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하의 꿈 2
북경에서의 세미나 일정을 모두 마친 서 교수가 연길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1월 초순의 동장군이 맹위를 떨칠 때였다.
하루 종일 펑펑 쏟아지는 눈발은 어느 사이에 온 연길시내를 새하얗게 뒤덮었다.
서 교수는 택시를 잡아타고 연길시장 귀퉁이의 허름한 상가밀집지역에 자리 잡은 최 씨 부동산중개소를 찾았다.
썰렁한 느낌의 부동산사무실에는 한동안 사람의 흔적이 없었던 듯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어디선가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 안쪽에서부터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뉘시오?”
“죄송합니다만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서 교수가 방금 인기척이 들렸던 안쪽의 내실 방향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하지만 최 씨는 나와 보지도 않고 얼굴만 비쭉 내어 밀며 이 낯선 방문자를 멀거니 쳐다볼 뿐이다.
“여기가 혹시 배 교수라는 분이 사시는 데가 맞으신지요?”
배 교수를 찾아왔다는 말에 최 씨가 경계의 눈빛으로 서 교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배 교수는 왜 찾으시오?”
“아하, 제가 똑바로 찾아온 모양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최 씨는 그제야 다소간 경계의 마음을 풀고는 서 교수를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냉방에 그냥 앉히기가 안 됐던지 장롱에서 방석 하나를 내어왔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우리 배 교수를 만나시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배 교수님은…”
배 교수를 찾는다는 말에 최 씨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눈가 주위를 닦기 시작한다.
얼마 후 웬만큼 마음의 정리가 되었던지 서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배 교수 그 사람, 두 달 전에 이 세상을 버렸습니다.
날 남겨두고 자기 혼자서만 저 세상으로 가버렸단 말입니다.”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은 주체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아예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서 교수는 벽면 위에 걸려있던 영정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으로나마 처음 대하는 모습이었지만 과연 민족사학자다운 꼬장꼬장한 기운이 넘쳐났다.
“갑자기 무슨 사고라도 있었습니까?”
이제는 다소 진정되었던지 최 씨가 영정사진을 올려다보며 대꾸했다.
“예, 사고가 있었지요. 그 놈들이 우리 착한 배 교수를 해치고 말았지요.
생전 남에게 해코지 한번 안 해 본 착한 우리 배 교수를 그 불한당 같은 놈들이 해쳤단 말입니다!.”
배 교수가 테러로 숨졌다는 말에 서 교수는 짐짓 놀라는 표정이다.
윤 팀장도 이 무렵 사고를 당하지 않았던가!.
두 사고 사이에는 우연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연관성이 있음을 서 교수는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요?”
최 씨가 담뱃갑에서 담배한대를 슬쩍 밀어 올리더니 서 교수에게 권했다.
서 교수가 사양하자 자신의 입에 물고는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는 다시 배 교수의 영정사진을 올려다보며 허공으로 연기를 쏘아 올리더니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전부터 우리 배 교수를 못살게 굴던 작자들이 있었어요.
‘중국인으로 살기 싫으면 중국 땅을 떠나라’고 시도 때도 없이 협박하던 자들이 있었지요.
그 작자들한테 당한 게 분명합니다.
그놈들한테 납치되어서 심장에 총을 맞았습니다. 총을 맞았다고요! 이런 천하의 죽일 놈들.”
“그래, 범인은 잡았습니까?”
서 교수의 이 말에 최 씨가 이번에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다 한통속인데 그 놈들을 어떻게 잡아요?
아무도 못 잡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이 간도땅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죄인인 거죠.
그런데 우리 배 교수와는 어떻게 되시는지…”
그제야 서 교수는 자신의 신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혹시 2년 전에 여기로 출장 왔던 윤 팀장을 기억하십니까?”
“윤 팀장이라면? 동북아 무슨 연구원이라고 하던 윤 선생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그 윤 팀장이 내 제자가 되는 사람입니다.
