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구출작전 3
택시가 출발한 지 이제 갓 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규태의 휴대폰과 택시기사의 업무용 무전기가 동시에 울려댔다.
“예 정 과장님! 지금 장춘공항으로 이동 중입니다”
규태가 국정원의 정 과장으로부터 장춘공항의 입구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있을 때였다.
택시기사는 사무실에서 걸어온 업무용 무전기를 받자마자 싱글벙글 웃으가며 장거리손님을 그것도 따블요금으로 운행한다면서 떠들어 됐다.
큰 소리로 떠드는 중국인 기사 때문에 통화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규태가 인상을 쓰면서 기사를 노려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중국인 기사는 손님들의 반응 따윈 무시한 채 태연하게 자신의 할 말을 꾸역꾸역 다했다.
조선 손님 다섯 명을 태우고 장춘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을 때였다.
진숙이 벌떡 일어났다.
“저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네! 우리의 이동경로를 다 까발리고 있지 않았네?”
진숙이 이번에는 중국인 기사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평소에도 오늘처럼 택시의 이동경로를 묻는 무전이 오곤 합니까?”
진숙이 정색한 얼굴로 질문하자 택시기사가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주섬주섬 말했다.
“아니요! 이 무전기는 사고가 났을 때나 사용하는 긴급용인데 오늘은 웬일로 조선 손님들을 태웠느냐?
어디로 가느냐? 꼬치꼬치 묻는 게 이상하긴 했어요, 또 뭐 천천히 가고 있으라 하는 것도 이상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진숙의 통역을 듣고 있던 상윤이 소스라치듯이 고함쳤다.
“빨리 다른 데로 방향을 틀어! 빨리!”
진숙도 중국인 기사에게 큰 소리로 다그쳤다.
“장춘공항 반대편으로 갑시다! 무조건 돌려서 갑시다! 빨리!”
당황한 중국인 기사가 머뭇거리며 속도만 줄였을 뿐 손님들의 절박한 요구에는 부응하지 않았다.
이때 규태가 머리를 앞으로 쑥 내어 밀고 기사에게 오른손가락 세 개를 흔들어댔다.
그 어떤 말보다 손가락 세 개의 위력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유턴신호가 있든 없던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반대방향에서 달려오는 차량의 간격이 멀어지자 쏜살같이 유턴을 감행한 택시는 무작정 내달렸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교통공안들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려대면서 갑자기 교통검문이 강화되고 있었다.
은하가 뒤를 돌아보자 모두는 상윤 대장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미니 탐험대장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머릿속의 결정사항을 포효하듯이 내뱉었다.
“천지로 가자!”
이 뚱딴지같은 말에 모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오백여 미터 앞 전방에서 갑자기 교통공안들이 긴급 검문소를 설치하자 규태가 소리쳤다.
“천지가 됐든, 어디가 됐든 빨리 가기나 하자고! 이러다가 모두 잡히고 말겠어!”
규태의 말을 알아들은 중국인 기사가 오른쪽 샛길로 방향을 틀었다.
요금을 세배로 계산해 주겠다는 규태가 천지로 가자고 했으니 방향을 돌려서 그냥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다.
천지가 되었던 어디가 되었던 지옥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심정들이었기에 이 위험한 지역을 벗어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말이 없었다.
잠시 후 택시의 업무용 무전기가 또다시 요란하게 울려대자 규태가 허리를 급격하게 숙이면서 무전기의 전원을 빼버렸다.
이번에는 중국인 기사도 잘했다는 표정으로 규태를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어 됐다.
이 와중에도 상윤의 치밀함은 놀라웠다.
진숙으로 하여금 중국인 기사의 휴대폰을 빌리게 한 다음 직접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리고 자신의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어 버렸다.
진숙이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양해를 구했음에도 중국인 기사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항의하자 규태가 다시 나섰다.
웃으면서 특효약인 세 개의 손가락을 다시 흔들어 보이자 중국인 기사가 모든 걸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돌변했다.
주변은 깜깜한 암흑천지일 뿐 창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한 샛길을 무작정 달려온 지도 삼십여 분이 지났을 때 모두는 극도의 나른함에 빠져들어 고개를 옆으로 파묻었다.
비몽사몽 간의 상태로 한 시간가량을 더 달리고서야 위험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택시 승객들의 단잠을 깨운 건 규태의 휴대폰 벨소리였다.
“예 지금 천지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장춘공항이 아니고요 천지 말입니다!”
차창 밖의 가로등에 비친 안내판은 정말로 소천지를 가리키고 있었고 택시는 북문으로 들어섰다.
“아니요! 천지호텔이 아니고 정말로 천지로 간다니까요,
그래요 소천지인지 대천지인지 좌우지간 백두산 천지로 가고 있다고요!”
정 과장과의 통화를 마친 규태가 택시를 일단 정차시키고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정 과장의 말이 오늘밤은 여기서 묵는 게 좋겠다고 신신당부를 하네,
이 밤중에 천지에 올랐다간 모두 다 얼어 죽기 십상이라는 거야!
대천지든 소천지든 백두산천지가 무슨 동네 뒷산인 줄 아느냐면서 우리 보고 미쳤다고 난리도 아니야 지금!”
이때 초췌한 표정의 은하가 뒤를 돌아보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우리 동포분이 운영하던 제가 잘 아는 호텔이 있는데 거기로 가도록 해요,
지금도 그분이 운영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이번에도 최종 결정은 상윤 대장의 몫이었다.
모두가 상윤을 뚫어지게 쳐다봤을 때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처럼 이미 똑 부러진 결론이 만들어져 있었다.
“대신 중국인 기사도 우리와 함께 묵기로 하고 내일 새벽 일찍 천지를 오르는 것이 좋갔어!”
이렇게 해서 은하가 잘 알고 있다던 호텔의 인근까지 왔을 때 우리 동포들이 운영하던 초창기의 북문일대 호텔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대신 아래쪽에 중국인들이 새롭게 운영하는 호텔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오래전 배 교수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자행되던 백두산공정을 크게 염려했었다.
한중수교 직후 한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나던 초창기의 호텔들은 대부분 우리 민족의 자본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당시 백두산 관광지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던 우리 민족의 흔적을 중국은 끝내 용납하지 않았다.
장백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동포들이 운영하던 북문 쪽의 호텔들을 모조리 철거해 버렸다.
중국인들이 운영하던 서문과 남문 쪽 호텔들은 그대로 놔둔 것으로 봤을 때 백두산에서 우리 민족의 자본을 쫓아내려는 중국의 공작이 분명했다.
배 교수가 염려하던 백두산공정은 이미 완료되어 이제는 우리 민족의 백두산이 아닌 중국의 장백산으로 탈바꿈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