 거의 뛰다시피 3층에 위치한 창우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온 은하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PC를 켰다.

그리고 ‘긴급’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하여 이 사실을 내게 알려왔다.

드디어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서 교수님께 급히 연락을 취했다.

은하의 이메일 내용을 소상히 설명하자 서 교수님은 무척 놀라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자네가 볼 때는 어떤가? 확실한 정보 같은가?”

“예 교수님. 은하의 오빠가 조선족 자치주의 대북 무역사업을 관장하는 실무과장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과 친분이 깊은 북쪽의 고위관리한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하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알았네, 일단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말고 자네는 거기 그대로 있게나.

내 이 밤으로 곧장 올라갈 테니 내일 아침에 재단에서 보세!”

서 교수님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으니 내가 부산으로 내려갈 일은 없게 되었다.

난 곧장 KTX 예매를 취소한 후 잠시 소파에 눕자마자 이내 잠이 쏟아졌다.


배 교수의 고향마을 옥수수 밭 사잇길이다.

배 교수가 몽둥이와 칼을 든 일단의 무리들에게 쫓기고 있고, 그 뒤를 은하가 울면서 뛰어가고 있다.

몽둥이를 든 자가 달려가면서 배 교수의 어깨를 내리쳤다.

배 교수가 넘어지면서 그의 두꺼운 검정색 뿔테 안경은 옥수수 밭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때 청나라 전통 복장을 한 자가 칼을 높이 쳐들고 쓰러진 배 교수의 목을 내리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중국인으로 살기 싫으면 중국 땅을 떠나라고 내 진작부터 경고하지 않았더냐!

여기는 한국 땅이 아니라 중국 땅이라고 내 그렇게도 일러주었거늘, 오늘 그동안의 경고를 무시한 죗값에 대한 벌을 받아야겠다.

이것은 순전히 말귀를 못 알아 쳐 먹은 네놈의 잘못이니 행여 저승에서라도 날 원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흐흐흐.”


그가 ‘이얏’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칼을 내리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뒤따라오던 은하가 아버지를 감싸 안으며 그 위로 쓰러졌을 때 칼은 그만 그녀의 등에 꽂히고 말았다.

“안 돼!”

난 다급하게 뛰어가면서 고함을 질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허공에서 팔만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악몽에서 깨어나 보니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시간은 이미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때 휴대폰에서는 감미로운 컨츄리 송이 울려 퍼지고 있어 화면을 보니 재단의 이사장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윤 팀장! 방금 서 이사님으로부터 연락받았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인가?”

“예 이사장님,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알았네. 어차피 이번 일은 대중국 동북공정의 정책에 관련된 문제니까 연구 2실에 소속된 우리 3팀에서 수고해 주어야겠네.

명절날인데 안 됐지만 지금 즉시 팀원들을 비상 소집시키고, 우리는 아침에 재단에서 보는 걸로 하지.”

이사장님의 긴급지시를 받은 후 난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추석명절을 보내기 위하여 다들 고향으로 내려간 팀원들에게 이 새벽 시간에 비상소집망을 가동하려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만약 은하가 보내준 메일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 것인가.

내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명절날 이 난리법석을 떨었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부터 하고 나오자 한결 정신이 맑아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팀원들에게 비상소집 문자를 발송했다.

그래도 우리 팀원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추석연휴 그것도 곤히 잠들어 있던 이 새벽시간에 비상소집 문자를 받았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꾸물대지 않고 즉각적으로 수신확인문자를 보내왔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휴대폰을 잡은 손에서 흥건하게 땀이 고여 있고, 잠시 눈을 붙일 요량으로 소파에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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