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고구려 1
약속된 오후 다섯 시 정각이 되었다.
우린 커피타임을 가지며 각자가 작성한 일곱 부의 초안들을 돌려가며 검토하기 시작했다.
저녁도 거른 채 이어진 대표초안 찾기 작업은 세 시간 만에 어렵사리 마무리되었다.
나를 제외한 여섯 명 팀원들의 만장일치로 가장 합리성을 갖추었다는 대표초안이 선정되었다.
「따듯한 동포애에 호소하는 신뢰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초안이었다.
밤 열 시경, 나의 초안을 뼈대삼아 우리 팀원들의 지혜가 부가된 오십 쪽 분량의 정책보고서가 완료되었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이사장님께 보고 드리기 위하여 다섯 부의 보고서를 지참한 채 곧장 이사장실로 뛰어 올라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사장실에서는 아직까지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었고 짙은 선글라스를 쓴 낯선 사람이 내 시선을 끌었다.
내가 전해주는 정책보고서를 받아 든 이사장님이 이 사람을 소개했다.
“윤 팀장, 국정원에서 오신 곽 과장이시네. 앞으로 과장님의 요청이 있으면 잘 협조하도록 하게.”
내가 그에게로 다가가자 그제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악수를 청했다.
선글라스를 그대로 쓴 채 악수하는 모습에서 고압적인 태도가 느껴져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곽 과장입니다. 앞으로 많은 협조 바랍니다.”
“예, 힘닿는 대로 성심껏 협조하겠습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모두는 자리에 앉았고 앞으로 나가서 정책보고서의 내용을 브리핑하라는 이사장님의 지시가 있었다.
“지금 현재의 상황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정 위원장이 한 달째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는 대단히 위중한 상황입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중국은 그들이 치밀하게 준비해 온 동북공정의 제3단계를 시행하기 위해서 북한 군부와 모종의 비밀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때 팔짱을 끼고 앉아있던 곽 과장이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서 입술 중앙에 반듯이 갖다 붙였다.
무언가 질문이 있다는 의사표시였다.
“동북공정의 제3단계를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동북아역사재단의 이사진 다수가 노학자들인데 여전히 다리를 꼰 채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대단히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일반적으로 동북공정하면 한중 사학자들의 한가로운 역사논쟁쯤으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행하는 진짜 목적은 그들의 국가 안정과 영토문제 때문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제3단계로 나누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제1단계는 우리 고대사부터 근대사에 이르는 역사왜곡의 이론적인 작업입니다.
여기서 길게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중국은 이미 2003년 6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인 광명일보에 ‘고구려 족은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하나였으므로 고구려는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다.’는 기고문을 실음으로써 제1단계는 사실상 마무리되었습니다.
동북공정의 제2단계부터는 실천단계입니다.
우리 고대사 유적지의 여러 현장들을 중국식으로 복원하는 유적지 조작 단계입니다.
유적지 조작을 마무리한 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단계가 바로 제2단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고구려 유적지는 2004년 7월 이미 등재가 완료되었고, 발해 유적지 역시도 등재를 위한 유적지 정비를 거의 끝낸 실정으로 사실상 제2단계의 모든 작업도 끝이 났습니다.
동북공정의 제2단계는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실마저 현장에서 지우고 왜곡하는 단계인데 이것이 모두 끝이 났다는 말은 현재 중국에는 우리 민족의 흔적들이 모조리 지워진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여기까지를 말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때 함께 배석해 있던 연세 많은 이사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곽 과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겠다는 듯 꼰 다리를 풀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과장님이 질문하신 동북공정 제3단계의 거울은 바로 티베트입니다. 즉, 영토문제를 마무리하는 단계입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소수민족이었다면 이들이 지배했던 동북 3성을 비롯한 간도 땅 일대는 당연히 중국의 영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고구려 영토였던 한강 이북마저도 역사적으로는 중국의 영토였으므로 수복해야 된다는 무서운 음모가 바로 동북공정의 제3단계입니다.”
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한 모금의 물로 목을 축였다. 수없이 해 본 브리핑이었지만 오늘의 브리핑은 그 내용이 내용인지라 오히려 내가 더 흥분했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한 후 서장자치구란 이름으로 중국으로 편입시킨 것은 십오 년 후인 1965년의 일이었습니다.
1986년부터 십 년간 진행된 서남공정으로 티베트의 역사는 온전히 중국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칭짱철도의 개통으로 대규모의 한족을 이주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인구비율의 역전을 통해서도 향후 티베트가 독립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봉쇄하려는 의도입니다.”
