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07)

일어나라 고구려 5

by 맥도강

퇴근 무렵, 이사장님의 호출을 받고 재단 3층의 이사장실로 들어섰다.

미리 와서 이사장님을 만나고 있던 곽 과장이 나와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말 대신 대뜸 하는 말이다.

“윤 팀장, 사태가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이 말에서 그간의 사정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향후 입장을 조심스럽게 타진해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도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중국 측에 원유 송유관을 왜 잠갔느냐, 식량지원을 왜 중단했느냐고 항의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 속사정을 따져 물었더니 정히 북한이 안돼 보이면 한국이 원유며 식량을 대신 지원하면 되지 않느냐며 핀잔 섞인 딴소리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조 비밀협상 건에 대해서도 북한 군부의 요청으로 협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정 위원장의 유고시 있을 수 있는 대량 탈북사태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었다고 시치미를 떼더란 말입니다,

우리 위성 정보에 의하면 북한은 이미 거의 모든 시설들이 가동을 멈추었고 평양조차도 암흑천지입니다.

식량사정은 더욱 시급한데 곧 아사자들이 속출할 같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치안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정말이지 큰일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북한 원유의 90퍼센트, 생활필수품인 소비재의 80퍼센트, 식량의 45퍼센트를 중국이 공급하고 있는 실정에서 갑자기 올 스톱시켰다는 것은 북한을 고사시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절망적인 곽 과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이사장님은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멍하니 천장만 응시했다.

지금 우리 민족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 그는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숨죽여 울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최소한의 원유와 식량만을 제공해 왔었다.

북한으로서는 겨우 30퍼센트의 산업시설만이 힘겹게 가동 중이었기 때문에 비축유와 재고 식량이 바닥나는 것은 그야말로 삽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난 치솟는 울분을 최대한 억누르면서 곽 과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국내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정부차원의 지원이 곤란하다면 방법은 단 하나! 대북 민간지원이라도 허용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내일부터라도 당장 육로를 개방해서 식량과 의약품 같은 긴급구호 물품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중국이 노리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 같은 상황입니다.

‘똑똑히 보아라! 한국은 너희들이 죽든지 살든지 아무런 관심도 없다. 진정으로 너희들을 위해주고 지켜주는 국가는 오직 우리 중국뿐이다,

그러니 힘들 거든 우리 중국의 어깨에 더욱 기대어라. 우리가 너희들을 보호해 주겠다.’

지금 중국이 보내고 있는 이 같은 메시지는 동북공정의 최종적인 마무리 수순 밟기입니다.

최악의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우리가 행동으로 나서야 합니다.

남과 북은 하나라는 따듯한 신뢰 메시지를 북녘의 우리 동포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사장님도 전폭적인 공감을 표시하며 내 손을 그의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윤 팀장, 자네 말이 전적으로 옳네.

정부가 할 수 없다면 우리 민간이라도 나서야지, 암 그렇고말고! 이 정도의 조치는 우리 정부에서도 동의할 거라고 믿네.

곽 과장께서도 국정원장님께 잘 좀 보고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왼손으로는 내 손을, 오른손으로 또다시 곽 과장의 손을 힘껏 잡았다.


오직 대북 강경책만을 밀어붙이던 우리 정부였지만 북녘의 동포들이 집단적인 아사 위기에 처하게 되자 들끓는 국내외의 여론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관계부처의 장차관들과 실무자들이 수시로 만나 장장 사흘간이나 열띤 격론이 지속됐다.

어떤 때는 실무자들만 만났고 또 어떤 때는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만났는데 그만큼 이 문제는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마침내 사흘 째 되던 날, 대통령이 배석한 NSC 회의에서 각 부처 간의 이견이 조율되고 합의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10월 20일 월요일 점심 무렵, NSC 회의를 마친 후 통일부 장관이 직접 회의 결과를 브리핑했다.

내일부터 정부는 민간차원의 대북 지원을 한정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허용되는 물품은 식량 의약품 등 생활필수품에 한정되었다.

