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넋 4
최 씨는 배 교수의 얼굴을 연신 만지작거리면서 통곡하고 있었던 터라 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창우, 이놈아!. 아버지의 이 한 맺힌 눈을 똑똑히 봐라, 이놈아!
얼마나 원통했으면 이렇게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돌아가셨겠나. 응?
이 불효 막심한 놈아!. 그동안 아버지 속 무던히도 썩여드린 네놈이 아버지 눈을 감겨드려야 하지 않겠어? 어서 이놈아!”
최 씨의 이 말에 창우도 말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두 손으로 매섭게 부릅뜬 아버지의 두 눈을 감겨 주었다.
“아버지, 이 못난 지식을 용서하세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저 만치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공안들이 다가와 이제 그만 검안실로 옮겨야 한다며 재촉했다.
한 명이 완력으로 창우와 최 씨를 제지하는 사이 또 한 명이 사체가 누워있는 침대를 밀면서 옆방의 검안실로 들어갔다.
은하가 누워있는 응급실로 돌아온 창우는 웬만큼 의식을 회복한 은하를 데리고 병원 앞마당의 나무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주머니 속에서 쪽지를 꺼낸 창우가 은하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이게 아버지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묶여 있었어.”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교수님의 유언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더 이상은 가족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었고, 둘은 사체를 화장하되 백두산 천지에 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첫째의 유언은 보장되었으나, 둘째는 보장되지 않아서 부득이 교수님의 죽음을 길가에 내버려 두게 되어 죄송합니다.
평소 고매한 성품의 교수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 이같이 쪽지를 남기니 가족들께서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내게 그런 전화를 했었구나!”
은하는 이른 아침에 걸려왔던 전화 이야기를 오빠에게 들려주었다.
창우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장백산천지회라는 극우세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 대신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다는 자책스런 눈물이 또다시 쉼 없이 흘러내렸다.
창우는 어제 아침 출근하자마자 북쪽의 고위관리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신변이 위험하니 일단 자신들의 안가로 급히 대피하라는 연락이었고, 그래서 일체의 연락을 끊은 채 꼭꼭 숨어있었다.
사실 창우는 윤 팀장이 연길을 다녀간 2년 전부터 천지회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는 길림성 감찰부장으로부터 대북 첩보망을 구축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 진행을 독촉받았지만 차마 북쪽의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어 이런저런 핑계로 실제로는 그 일을 진행시키지 않았다.
천지회는 이런 창우를 한국과 북한의 2중 첩자로 오해하기 시작했고, 만약 자신들의 일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겠다는 거친 협박을 계속했다.
창우는 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집단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학의 저명한 역사학자를 비롯하여 당, 군, 공안, 고위 관리들을 끼고서, 백두산의 서문과 남문에서 호텔사업을 영위하는 그야말로 권력과 돈과 폭력조직까지 융합된 엄청난 극우세력이다.
이들은 가끔씩 합성사진을 조작하여 백두산 천지에서 괴물이 발견됐다는 언론플레이를 펼치곤 하는데 이 또한 천지가 중국령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행위였다.
이들의 마수를 벗어나 동북삼성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이들에 의해서 희생되었을 경우에도 딱히 하소연할 데가 없는 실정이었다.
차마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이런 사정 때문에 아버지를 설득하여 빠른 시일 내 은하와 맺어주겠다던 2년 전 윤 팀장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차일피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 지하실의 장례식장에서는 상복을 입은 창우와 은하가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다.
저쪽 구석자리에서 검정색 양복 차림으로 엄마 품에서 잠자고 있는 어린 형철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인근의 동포들이 모두 문상을 나왔는지 드넓은 홀 안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문상객들로 붐볐다.
순두부집아주머니를 비롯하여 연길시장에서 장사하는 부인네들이 문상객의 음식상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연변 조선인 향토연구소 회원 수십 명이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이십 대 중반의 혈기 넘치는 배 교수 제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향토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핵심인사들이 제자 그룹들인데 그중에서도 지금 성주와 함께 앉아있는 기수와 경태 이 세 사람이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핵심이다.
그들은 어제 오후 비보를 전해 듣자마자 그 즉시로 달려와 뜬눈으로 꼬박 밤을 지새웠다.
성주는 어제부터 얼마나 울었던지 아직도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상태다.
기수가 적개심 가득한 눈초리로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지회 그 간나 새끼들 짓이 맞제?”
성주가 팔짱을 낀 채 그럴 거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경태가 소주 한잔을 그대로 들이킨 후 말했다.
“우린 매번 이렇게 당해야만 하나?”
성주도 술잔을 한 입에 털어 넣은 후 작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2년 전 분기 토론회 때 그놈들한테 실컷 몽둥이찜질 당한 후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나는구먼.
인동초 이야기 말이야.