중국을 방문하게 되면 꼭 한번 들러서 배 교수님과 약주 한잔하면서 교류해 보라는 당부가 있어 들렀는데…
세상에 어떻게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는지,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따님이 한 분 있는 걸로 압니다만…”
“네, 있지요. 우리 은하가 있지요.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네.
은하에게 연락을 넣어 볼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최 씨는 자신의 오래된 구형 폴더폰으로 은하에게 연락했다.
“은하야!,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어! 그래그래 어서 와봐라.”
은하가 올 때까지 차라도 대접하겠다며 최 씨가 부엌으로 간 사이, 서 교수는 방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벽의 한 면을 독차지한 책장에는 평소 배 교수의 관심사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중국아이들의 역사교과서며 고구려 발해유적지에 대한 관광안내 책자들, 그리고 동북공정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여러 권의 자료철들 까지,
그중에서도 영정사진 바로 밑에 떡하니 붙어있는 동북삼성지방의 큰 지도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백두산에서부터 시작되어 토문강 송화강 흑룡강을 따라서 붉은색으로 영토표시를 한 후 파란색 글씨로 ‘통일한반도의 고토회복지역’이라고 써놓았다.
서 교수는 배 교수란 사람을 여태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 척박한 간도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가운데가 짱 해졌다.
그나저나 윤 팀장이 사랑하는 처자가 지금 온다고 하지 않은가.
서 교수는 윤 팀장의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최 씨가 작은 찻상에 녹차를 준비하여 들어왔을 때 뒤이어서 은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뛰어서 왔던지 그녀의 얼굴에는 몇 송이의 땀방울까지 맺혀있고, 최 씨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은하를 바라봤다.
“인사 올려라. 한국에서 오신 윤 선생의 스승님이시란다.”
목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단정하게 머리핀으로 묶은 모습,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청바지가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 한눈에도 매우 단정한 느낌의 처자였다.
은하가 다소곳한 몸동작으로 서 교수에게 큰절로 인사했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서 교수도 앉은자리에서 함께 허리를 굽히며 마주 인사했다.
“오늘 이렇게 고운 아가씨를 만나고 보니 우리 윤 팀장이 가지고 있던 애틋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은하 씨.”
예의 바르게 무릎 꿇은 자세로 은하가 서 교수와 최 씨에게 녹차를 얌전하게 따라 올렸다.
최 씨가 은하의 눈치를 살피면서 서 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윤 선생 그 양반은 잘 지내는 거 맞죠?
2년 전,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간 뒤로 이내 우리 은하 데리러 올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라니 원!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서 교수는 난감했던지 묵묵부답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이때 은하가 무안한 표정으로 최 씨를 제지하듯 말했다.
“아저씨는 사정도 모르시면서…”
잠시 후 은하가 서 교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윤 선생님은 무고하게 잘 계시는지요? 바쁘셨던지 몇 달째 답신이 없으셔서…”
이번에도 서 교수는 아무 말없이 팔짱을 낀 채 앞 벽의 고토회복지역이라는 글씨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 모습에 어떤 불길한 생각이 들었던지 은하가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수님!, 우리 윤 선생님은 무탈하게 잘 계시는지요?”
그제야 서 교수도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해주려는지 은하를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결심했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은하 씨, 놀라지 말고 들어주세요!”
이 말에 은하는 벌써부터 눈물보따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의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은하가 서 교수의 무릎 앞으로 다가앉으며 어서 빨리 이야기를 해 달라는 표정이다.
“두어 달 전에 사고가 있었어요.”
서 교수가 여기까지만 말하고 또다시 고토회복지역이라는 글씨를 응시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런데 은하는 이미 어떤 불길한 소식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최 씨가 서 교수한테 다그치듯 말했다.
“윤 선생한테 사고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예,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어떻게 많이, 많이 다쳤습니까?”
은하가 간절히 매달리듯 서 교수에게 또다시 다가앉으며 묻자 서 교수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은하의 손을 꼭 쥐더니 사고 소식을 알려 주었다.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어요. 은하 씨 미안합니다.”
순간 은하가 부엌으로 뛰쳐나가더니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죽여가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십여 분을 그렇게 울 때까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울고 싶을 땐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평상심을 회복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