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18)

우뚝 선 백두산정계비 2

by 맥도강

규태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도 진숙이 규태와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끼어들었다.

“발해의 피지배 계층이었던 말갈족이 이후 여진족으로 불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여진족 하고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이 간도 땅의 주인행세를 하려고 했지만 우리 민족의 주인의식도 그들 못지않게 치열했었단 말입니다!”


진숙과 규태는 어느새 궁합이 잘 맞는 짝짜꿍처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전개하고 있었고 주변의 김일성대 학생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이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다.

기대이상의 호응에 도취된 규태는 이참에 자신의 생각을 모두 풀어놓을 태세다.

“고려시대 윤관이 여진족을 물리치고 축조한 동북 9성 가운데 공험진과 선춘령은 두만강 이북 700리 지점인 오늘날의 길림성 연변지역에 있었어요,

그리고 고려 말 최영장군의 요동정벌론과 조선 초 김종서의 6진 개척이 모두 고구려가 지배했던 영토를 우리 민족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이 말입니다!

간도 땅을 회복하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끊임없는 열정!

그 열정의 발로는 바로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지배했던 우리 민족의 고토를 회복하고야 말겠다는 주인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까지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진숙의 경제학부 동기인 상윤이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바로 그때! 청나라 황제의 명령으로 목극등이 백두산에 올랐고 그 자신의 판단으로 장군봉 아래 압록강과 토문강의 분수령에다가 백두산정계비를 내리꽂았으니 조선으로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는 것 아닙니까?”


상윤의 말에 규태가 오른손 엄지 척을 하면서 주변에 모여 있던 김일성대 학생들의 자긍심을 드높여 주었다.

이윽고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북한말까지 흉내 내기 시작하자 주변은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다.

“동무래 김일성종합대 학생이라 그런지 기똥차게 똑똑합니다!

사실은 조선의 관리들도 깜짝 놀랐다는 것 아닙니까!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신속하게 움직였어요,

목극등이 말한 그 지점을 국경으로 삼기 위하여 서둘러서 국경선을 만들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청나라가 딴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일종의 굳히기 전략이었습니다,

토문강의 상류 물줄기가 분명하지 않은 지점을 따라서는 돌무더기와 흙무더기를 쌓았고 심지어는 급한 대로 주변의 나무를 잘라서 목퇴를 쌓았을 정도로 최대한 서둘러서 국경을 만들었습니다,

정말이지 놀랍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실이 말해주는 역사적인 의미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당시 조선은 활과 칼대신 토퇴와 석퇴를 쌓으면서 우리 민족의 북방고토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목극등이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착각을 했다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자잘한 지엽적인 문제일 뿐 문제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조선은 국왕부터 민초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서 우리 민족의 북방영토를 회복하려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는 그 사실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상윤이 진숙에게 엄지 척을 하면서 규태가 마음에 든다는 의사표시를 하자 주변에 모여 있던 다른 김일성대 학생들도 규태에게 단체로 엄지 척을 보냈다.

순간적으로 우쭐한 마음이 든 규태가 양손을 가볍게 들어서 화답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상윤이 다시 이 논쟁적인 규태의 말을 이어받았다.

“1885년과 1887년 조청 간의 제1,2차 국경회담이 열리던 시기는 청나라 군대가 임오군란을 진압한 지 고작 2년이 지난 후였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백두산정계비상의 동위토문이 송화강으로 흘러가는 토문강임을 주장하면서 동간도 땅의 영유권을 일관되게 주장했단 말입니다,

힘이 없어 나라가 무너져 내리던 조선말의 상황임을 감안할 때 간도 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영토의식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엿볼 수 있단 말입니다!”


상윤의 말에 감동을 먹었다는 표정으로 규태가 또다시 격정적인 양손 엄지 척을 반복하면서 말을 받았다.

“우리 민족의 이런 행위는 고구려 땅을 반드시 회복하고야 말겠다는 북방영토에 대한 주인의식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은 1948년이 되어서야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도 코리아연방의 출범을 앞두고 있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남북한만이 아니라 동간도의 조선족 자치주까지를 포함하는 대통합코리아연방을 달성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동무들! 내 말이 틀렸습니까!”


