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14)

이중하의 꿈 3

by 맥도강

다음날 아침 서 교수는 어젯밤부터 묵고 있던 백산호텔에 여행 가방은 그대로 남겨둔 채 간편한 복장으로 나섰다.

서 교수가 호텔 앞마당을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창우가 운전하는 4륜구동 7인용 승합차가 은하와 최 씨를 태우고 호텔주차장에 도착했다.

“반갑습니다, 배창우라고 합니다. 제가 백두산까지 모시겠습니다. 옆으로 타시죠.”


서 교수는 지금 이들과 함께 백두산천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서 교수는 은하만 동의한다면 함께 한국으로 건너가서 윤 팀장을 만나게 해 줄 작정이었다.

비록 의식은 없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혹시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서 교수는 어제저녁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국정원의 곽 과장에게 은하의 한국체류 비자발급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곽 과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은 한국인과 거의 같은 권리인 F4비자를 발급받는데 반하여,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F4비자를 발급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중국동포들은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무연고 동포 방문취업비자인 H2비자를 발급받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그래서 곽 과장은 병원 측과 협의해서 은하를 윤 팀장의 전담간병인으로 등록하는 조건으로 H2비자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다섯 시간을 달려가는 동안 모두는 차창밖의 먼산을 바라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상념에 빠져들었다.

이 땅은 반만년 동안 일관되게 우리 민족의 숨결이 지배하던 땅이다.

그 때문인지 서 교수는 지금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이 결코 낯설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청일 간의 불법적인 간도협약 이후 지금은 중국인으로 살기 싫으면 땅을 떠나라는 거친 협박을 받는 동토의 땅이 되고 말았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배 교수처럼 서 교수는 지금 감당하기 힘든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백두산 천지에 도착하여 은하가 준비해 온 작은 제사상이 차려졌고, 모두는 함께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비록 구름에 가려서 천지를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천지에 녹아든 배 교수의 영혼을 기리는 예식은 그 옛날 고구려의 제사장이 하늘에 제사 지내듯 그렇게 엄숙하고도 장엄한 모습이었다.

이때 백두산의 기운이라도 되는 양 천지에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의 기세가 대단했다.

무방비로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움츠려드는 기색 하나 없이 배 교수의 영혼과 정면으로 교감했다.

창우는 자신 대신 아버지가 흉탄에 쓰러졌다는 자책감 때문인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다.

은하는 휘몰아치는 찬바람의 기세 때문에 홍조 띤 얼굴이 되었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표정이 되어 구름 속의 천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최 씨는 몹시도 그리운 친구에게 연거푸 술잔을 뿌려주면서 슬픔을 억누르려는 듯 입술을 깨어물었다.

서 교수가 다시 한번 큰절을 올리더니 술잔을 천천히 들어 천지를 향해서 힘껏 던지며 외쳤다.

“교수님! 고구려의 웅장한 기상으로 다시 부활하시어 백척간두에 선 우리 민족을 지켜주소서.”


다시 시작이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발 또 한 발 힘겹게 전진하고 있다,

저 위 까마득히 높은 곳으로부터 비추는 한줄기의 빛을 향하여 오늘도 힘겹게 올라서고 있다.

심장의 박동소리는 다소간 힘차졌지만 그 외의 모든 기능은 여전히 정지된 상태로서 의식이 떠나버린 육체는 단지 아무 생각 없는 고깃덩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갑자기 웬일일까?

희미하게나마 나를 인식하는 자의식이 조금씩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내 심장의 박동소리가 쿵쾅거리더니 뇌혈류에도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희미하지만 의식을 되찾아가고 있다.

순간, 톡 하고 내 손가락이 튀었다.

그리워하던 몹시도 그리워하던 그 냄새!,

그 향기가 내 폐 속으로, 내 심장 속으로, 나의 모든 감각 속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간혹 청명한 가을날 높은 산에서 맡을 수 있었던 자연 그대로의 향기!

상쾌한 자연 속의 그 향기가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자극하면서 내 몸속의 세포를 동시에 깨우고 있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급기야는 나의 모든 감각기관으로 혈류가 힘차게 운항하는 기분이다,

이제 산소호흡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자가호흡이 가능해졌다, 내 맥박도 정상을 회복하여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맑은 정신!, 활기찬 육체!,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침이 되어서 불현듯 눈을 떴다,

창문을 통해서 눈부시도록 밝은 햇살이 들어왔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햇살이던가!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내게로 몰려와 요란법석을 뜬다.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햇살은 더욱 밝아지고 내 몸에도 열기가 전해진다.

시끄러운 소리가 다소 익숙해지려고 할 때 내 침대를 끌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언뜻언뜻 나의 뇌리 속에 기억된 기분 좋은 향기와 함께….


드디어 중환자실에서 2인용 일반병실로 올라와 4월 초의 따스한 봄볕이 나의 온몸을 쪼여주고 있다.

사고를 당한 지는 5개월 만이고, 은하가 내 간병을 자청하여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지는 3개월 만이다.

올 초 서 교수님이 은하를 데리고 왔을 때는 내 얼굴이나 한번 보여주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은하의 비자를 빨리 만들기 위하여 편법으로 H2비자를 만들어야 했고, 이때 은하를 내 전담 간병인으로 등록시켰다.

그런데 은하는 나를 보자마자 실제로 내 간병인을 자처하면서 지금껏 지극정성으로 나를 보살펴 주었다.

은하의 이런 모습을 처음에는 어머니나 서 교수님도 며칠간만 저러다가 말겠지 생각했지만 몇 주가 지나도록 은하의 지극정성이 멈추질 않자 두 분은 그제야 은하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은하의 간병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그야말로 헌신적인 모습이었다.

그녀는 잠자리도, 식사도, 목욕까지도 모두 병원에서 해결하면서 오직 나의 간병에만 모든 정성을 쏟았다.

심지어는 나의 기저귀도 거리낌 없이 갈아주고, 물수건으로 내 몸도 깨끗이 닦아주었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따듯한 온도의 바람은 어느덧 계절이 초여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고 있다.

사고를 당한 지는 이미 8개월째로 접어들었지만 나의 온전한 의식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오전에도 은하는 이제 그만 돌아오라는 창우의 간곡한 전화를 받아야 했다.

정히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조만간 직접 들어와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다며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게 점심을 먹여준 은하가 내입을 닦아주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이제부터는 우리도 재활치료를 해봤으면 합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꼭 그렇게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몸이 굳어져서 영원히 못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 힘들겠지만 우리 한번 해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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