밟으면 밟히고, 바람이 불면 엎드리고, 모진 겨울 동안 그 잎이 모두 말라버리지만 이듬해 봄에는 또다시 새싹을 피운다고 말씀하셨지.
최후의 승자는 끝까지 살아남는 인동초가 될 것이라던 교수님의 그 말씀을 난 잊을 수가 없어.
그 봄날에 우리 민족이 통일되어서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간도 땅을 되찾는 날이 반드시 오고 말 것이야.
저들이 밟겠다면 우리가 밟혀 주세나.
그렇더라도 결코 굴복하지는 말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면서 말일세.
그것이 교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뜻이 아닐까 싶어.”
이때 최 씨가 이들의 자리로 건너오더니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행여라도 우리 배 교수한테 해가 될까 봐 난 한마디도 안 했는데, 결국 이런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어.”
이번에는 성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최 씨가 나지막하게 다시 말했다.
“우리 배 교수 해코지 한 놈들이 천지횐가 뭔가 하는 그놈들 짓이 맞제? 그렇제?”
성주가 최 씨의 입에다가 그의 오른손 검지를 갖다 대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쉿, 최 사장님!. 앞으로도 그 이야기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들의 정체를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저들의 행패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습니다. 제 말 이해하시겠죠?”
성주가 최 씨에게 입조심을 시키고자 하는 뜻은 최 씨는 성품 하나는 더없이 선량한 사람이지만 워낙이 떠벌이는 천성 이어서다.
행여라도 저들을 더욱 자극하는 말들이 가공되어서 자칫 우리 동포사회에 미칠 화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은 스승을 죽인 살인자를 알고 있었지만 살인자를 고발할 수 없는,
남의 나라에서 숨소리마저 죽이며 살아가야 되는 그들의 처지가 서글퍼서 말없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창우는 장례를 치른 후 아버지의 유언을 집행하기로 했다.
사체를 화장한 후 그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 사각 나무통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가 은하에게 스카프로 쓰라며 선물해 준 예쁜 연분홍색 보자기에 은하가 직접 유골함을 싸게 했다.
지금 창우의 7인승 4륜 구동 지프차는 먼지 펄펄 날리며 백두산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를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창우 옆 자리는 은하가 아버지의 유골함을 정성스럽게 안고 있고,
뒷자리에는 창우 부인과 그녀의 아들 형철이, 그리고 그 옆에는 성주가 말없이 앉아있다.
맨 뒷자리는 언제나처럼 최 씨가 차창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며 외롭게 앉아있고, 다소 비좁아 보이는 그 옆자리에 기수와 경태도 불편한 듯 끼어 앉았다.
연길시내를 빠져나온 지 두어 시간이 되었을 때 창우는 인적 없는 숲길 가에서 차를 멈추었다.
옆에는 울창하게 가지를 뻗어 드넓은 나무 그늘을 형성하고 있는 오래된 정자나무 한그루 있었다.
창우가 왜 이곳에서 정차를 했는지 은하와 최 씨는 그 이유를 아는 듯했다.
최 씨가 은하로부터 유골함을 받아 들고 정자나무 옆 땅바닥에 유골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최 씨가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그의 오른쪽 귀를 바닥에 붙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배 교수 이 사람아! 이 땅의 숨결이 나도 느껴져. 우리 민족의 혼이 내게도 느껴진단 말이야”
그러면서 유골함을 끌어안은 채 또다시 말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만치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들도 제각기 손수건을 꺼내 들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해질 무렵, 저녁노을이 서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때 모두는 천지에 올랐다.
천지 아래는 거대한 구름이 용의 모습으로 꿈틀대는 형상이었다.
창우가 먼저 한주먹의 유골을 천지에 뿌려주자 백색의 가루들이 천지의 한가운데를 향하여 날아갔다.
다음은 그의 딸이, 그다음은 며느리가, 또 그다음은 그의 손자가, 그리고 그의 가장 절친했던 고향 친구가 두 손으로 백색가루를 힘껏 뿌려주었다.
맨 마지막 순서로 그의 제자들이 무릎을 꿇은 채 한 주먹씩을 차례대로 천지에 내려놓았다.
최 씨의 넋두리가 계속되었다.
“이제부터 우리 배 교수가 백두산 천지의 넋이 되어서 우리 민족을 보살펴주시구려.
배 교수가 천지를 지키게 되었으니 우리 민족이 얼마나 든든하겠소.”
이때, 갑자기 최 씨가 기이한 행동을 시작했다. 큰소리로 만세를 부르며 외쳤다.
“백두산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다!, 간도땅도 우리 땅이다!”
이 모습을 지켜본 창우의 아들 형철도 신이 나서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백두산은 우리 산이다!, 간도땅도 우리 땅이다!”
모두는 멍하니 서서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불현듯 천지의 한가운데로부터 ‘윙~’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는 웅장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