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15)

이중하의 꿈 4

by 맥도강

이렇게 하여 오늘부터 바로 재활치료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이 시작되었다.

침대에서 똑바로 앉히기 위하여 은하가 나의 양어깨를 힘껏 잡아당길 때 나도 안간힘을 다해서 용을 썼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모습을 자신의 침대에 누운 채 무기력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창백한 표정의 창가 쪽 환자가 아무리 용써봤자 소용없으니 제발 그만두라고 애원하는 눈빛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난 거저 착한 여인의 안쓰러울 정도의 강한 집착에 협조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집념의 여인을 도와주고 싶어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눈물겨운 호소에 응답하고 싶었다.

가느다란 몸으로 얼마나 피곤했던지 은하가 보조침대에 앉아 기진맥진한 상태로 내 침대에 얼굴을 엎드렸다.

이때도 난 홀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두 팔을 침대바닥에 대고 일어서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었을 때 창가 쪽의 환자는 혹여라도 내가 먼저 일어나 버릴까 봐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자신만 홀로 침대에 누워서 무의욕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매일매일을 그렇게 몸을 비틀며 일어나려고 용을 쓰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팔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은하는 어깨를 당기고 난 팔에 힘을 주면서 사력을 다해서 몸부림치기를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새벽이었다.

이날도 밤새 혼자 몸을 비틀며 일어나기 위하여 사투를 벌였다.

침대에서 사력을 다해 몸을 비틀던 순간 갑자기 허리에서 힘이 솟구치더니 나 홀로 허리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이 기적 같은 모습을 밤새 지켜보던 창가 쪽의 환자가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 침대 위에서 심하게 뒤척였다.

이 소리에 은하가 깨어났다.

내가 떡하니 침대에서 앉아있는 모습을 본 은하가 얼굴을 내 가슴에 파묻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창가 쪽의 환자도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부러움의 얼굴이 되어서 우리를 지켜봤다.

이날 오후, 난 처음으로 은하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실려서 병원마당을 오가며 산책을 즐기고 있다.

마당에는 코스모스가 앙증맞게 봉우리 지면서 머지않아서 울긋불긋 온갖 빛깔들로 피어날 것 같았다.

은하가 그중에서도 가장 튼실한 놈으로 줄기 하나를 꺾어 내게 건네주며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코스모스 특유의 톡 쏘는 향내가 코를 찌르며 이유도 없이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 기억나십니까? 연변에 오셨을 때 코스모스를 꺾어서 제 머리에 꽂아주지 않으셨습니까?

어서 쾌차하셔서 그때처럼 제 머리에 코스모스를 꽂아주셔야 합니다!”


어느덧 병원마당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은하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 온 것이다.

그동안 은하의 도움으로 그야말로 눈물겨운 재활훈련을 하였고 어느덧 목발을 짚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아침을 먹자마자 우린 어제와 마찬가지로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군락지로 걸어간다.

이제는 목발을 짚으며 나 홀로 걷고 있고 은하가 자기 머리에 코스모스 꽃잎을 꽂은 채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우리들만의 단골 나무벤치에 앉았다.

은하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내 오른손을 자신의 손으로 맞잡은 채 말했다.

“선생님!, 사실 전 요즘이 무척 행복하답니다,

선생님과 이렇게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그렇지가 않으십니까?

그런데 맨날 나 혼자서만 이야기하고 에이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행복하다는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내 양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더욱 힘주어 포개어 잡은 채 내 눈을 또렷하게 응시하며 말했다.

“선생님!, 이제 몸은 걱정 없습니다, 문제는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불굴의 투혼으로 선생님의 몸을 일으켜 세웠듯이 이제부터는 그 마음을 일으켜 세우셔야 합니다!,

선생님의 이 맑은 눈을 보면 전 단번에 알 수가 있답니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해내실 수 있습니다!”

은하는 계속 뭐라고 하면서 중얼중얼 말하고 있었지만 난 언제나처럼 아무런 말이 없다.

아직도 자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백치 상태이므로 아무런 말없이 은하의 말만 듣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 다시 새로운 봄이 다가왔다.

그동안 재활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으로 이제는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병원에서도 이제 더 이상의 치료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어머니와 서 교수님이 의논하여 퇴원을 결정했다.

어머니는 나를 부산으로 데려가면서 은하도 함께 가주었으면 했지만 염치없는 생각이라 차마 말도 꺼내지 못했다.

서 교수님이 창우와 통화하여 은하 문제를 상의해 보았지만 창우의 입장은 한마디로 단호했다.

그다음 날로 곧바로 날아온 창우는 더 이상은 곤란하다며 강제로 은하의 손을 이끌고 연변으로 돌아가 버렸다.

언제 정상인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여동생을 맡겨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오후의 한적한 시간, 난 고향마을의 뒷강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깊은 상념에 빠져있다.

사실 낚싯대만 드리웠지 낚싯바늘도 없었고 푯대도 없었다.

단지 물결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눈동자를 따라가면서 무엇인가를 한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가을이다. 우리 마을 길가를 따라서 울창한 코스모스 군락들이 끝도 없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난 매일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코스모스 꽃길을 걷고 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코스모스 꽃길을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한편 은하는 지난봄 창우의 손에 이끌려 연변으로 돌아온 후 창우의 권유로 또다시 북경으로 갔다.

북경에서 전과 같이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관광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이면 오늘 있었던 하루의 일과를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형식의 이메일을 매일같이 나에게 보냈다.

말미에는 어김없이 ‘오늘도 선생님이 무척 그립습니다’를 빠뜨리지 않는다.


사고 후 2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아직도 온전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면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지만 그런데도 은하는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어쩌면 회복될 거라는 믿음보다는 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은하는 지금도 나를 간호하면서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오빠의 거센 반대를 물리칠 명분이 없었다.

애당초 나와는 결혼만 약속했을 뿐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무심한 시간은 흘러 다시 2년의 시간이 더 지나갔다.

연말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은하는 처량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북경시내의 옥탑방 평상에서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사로잡혔다.

지금 은하가 바라보고 있는 이 별들은 6년 전 나와 함께 연길시내에서 바라보았던 바로 그 별이다.

그러나 별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서인지 그때와는 다른 별인 것 같았다.

그때는 희망을 속삭이는 별이었지만 지금은 기약 없는 이별만 노래하고 있으니.


은하는 또다시 나에게 보낼 메일을 작성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로서 감회가 무척 새롭습니다, 선생님과 헤어진 지 2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습니다,

내일이면 또 다른 새해를 비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겠지요,

한해의 마지막 태양이 사라졌듯이 선생님을 괴롭히는 나쁜 기운들도 마지막 태양과 함께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힘내십시오!, 비록 선생님 곁을 떠나 있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은하가 함께 하겠습니다,

언제까지라도…

오늘도 선생님이 무척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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