지원기간도 단 보름 동안만 허용하기로 하고, 그 량도 품목별로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정부의 발표가 있자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지나치게 속 좁은 지원책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에 우익단체와 여당 일각에서는 다 죽어가는 정 위원장 체제를 무엇 때문에 살려주느냐며 연일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실정이다.


계속되는 정치권의 공방에도 불구하고 TV에서는 북한 주민 돕기 특별생방송이 시작되 북한 돕기 열풍을 일으켰다.

각 신문사와 방송사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국민들이 길게 줄을 지어 IMF 사태 당시의 금 모으기 행사 못지않은 뜨거운 열기로 대북지원에 동참했다.

각 기업체들도 경쟁적으로 의약품과 생활필수품을 컨테이너에 실어서 북한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각 임진각에서는 문산, 파주까지 이어지는 트럭의 행렬이 끝도 없이 길게 줄지어 섰다.

농협창고에 보관 중이던 3년 치의 묵은쌀을 전경련이 매입하여 북한으로 실어 보내는 트럭의 행렬이다.

애당초 농민단체에서는 이참에 쌀값의 안정도 도모할 겸 최소 50만 톤을 지원하자고 주장했지만 보수단체를 의식한 정부의 입장은 10만 톤에서 단 한 발작도 물러서지 않았다.


북한에서도 우리 측의 조치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섰다.

청진항과 남포항을 개방하여 해상으로도 우리 측의 지원물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지원물품들이 직접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북한의 이 같은 조치는 중국을 자극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행위였지만 소극적인 지원만 고집하는 우리 정부를 의식한 측면도 있었다.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이 시작된 지 일주일 동안 육로와 해로를 통해서 쌀 옥수수 콩의 제한 량인 10만 톤이 북한으로 반입되었다.

옷가지며 약품이며 비료며 시멘트도 이미 정부의 제한 량에 근접하고 있었다.

정부는 당분간 북한주민들이 식량난을 이겨낼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량이 전달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지나치게 속 좁은 정책이 분명했다.


집단적인 아사위기는 가까스로 넘겼다지만 정작 그다음의 중요한 문제는 북한의 연료 사정이었다.

정부에서는 지원 가능한 물품 대상에서 석유 등 연료를 제외시켰기 때문에 북한의 연료 사정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평양의 지하철마저도 전면적으로 멈춰 서고 말았다.

중국도 우리 정부로서도 이 같은 사정을 모르지 않았지만 북한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우리에게 도와달라는 아쉬운 소리 한마디 없이 신기하게도 그럭저럭 견뎌냈다.

시골에서는 부쩍 늘어난 소달구지들이 자동차를 대신하느라 바쁘게 움직였고, 평양을 비롯한 도시의 거리는 가끔씩 지나가는 목탄차 외에는 온통 자전거의 행렬들로 넘쳐났다.

비록 그들의 삶은 100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지라도 중국의 기대와는 달리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었다.


다시 북경이다.

5미터도 더 되어 보이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고풍스러운 저택의 정원을 거닐며 이 저택의 주인이 허 원장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원장!, 이쯤에서 본래대로 되돌려놔야 되겠습니다,

더 진행하다가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겠어요,”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공연히 중국에 대한 적대감만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 위원장이 살아있는 한은 어렵겠습니다, 지금으로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상의 선택일 것 같습니다.

감금된 군부 5인방도 정치범수용소로 보낸 것으로 종결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말에 우두커니 하늘을 쳐다보던 이 저택의 주인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를 의식한 조치로 보아집니다, 위원장이 우리와의 관계 복원까지도 내다보고 있으니⋯

내일부터는 대북 송유를 재개해야겠어요! 수출입통관절차도 간소화시키고요,

이렇게 되면 우리가 진건가요!”

“아닙니다!, 열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잠시 둘러서 갈 뿐이지 결코 우리가 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동북공정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요, 조만간 정 위원장을 북경으로 초대해야겠어요!, 이번에는 선물도 많이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이 저택의 주인이 얌전하게 두 손을 뒷짐진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허밍친 원장도 하늘을 쳐다보며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동북공정에 대한 비장감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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