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10)

백두산의 넋 3

by 맥도강

밤늦도록 배 교수가 돌아오지 않자 최 씨와 은하는 배 교수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

은하도 아버지를 따라 여러 차례 산책을 나선 기억이 있었던 터라 평소 배 교수의 산책로를 따라서 랜턴을 비추며 걸어갔다.

옥수수 밭고랑 사이로 한참을 걸어가던 은하가 부러진 옥수수 대와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평소 아버지가 분신처럼 의지하던 지팡이가 아닌가.

은하는 순간 피가 머리로 몰리면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며 큰 소리로 최 씨를 불렀다.

급히 뛰어 온 최 씨도 친구의 지팡이임을 확인하고는 이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은하는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온 정신을 집중하여 오빠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창우의 휴대폰은 전원이 꺼져있어 이번에는 아파트로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새언니가 그렇잖아도 지금 오빠의 행방을 알 수 없다며 반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따라 오빠를 찾는 전화가 여러 군데서 걸려와 오빠의 근무 부서로 직접 전화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과장님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모처의 연락을 받고 어디론가 급히 나간 후 여태 아무런 연락이 없어 자신들도 애타게 찾고 있다고 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최 씨와 은하는 주체할 수 없는 불길한 생각들 때문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이른 아침, 창우의 아파트 거실에서는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동이 틀 무렵에야 전화기 앞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창우 부인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상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누구세요?, 혹시 철이 아빠? 철이 아빠죠? 여보!”

“뚝 뚝 뚝~”

전화가 끊어지고 말았다, 창우 부인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분명 창우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여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이 불안한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던지 창우 부인은 숨죽여 울기 시작했고 이 소리에 잠을 깬 외동아들 철이도 엄마의 품속으로 달려와 같이 울기 시작했다.


이 시각, 배 교수의 집에서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은하가 수화기를 집어 들자마자 그 옆에서 함께 밤을 지새운 최 씨도 요란한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은하가 더듬거리며 천천히 말했다.

“여, 여보세요?”


잠시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수화기에서 웬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도 많이 긴장된 상태였다.

“저어... 거기가 배 교수님 댁이 맞습니까?”

“예, 우리 아버지십니다.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무슨 일이시죠?”

“…”

“제발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제발요?”

전화를 한 사람은 마오와 함께 배 교수를 납치해 갔던 장백산 천지회의 청년단원 창이었다.

그는 비록 사상은 다르지만 배 교수의 대쪽 같은 인품에 매료되어 평소 배 교수를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있었다.

공중전화기 부스 앞에서 이를 지켜보던 은하의 고교 동창 마오의 표정도 자못 심각하다.

공중으로 길게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만큼이나 마오의 한숨소리가 길게 새어 나왔다.


“놀라지 마시고 제 말 잘 들어주세요!

통보드릴 사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제 당신 오빠는 면책을 받았으니 지금부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일상으로 복귀해도 좋습니다.”

은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황상 이 자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실례지만 댁은?”


그는 즉시 은하의 질문을 가로막고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질문은 곤란합니다. 배창우 씨에게 연락하여 우리말을 전해주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겁니다.”

은하의 가슴은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순간의 쉼도 없이 방망이질 중이다.

두 가지의 통보사안중 하나는 그래도 천만다행스러운 소식이었다.

지만 두 번째의 소식은 왠지 불길한 소식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도대체 이 자들은 누구일까? 아버지, 제발 살아만 있어 주세요.


“두 번째의 통보 사안은 당신 아버지 배 교수 소식입니다”

이 말에 은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네? 아버지가 어떻게, 어떻게 되셨나요?”

그 목소리는 그야말로 울부짖음이었다.

“교수님의 지팡이를 찾으셨습니까?”

“네, 찾았어요. 구룡촌마을 옥수수 밭에서 찾았습니다.”

“…”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제발, 제발 말씀해 주세요! 우리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그곳을 다시 잘 찾아보면 교수님이 계실 겁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은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최 씨도 배 교수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던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기절하여 쓰러진 은하를 발견한 최 씨가 급히 부엌으로 뛰어갔다.

찬물 한 바가지를 떠 와서는 수건을 적셔 은하의 얼굴을 닦아주자 그제야 은하가 정신을 차렸다.

은하는 눈을 뜨자마자 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새언니, 아직 오빠 소식은 없습니까?”

은하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것을 알았던 창우 부인도 불길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또 왜 그러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아가씨까지 그러세요?”


이때 은하는 차츰 냉정을 찾아갔다. 오빠도 없는 마당에 자신마저 정신줄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언니, 방금 어떤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오빠는 이제 면책받았으니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무래도….

나 지금 아버지 찾으러 가야 하니까 오빠 연락되면 빨리 와달라고 전해주세요!”


수화기를 던지다시피 내려놓은 은하는 최 씨와 함께 택시를 불러 타고 구룡촌마을의 그 옥수수 밭으로 달려갔다.

차창 밖을 바라보는 은하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최 씨도 덩달아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닦아냈다.

지팡이를 찾았던 그 옥수수 밭 안쪽을 한참 동안 뒤지자 옥수수가 엉클어진 곳에서 사람의 흔적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가슴 부위에 혈흔이 낭자한 총상을 입고 아버지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막상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버린 아버지를 대면하자 은하는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배 교수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던 최 씨를 타이르고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택시기사였다.

은하를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기사의 재촉을 받고서야 최 씨는 의식을 잃은 은하를 부축하여 운전석의 옆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기사와 함께 차갑게 식어버린 배 교수의 시신을 뒷자리로 옮긴 후 연길시내의 병원으로 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병원 응급실에서 영양제 수액주사를 맞고 있던 은하가 깨어났다.

창우 부인은 은하의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 올리며 측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하마터면 아가씨까지 큰일 날 뻔했어요. 아가씨까지 맥을 놓으면 어쩝니까?

아가씨! 착한 우리 아가씨! 이 슬픔을 꿋꿋하게 이겨내야 해요.

아버님이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계시잖아요.”

따듯한 눈빛으로 은하를 바라보던 새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은하도 아버지의 죽음이 생각났던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뒤로한 채 일어나려고 애써보았지만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요?”

“아가씨, 오빠가 왔어요! 공안이 아버님을 부검해야 한다고 해서 지금 그 문제로 같이 협의하고 있어요.”

병원응급실 바로 옆 건물의 지하실에 비치된 영안실, 서랍장같이 생긴 냉동 보관실 앞에서 최 씨가 벌써 두 시간째 통곡 중이다.

“배 교수 이 사람아, 날 두고 혼자만 가면 어쩌누,

대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이 매정한 사람아!, 나도 데려가야지, 나도 데려가야지!.”


이때 공안 두 명이 들어와 배 교수의 부검을 위해 냉동고에서 사체를 꺼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창우가 아버지의 손가락에서 뭔가를 발견했던지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며 잠시 자리를 비켜 줄 것을 요구했다.

공안들이 자리를 비켜주자 창우는 급히 배 교수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묶여 있던 쪽지를 빼내어 그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쪽지는 보일 듯, 말 듯하게 배 교수의 손가락에 고무 밴드로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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