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19)

우뚝 선 백두산정계비 3

by 맥도강

어젯밤 삼지연못가역 천막촌에서 열린 전야제 행사에서 남북한 대학생들의 장기자랑 대회가 있었다.

통기타를 치면서 '상록수'를 멋들어지게 부른 서강대학교 출신의 여학생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상을 차지했다.

이후 그 여학생은 상록수 대장으로 불리어졌는데 모두가 거대한 백두산정계비를 올려다보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을 때 상록수 대장이 통기타를 반주삼아 열창하기 시작했다.

일만의 남북대학생들이 상록수를 합창할 때는 목이 메어서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강대국들에 의해서 강제로 허리가 잘리어진 강산은 이제 인고의 85년 세월을 이겨내고 드디어 다시 하나 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리 민족을 분단시켰던 그 강대국들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방해하고 있지만 이제 우리는 과거의 나약한 분단국이 아니다.

주변강대국들의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기어이 우리 민족은 독도전쟁을 대첩으로 종결지었다.

그리고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이 일으키고자 했던 한반도 핵전쟁의 위기를 보란 듯이 이겨냈다.


이 모든 것은 남과 북의 팔천만 국민들이 한마음 한 덩어리가 되어서 당당하게 외세에 맞선 불굴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분단은 외세에 대한 의존형이었지만 통일은 외세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다가왔고 이제 위대한 독도대첩의 전리품을 성취할 때가 되었다.

민족의 통일은 1 플러스 1이 단순히 2가 아니라 10이라는 100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증폭될 것이다.

장군봉 아래에서 자신의 광활한 북방영토를 내려다보던 광개토대왕이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외세에 의한 36년의 치욕과 민족의 분단까지 겪었지만 그동안의 모든 오욕을 떨쳐내고 2030년 드디어 대통합코리아연방으로 우뚝 일어서려는 후손들이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어느덧 상록수의 합창은 함성이 되었고 이 함성은 일천삼백여 년 전의 고구려인들을 소환하여 그들과 함께 부르는 떼창이 되었다.

장대한 백두산에 울려 퍼진 메아리 소리는 고구려가 지배했던 동서남북의 광대한 북방영토 전역으로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상록수 대장의 선창에 따라서 만세삼창이 이어졌다.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이 장면은 조선중앙 TV와 KBS를 통해서 남북한의 전역은 물론이고 또다시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전해졌다.

특히 CNN은 과거 동북 3성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한반도와 중국의 영토전쟁을 상세하게 다루는 특집 방송을 내보내면서 세계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중국과 북한은 중조변계조약을 체결하여 현재의 두만강 국경을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지만 조만간 들어서게 될 통합코리아 연방정부는 이 협정을 원천 무효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광개토대왕릉비 급으로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2030년 판 백두산정계비의 제막식이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동북아시아를 제패했던 위대한 광개토대왕의 군대처럼 남북대학생탐험대는 또다시 깃발을 높이 쳐들고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을 향한 힘찬 전진을 시작했다.


이때였다.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은밀하게 행군대열을 빠져나와 아래의 동쪽방향 숲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규태와 의기투합한 일단의 남북대학생들이 북한 국경수비대의 감시망을 피해서 토문강의 물길을 따라서 무작정 뛰어 내려갔다.

애당초 규태는 백두산정계비를 새롭게 단장하는 일회성 프로그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의 근원에는 작년 독도에서 발생했던 그 사건이 중심에 있었다.

다케시마 수복결사대가 일으켰던 독도 칼부림 사건은 결국 저들의 의도대로 독도전쟁으로 비화되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남과 북은 하나가 되어서 독도대첩이라는 민족적인 쾌거를 달성했다.

이 모든 것이 독도전쟁의 결과물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만이 챙길 수 있다는 전리품으로 우리 민족은 통일이라는 더한층 위대한 전리품을 선택하게 된다.

비록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가 휘두른 칼날에 후배 준현이 희생되고 말았지만 준현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의 장렬한 죽음은 남과 북을 더욱 단합하게 만들었고 종국에는 외세들을 물리치고 코리아 연방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씨앗이 되었다.

그래서 규태는 중국 못지않게 일본이 그토록 부정하고 싶어 했던 우리 민족의 대륙사를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

우리 민족의 영토가 작은 반도에 머무르지 않고 간도라는 광활한 대륙에 걸쳐있음을 입증하고 싶었다.


