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24)

목련꽃 구출작전 2

by 맥도강

모든 걸 체념한 표정으로 인생 마지막의 커피를 마시던 은하가 철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오자 반사적으로 계단 위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평소 보지 못하던 낯선 청년이 지하실로 내려오자 은하가 애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주세요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은하는 지금 이 청년이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기대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두 손을 비비면서 간절하게 애원하는 본능적인 행동을 보였다.

“선생님 제발요! 저 좀 살려주세요!”

상윤이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로 ‘쉿’을 몇 차 레나 표시하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그렇잖아도 지금 배은하 씨를 구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어서 여기서 나갑시다!”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상윤의 말에 갑자기 은하의 두 눈에서 광명의 빛이 솟꾸쳤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단단히 묶여있던 줄부터 풀어준 후 제대로 일어서지를 못하고 비틀거리는 은하의 왼손을 그의 어깨에 걸치게 했다.

너무 오랜 시간을 학생의자에 결박되어 있었던 은하의 두 다리는 완전히 경직된 상태였다.

혈관의 피를 소통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계제가 아니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차라리 혼자서 기어오르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두 사람 모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이 방법이 결코 효율적이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던 은하를 아래에서 바라보던 상윤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무작정 뛰어올라갔다.

겨우 중간쯤 오른 은하를 안고서 계단을 거침없이 올랐다.

계단을 다 올라왔을 때 상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지하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때도 상윤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을 했다.

은하를 안은 상태에서 대담하게도 지하실의 철문을 또다시 옆으로 밀고 있었는데 도피시간을 확보하려는 완전범죄의 정석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보다는 손쉽게 철문을 닫을 수 있었다.

그래도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손이 쉬웠다.


진숙과 경은이 자신들의 배낭을 멘 채 규태와 상윤의 배낭까지 손에 들고 나오자 프런트의 안내원 아가씨가 궁금한 듯 쳐다봤다.

진숙이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방의 열쇠들을 프런트에 맡기면서 유창한 중국어로 말했다.

“주변의 경치가 좋아서 산책하러 갑니다! 좀 늦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숙박비는 선불로 계산되었기 때문에 프런트 아가씨로서는 체크아웃을 하던, 다시 돌아오던 딱히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진숙이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자 밝게 미소 지으며 잘 다녀오라며 인사했다.


이때 천지회 패거리 중 한 명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다가와 프런트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냐며 캐물었다.

“오늘 저녁에 체크인한 손님들인데 주변을 산책하러 나간다는데 좀 늦으려나 봐요”

이 건달 녀석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걷어 올린 옷소매를 내리려 했을 때 그의 오른 손목에서 파란색의 산 모양 문신이 드러났다.

이 문신은 장백산천지회의 표식으로서 소속된 패거리들은 모두 이 같은 문신을 의무적으로 새기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늘 하던 장난기가 발동했던지 안내원 아가씨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손가락 동작을 보이면서 마당으로 내려갔다.

호텔정문의 경비실로 걸어가면서도 습관인 듯 십여 미터 거리의 지하창고 철문상태부터 매서운 눈매로 확인했다.

철문의 고리가 정상적으로 닫혀있다는 것은 지하실 쪽에서는 특이사항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비실을 향해서 또 다른 자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앳된 삼합회 건달 녀석을 상대로 온갖 주접을 떨고 있던 규태가 이제까지의 용무를 끝내려고 했다.

건들건들한 거수경례 동작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하며 서둘러서 호텔을 빠져나왔다.


규태까지 호텔을 떠난 지 십여 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호텔의 맨 꼭대기층에서 대기 중이던 장백산천지회의 전용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움직였다.

왕 회장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요란스럽게 호텔로비로 내려왔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이 조용해 보였다.


은하를 등에 업은 상윤은 쉼 없이 뛰었다.

진숙과 경은도 전봇대 뒤 모퉁이에서 초조한 기색으로 대기하다가 저만치서 상윤이 달려오자 함께 달리는 중이다.

애당초 목적지에 먼저 와서 기다리기로 약속되었지만 걱정이 되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뒤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려오는 규태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 무사히 호텔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상윤이 적당한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고 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서 가던 진숙과 경은에게 고함치듯 외쳤다.

“택시를 잡아봐! 택시를 타고 가자”

두리번거리던 경은이 길 건너편에 세워져 있던 택시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기 택시 있어요!”

진숙이 건너편의 택시를 향해서 양손을 이용한 큰 동작으로 부르기 시작하자 택시는 스스럼없이 불법 유턴을 자행하면서 다가왔다.


그 사이 전속력으로 달려온 규태가 폭포수같이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헉헉거렸다.

택시가 도착했지만 행선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 또 승차인원이 한 명 많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급한 대로 행선지는 정해서 떠나면 될 일이었지만 승차인원이 모두 다섯 명이라 중국인 기사가 주저하는 기색이 역역했다.

이 다급한 상황에서 규태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지 오른손을 들어 운전기사에게 보여줬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기사에게 흔들어 보이며 ‘따블! 따블!’을 외치자 그제야 기사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몸이 불편한 은하를 앞자리에 태우고 네 사람은 뒷자리에 끼워 앉았다.

은하가 뒤를 돌아보며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장춘공항으로 가주시면 안 될까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기에 규태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럽시다! 어디가 됐던 빨리 출발이나 합시다!”

은하가 유창한 중국말로 기사에게 장춘공항으로 가달라고 말하고서야 택시는 출발할 수 있었다.


은하는 지금 자신의 처지가 지명수배자란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탓에 공항을 이용하여 출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경은에 비해서 체격이 다소 작은 진숙이 교통공안의 단속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스스로 허리를 바짝 숙였다.

얼마나 고단했으면 경은의 무르팍에 머리를 누이자마자 진숙이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자연스럽게 진숙의 허리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경은이 친자매 같은 따듯한 온기를 나누며 위기에서 벗어난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대고려연방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