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고구려 4
여기는 북경에서도 가장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 근처의 고급 주택가.
중국의 살아있는 권력실세들만 모여서 산다는 청(靑) 시대 양식의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거리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적막감이 감돌았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늦은 저녁시간, 이 저택의 거실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 실세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저택을 둘러싸다시피 철통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에서 모여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가히 짐작이 된다.
그들은 몇 시간 전부터 이곳에 모여서 작금의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었다.
이들이 사실상 중국을 움직이는 실세들이기 때문에 여기서 결정되면 우선 행동으로 옮기고 추후 중앙 상무위원회의 추인을 받으면 될 일이다.
오늘 참석자 중에는 중국 공산당의 중앙 상무위원이 세 명이나 된다.
“지금 당장 손을 쓰지 않는다면 감금되어 있는 우리 동지들이 위험합니다.
정 위원장이 다른 조치를 취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합니다.”
중국군 중에서도 가장 핵심 요직인 북경군구 사령관 직을 맡고 있는 당성즈(唐生智) 상장의 말이다.
그의 어깨 위에는 황금빛 별 세 개가 천정의 샨데리아 조명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당 사령관에 이어서 곧바로 리하오쑤(李昊蘇) 총 정치부 주임이 나섰다.
“조선의 동지들을 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당 사령관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기왕에 시작된 중조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이 더욱 시급합니다.
정 위원장이 깨어났으니 협상의 대상이 군부에서 정 위원장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때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이 저택의 주인이 허 원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긴박한 회의 중에도 오랜 세월 단련된 듯한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동북공정을 직접 관장하는 허 원장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유일한 청나라 전통복장 차림으로 양팔은 소매 속에 넣은 채 아주 느린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발만 했더라면 영락없는 청나라 고위관리의 모습이다.
일행이 모두 고개를 들어 그를 주목하자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조선정권의 독특한 자주성은 우리 입장에서는 대단히 위험하고 불안정한 요인입니다.
중국의 국가 안정과 이익을 위해 이번 기회에 이 위험성을 제거해야 합니다.
저 지긋지긋한 고구려의 자주성을 도려낸 이후에야 우리가 조선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을지는 여러분들께서 결정하여 주십시오.
저는 조선을 중국의 자치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허밍친 원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인사가 벌떡 일어났다.
강경파 중의 한 명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장쥔닝(張軍儜)이었다.
그는 당 중앙정치위원회 상무위원을 겸직하며 중국 공산당을 총 감독하는 그야말로 막강 권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인민복을 입은 모습이나 넓적한 얼굴 모습이 생전의 마오쩌둥을 빼어 닮았다.
그는 선채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펀주(汾酒)를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오늘 이들이 마시는 펀주(汾酒)는 1400년의 양조 역사를 가진 샨시성(山西省) 싱화춘(杏花村)의 양조장에서 만든다는 유명한 술이다.
그 도수가 무려 50도 가까이나 되는 독주지만 이들은 이런 술에 익숙한 듯 거침없이 마시면서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지금 즉시 가장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기진 수단 중에서 조선으로 연결된 송유관을 잠그는 조치가 좋겠습니다.
파이프라인을 수리한다는 명분으로 원유의 지원을 전면 중지한 후 저쪽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여기저기서 강경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맞습니다, 우리가 원유 공급을 중단해 버리면 제깟 것들이 며칠이나 버티겠습니까?
원유뿐만 아니라 식량을 비롯한 일체의 수출입을 중단해 버리고 목줄을 더욱 조여야 합니다.
저들의 목숨 줄을 누가 쥐고 있는지를 이번참에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필경은 며칠 못 가서 두 손을 들고 나올게 자명합니다.”
참석자들의 강경 발언들에 힘을 얻었던지 리하오쑤 주임이 다시 나섰다.
“저들의 원유나 식량 등 생필품 사정으로 볼 때 금수조치의 효과는 채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나타날 것이 확실합니다.
저들이 손을 들게 되면 기왕에 진행하던 중조 협상을 더욱 신속하게 마무리지어야겠지요.
이번 기회에 정 위원장의 1인 지배체제를 무력화시키고 감금되어 있는 우리 동지들을 중심으로 선군집단지도체제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중국이 조선을 직접 통치하는 효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발언을 마친 리 주임이 중앙으로 시선을 돌리자 다른 이들의 시선도 오늘 모임의 좌장 격인 이 저택의 주인에게로 옮겨졌다.
그는 대리석 테이블 위의 술잔을 오른손으로 이리저리 돌리는가 쉽더니 단번에 펀주를 들이켠 후 잔을 내려놓았다.
오늘 모임의 주빈인지라 아무래도 그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발언보다 한층 권위가 있었다.
말문을 열었을 때 여전히 그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롭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들이 모두 정해진 것 같습니다. 결론이 거의 다 나왔어요.”
주변을 잠시 둘러보며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다른 이들도 함께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는 잔을 높이 들었다.
“자 동지들! 이제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동북공정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후 잠시 자세를 가다듬던 이 저택의 주인이 다시 소리 높여 외치자 다른 이들도 따라서 외쳤다.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그로부터 사흘 후, 중국은 전격적으로 북한으로 연결되는 원유 송유관의 밸브를 잠가버렸다.
명분은 노후화된 파이프라인의 교체를 위해서라지만 이 조치는 누가 보더라도 북한을 고사시키려는 행위였다.
또한 2006년 10월 북한의 제1차 핵실험 후 결의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준수한다는 명분의 조치들이 전격적으로 취해졌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품들의 화물검색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식량과 생필품의 북한 유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북한정권의 붕괴를 유도하는 중국의 이러한 강경조치에 우리 정부로서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동안 단 한 톨의 쌀도 지원할 수 없다는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했던 우리 정부였다.
이런 마당에 핵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의 전향적인 변화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대북 지원정책을 내어놓을 수는 없었다.
무조건적인 지원은 전임 정부 때처럼 또다시 퍼주기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 부담스럽고, 조건부 지원은 북한이 굴욕적이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사실상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