이제 곽 과장은 마치 착한 학생처럼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며 나의 브리핑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만큼 그에게도 오늘의 브리핑은 충격적이었다.
“티베트의 이러한 현실이 우리 민족이 앞으로 겪게 될 동북공정의 최종 거울입니다.
현재 중국은 제16집단군과 제64집단군을 북-중 국경 최전방에 증파해서 사태의 악화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차하면 북한 지도부의 요청에 의해서라는 명분으로 군대를 이동시켜 괴뢰정권 수립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은 지금 친 중국 성향의 북한 군부 세력으로 하여금 중국의 괴뢰정권을 수립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후 ‘동북 제4성’이라는 이름으로 완전 편입하는 것이 동북공정의 최종 목적지가 되겠습니다만 그 방법은 점진적인 방법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십오 평 남짓한 이사장 실에는 한 톨의 공기마저도 남아있기 힘들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껏 여유로움에 넘치던 곽 과장마저도 송이송이 맺힌 이마의 땀을 닦을 요량으로 드디어 선글라스를 벗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의 눈빛은 상대를 압도하기에 충분할 만큼 날카로웠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만큼은 많이 달라졌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동북아역사재단을 학술토론이나 하는 한가로운 집단쯤으로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비상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쪽은 국정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재단이다.
“지금 이 단계에서 중국이 시도하는 것은 민족의 자주성이 결여된 중국의 허수아비 정권을 만들겠다는 의도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미국이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할 당시에도 미국의 묵인이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도 미국의 묵인 하에 저들의 비밀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 시점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를 비롯한 대포동미사실 같은 대량살상 무기를 중국이 책임지고 폐기하기로 이미 약속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중국의 음모를 알면서도 묵인해주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여기까지의 설명만으로도 대견스럽다는 듯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경청하고 계시던 서 교수님이 한마디 던졌다.
“윤 팀장, 이쯤에서 대책으로 넘어가시지?”
“예 교수님! 정책보고서의 제목은 ‘따듯한 동포애에 호소하는 신뢰의 메시지’입니다.
현 상황에서 중국의 의도를 분쇄할 수 있는 방안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적적으로 정 위원장이 의식을 회복하여 이 상황을 평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북한 전역에서 중국의 괴뢰정권 음모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 국제여론을 움직이는 경우입니다.
유엔차원에서 중국을 규탄하는 상황이 조성된다면 미국도 발을 빼게 될 것이고, 중국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그들의 계획을 추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가위 보름달처럼 넉넉한 인상의 양 이사장님이 곽 과장을 바라보며 국정원의 의견을 물었다.
“과장님께서는 방금 발표한 우리 윤 팀장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저도 보고서의 내용에 동의합니다.
북한 민중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국경 최전방에 배치된 제16집단군과 제64집단군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건 미국과 유엔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때 심각한 표정으로 안경을 벗은 채 반백의 머리를 뒤로 넘기던 다른 이사 한분이 다시 곽 과장에게 물었다.
“북한에서 군중시위가 발생한다면 북한 군부의 동향은 어떨 것 같습니까? 저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발포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대목에서는 곽 과장으로서도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었던지 손수건으로 자신의 눈가 주위를 닦은 후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단정적으로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인 것은 틀림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느 누구라서 이보다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브리핑의 마지막 정리를 못해서 난감해하는 나의 처지를 대신하여 서 교수님이 다시 나서 주셨다.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겠지요,
다만 우리로선 그런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정책보고서의 내용대로 우리 동포들 간 상호 신뢰가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선군정치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있던 소수의 군부세력을 제외하고는 북쪽의 군인들 역시도 우리 민족의 중국 병합을 결단코 용인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북녘의 동포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궁핍하여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만 고구려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민족적인 자존심이 대단히 드높은 사람들입니다.”
서 교수님의 도움 말씀에 힘입어 난 브리핑의 결론부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관건은 우리 동포들 간 신뢰입니다.
제아무리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꼬드기더라도 어차피 중국은 이민족일 뿐, 기왕에 의지하려면 같은 민족인 우리 한국에 의지하고 싶다.
그래서 한국과의 통일을 원한다, 뭐 이런 형태의 주장을 하면서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 대대적인 민중시위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신뢰를 신속하게 전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합니다,
이상으로 정책보고서의 브리핑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브리핑을 마치며 의도적으로 곽 과장을 응시했을 때, 그는 지금부터의 일은 자신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던지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