남북대학생탐험대의 행군 대열이 장군봉으로 향했으니 다시 돌아오려면 두어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시간 안에 백두산정계비의 분수령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물길이 토문강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바로 돌아올 작정이었다.

잠시 대열을 이탈하자고 부추긴 사람은 물론 규태였지만 결정적으로 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사실 상윤이었다.


“1962년, 우리 수령님 하고 중국의 주은래가 서명한 조중변계조약에는 분명히 토문강과 두만강을 구분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서류상에는 제9호와 제10호 국경비를 연결하는 경계선 사이로 흑석구가 지나가고 그 위치는 제9호 비석 동쪽 1229미터 지점이라고 기재돼 있었지요,

흑석구 옆에다가 괄호를 쳐서 한문으로 土門江이라고 까지 기록 해났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분수령의 물길을 따라서 동쪽 아래로 내려가다가 제9호 비석만 확인하게 되면 이 분수령이 토문강의 최상류라는 것이 입증이 되는 것이지요,

고것만 확인하면 되니까 두어 시간 안에는 충분히 돌아올 수 있단 말입니다”

이 새로운 미니탐험대의 길잡이는 백두산 장군봉을 열 번도 넘게 올랐다는 상윤이 맡았다.


겨울철의 토문강 상류는 대부분이 건천이라 물길을 찾을 수는 없었으나 눈썰미 좋은 상윤은 군데군데 물길의 흔적들을 신통방통하게도 찾아내면서 빠르게 내려갔다.

1712년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명령을 받은 목극등이 주변일대의 물줄기를 나름대로 신중하게 살핀 뒤 그가 지정해 준 위치에 양국의 국경을 가르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그리고 우리 백성들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신속하게 인공울타리를 쌓았고 318년이 흐른 지금 남북대학생탐험대 가운데서도 최정예 멤버들로 구성된 미니탐험대가 그 흔적을 따라서 내려가고 있었다.


흙무더기나 돌무더기의 흔적들이 동쪽으로 이어지다가 금방 사라지는가 싶더니 또다시 이어지는 그런 식이었다.

계곡의 양 벽을 병풍처럼 둘러친 흙벽이나 계곡 바닥에 유난히 많은 검은 돌들을 통해서 이곳을 토문이나 흑석구로 부른 이유를 알게 하는 지점에까지 다다랐다.

이때 앞장서서 내려가던 상윤이 더 이상의 하강을 멈추고 정지했다.

“자 이제 그만들 내려가고 주변에 9호 비석이 있는지 유심히들 찾아보기오!

여기 백두산부대에서 군생활을 한 친구가 있었어 미리 귀동냥을 해두기는 했는데 이 주변이 맞는 것 같소,

동무들! 내 뒤를 바짝 따라붙어야 하오,

백두산에서 길을 잃으면 십중팔구는…”


상윤이 힘겹게 끌고 가던 막대기의 끝을 부여잡은 채 편안하게 그 뒤를 졸졸 따르던 진숙이 무심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다.

“십중팔구는 어찌 된다는 건데?

백두산 호랑이한테 잡혀서 저녁 먹거리라도 된다는 말이네?”

상윤이 호방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호랑이가 아니라 여기는 백두산 흑곰들이 득실거리는 곰 천지야,

낙오되면 흑곰 저녁거리되기 십상이니까 막대기 놓치지 말고 바짝 따라붙어라!”


곰이 우걸 거린다는 말에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던 경은이 규태를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규태선배! 백두산에 사는 곰은 겨울철에 동면에도 안 들고 막 싸돌아 다니는가 보지요?”

“그런가! 지리산 반달곰은 12월 중순부터 3월까지는 무조건 동면에 든다고 하던데 곰들마다 취향이 다른가 보지 뭐!

바위틈새 같은 데서 동면에든 곰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나기도 한다니까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겠지!”

규태의 말에 모두의 미간이 살짝 올라갔지만 백두산흑곰에 대한 경계심을 풀 정도는 아니었다.


한동안 주변을 살피던 상윤이 드디어 계곡 근처에서 제9호 비석을 찾아냈다.

스마트폰으로 토문강의 흔적을 동영상에 담고 있던 경은이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선가로부터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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