규태의 선동에 적잖이 고무된 진숙이 갑자기 전사의 모습으로 돌변하더니 두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선창 하기 시작했다.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진숙의 선창으로 삽시간에 주변의 김일성종합대 학생들이 다 함께 따라서 외쳤다.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구호의 합창은 슬금슬금 퍼져나가더니 이제는 아예 일만의 전체 행군대열이 다 함께 외치게 되었다.

그 외침의 합창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갑무경비도로를 따라서 나란히 솟아오른 이깔나무의 군락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 위에 걸려있던 눈송이들이 남북대학생들의 함성소리에 깜짝 놀라서 우수수 떨어지는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졌다.

남북대학생탐험대의 함성소리는 거대한 백두산의 힘찬 박동소리와도 같았다.


남북대학생탐험대는 오늘 당일치기로 백두산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북한당국이 1인당 두 개씩 준비해 준 고단백 열량의 도시락으로 꿀맛 같은 점심시간을 끝내자마자 또다시 행군이 시작되었다.

오후 세 시경, 드디어 열 시간 대장정의 끝 장군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군대열의 선봉이 장군봉 아래 4㎞ 지점에 위치한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백두산일대의 북중국경을 관할하는 일명 백두산부대로 알려진 북한군 국경수비대 소속 1개 중대 병력이 좌우로 정렬한 채 거수경례를 했다.
개선장군을 맞이하듯이 백삼십여 명의 인민군을 백두산정계비의 주춧돌이 있는 자리까지 배치하여 극진히 맞이했다.

이 장면은 초대형의 행군대열이 수십 개의 장대 깃발을 휘날리면서 사열을 받듯 지나가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이때 검게 탄 얼굴에 우람한 체격의 중대장이 쓱 나타나더니 마치 주변 일대를 주름잡는 대장 곰인 냥 행군 대열을 안내했다.

부대원들 사이에서 백두산흑곰으로 불리던 중대장의 안내로 백두산정계비의 받침돌이 보존된 자리에 도착했다.

일제가 훼손해 버린 백두산정계비를 떠받치고 있던 받침돌은 세 개의 북한군 초소 가운데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초소의 뒤편에 있었다.

그곳에는 북한당국에 의해서 굳이 흰색 페인트로 덧칠당한 작은 시멘트 표지석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1980년 북한이 북중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글씨까지는 새기지 않았지만 정계비의 위치를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얀색의 표지석을 세워두었다.


당시 북한은 백두산정계비를 훼손했던 일제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의도로 표지석을 설치했겠지만 다분히 중국의 심기를 고려한 저자세의 형태였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시 이렇게라도 주춧돌의 위치를 표시해 두었던 것은 오늘과 같은 날을 대비한 조치가 분명했겠지만 오늘은 확실히 그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북한당국은 1712년 목극등이 설치했던 작고 초라했던 주춧돌 바로 옆 자리에 폭 3m의 화강암 받침돌을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았다.


일만의 거대한 남북대학생탐험대 행렬이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도 장군봉을 향해서 길게 들어차고 있을 때였다.

오늘의 주인공을 실은 대형화물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받침돌 인근에 당도했다.

육중한 14톤 카고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질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며 모두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손에 손을 맞잡았다.

순간, 규태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외침 한마디가 침묵하던 백두산을 일으켜 세웠다.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이 외침은 또다시 큰 합창으로 증폭되어 십리 전방의 장군봉에서 메아리 소리로 바뀌더니 온 백두산으로 울러 퍼졌다.


그러던 사이 ‘와!’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흰색의 무명천에 가려졌던 엄청난 거인이 일어서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정밀한 조율 끝에 드디어 폭 3m의 받침대 위에 백두산의 거인이 올라섰다.

높이 6.4m에 너비가 2m, 총중량이 37톤에 달하는 거대한 비석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압도적인 크기에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은 고구려의 영광을 상징하는 광개토대왕릉비와 똑같은 크기와 중량이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그 최고봉인 장군봉 아래에서 우리 민족을 통틀어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광개토대왕이 자신의 영토를 내려다보는 형상으로 우뚝 일어섰다.

비의 전면에는 ‘동위토문 서위압록’이라는 큰 글씨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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