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구출작전 5
종종걸음으로 일행들의 자리로 다가왔을 때 진숙이 자신의 옆 자리를 내어주면서 말했다.
“이모님 여기로 오시라요!
어떻게 저분들과 함께 가시기로 하신 겁니까?”
은하가 한껏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일행들에게 다소곳하게 말했다.
“어제부터 진숙 씨가 불러주는 이모라는 호칭이 참으로 정감이 가네요!
같은 식구로 대접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저기 계신 분들은 영사관에서 나오신 분들인데 자기들과 함께 가자고 하네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서 이렇게 왔어요,
여러분들은 이제 백두산을 오르신다고요?”
진숙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은하가 상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다음은요?”
상윤이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국으로 가야죠, 저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점심 안으로는 삼지연에 도착해야 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출발해야 합니다!”
은하가 진숙의 두 손을 조용히 감싸더니 상윤을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저도 좀 데려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폐는 끼치지 않을 테니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염치없는 말인 줄은 압니다만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서 그럽니다!”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인 기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제히 상윤만 쳐다봤다.
함께 백두산을 오르겠다는 은하의 이 제안을 상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두가 궁금한 표정들이다.
어느덧 상윤은 이 작은 탐험대의 카리스마 넘치는 대장으로 우뚝 서있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이모님 뜻대로 하십시오!
부득이한 사정 이야기는 나중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힘든 여정이 되실 텐데 이모님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고맙습니다! 제 건강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은 멀쩡합니다!”
이때 규태가 익살스러운 표정연기를 하면서 불쑥 끼어들었다.
“이모동무! 같이 갑시다,
그 대신 부리나케 올라가야지 꾸물대면 안 됩니다!”
행선지가 정해졌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은하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밝은 표정으로 밖으로 뛰어나간 은하가 정 과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 과장은 황당하다는 제스처를 동반하면서 은하의 계획을 극구 만류했다.
그러는 사이 아직 아침식사를 하지 못한 은하가 마음에 걸렸던지 경은이 애틋한 마음으로 은하의 샌드위치 도시락을 준비했다.
규태는 이번에도 진숙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신의 카드로 체크아웃을 진행했다.
떠날 준비를 끝내고 중국인 기사가 택시의 시동을 켜고 있었을 때 정 과장이 택시에 오르던 일행들에게 다가와 다시 한번 완강하게 말했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일월 엄동설한에 백두산을 올라서 북으로 가겠다는 발상은 정말이지 미친 짓이에요!
까딱하다간 얼어 죽기 십상입니다,
이건 너무나도 무모한 행동이에요,
모두들 일단 내리시고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해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결정을 되돌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은하까지 막무가내로 택시의 앞자리에 오르려고 하자 정 과장도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타협안을 제시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솔직히 이런 택시로는 천지까지 올라가지도 못해요, 그것도 뒷자리에 네 명이나 태워서는,
그래요 차라리 우리 차로 갑시다! 그 편이 낫겠어요,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가 없군요,
천지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모두 우리 차로 갑시다!”
비록 냉철한 고민도 없이 정 과장이 즉흥적으로 제시한 제안이었지만 일행들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체의 좌고우면 없이 상윤이 곧바로 수락해 버리자 정 과장으로서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하여 모두는 비좁은 택시에서 내려 넓고 편안한 9인승 SUV차량으로 옮겨 탔다.
중국인 기사를 노려보던 정 과장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사전에 약속한 세배의 택시요금을 정산하기 위하여 규태가 비씨 카드를 꺼내고 있을 때였다.
정 과장이 잽싸게 다가가 규태가 내미는 카드를 순간적으로 제지시켰다.
카드결제를 위해서 단말기를 꺼내 들던 중국인 기사가 정 과장에게 삿대질까지 하면서 항의하는 험악한 상황이 발생했다.
중국인 기사의 난동에 가까운 거친 항의는 정 과장을 보좌하던 요원들의 제지를 받고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정 과장이 피식 웃으며 규태에게 말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택시기사를 보내 주면 공안이나 장백산천지회가 곧바로 따라붙을 수 있습니다,
목적지까지 중국인 기사도 함께 데려갔다가 우리와 같이 내려와야 합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자는 정 과장의 판단은 역시 국정원의 프로 요원답게 용의주도했다.
정 과장의 부하요원들이 중국인 기사를 강압적으로 다그쳐서 택시를 다시 주차시켰다.
마지못해서 SUV차량에 오른 택시기사에게 정 과장이 다가가 자신의 지갑을 꺼내 들었다.
좀 전에 규태가 카드로 정산하려던 금액을 현금으로 건네주자 중국인 기사가 히죽히죽 웃으며 지폐를 세느라 정신이 없다.
정 과장이 덤으로 지폐 몇 장을 더 얹어주자 중국인 기사가 엄지 척까지 하면서 고마워했지만 다음순간 또다시 그 돈을 빼앗아 버렸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중국인 기사가 다시 큰 소리로 항의하자 정 과장이 유창한 중국말로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 돈은 다시 여기로 내려왔을 때 당신한테 주게 될 돈이요,
그때까지는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오케이?”
그래도 납득이 안 된 중국인 기사가 갑자기 정 과장의 멱살까지 잡아채고 무섭게 대어 들었다,
이때 정 과장의 뒷자리에 앉은 요원 한 명이 중국인 기사의 목덜미를 기습적으로 가격하여 실신시켜 버렸다.
더 이상의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던 상윤의 재촉으로 4륜구동은 산을 향해서 거친 질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던 고요는 오래가지 않아서 깨어졌다.
중국인 기사가 두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깨어났다.
“어 여기는 소천지 방향이 아니잖아!”
그러나 자신을 향한 눈빛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중국인 기사는 이내 타협책을 시도했다.
옆 자리의 정 과장을 바라보면서 깐죽대듯이 말했다.
“내 돈! 내 돈만 주면 조용히 있을게!”
자신의 실속만 차리게 해 준다면 협조하겠다는 중국인 기사의 타협안이었다.
정 과장이 잠시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안주머니에서 조금 전 주려던 지폐를 다시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다.
“이 돈이면 당신 오늘 하루 일 안 해도 되잖아!
백두산이나 구경하면서 조용히 다녀오자고! 나하고 약속할 수 있지?”
다시 돈을 받게 된 중국인 기사는 정 과장에게 엄지 척을 하면서 둘 사이의 신사협정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이미 날은 밝아 천문봉 아래 백두산주차장을 향하는 SUV 차량들이 줄을 지어서 달려가고 있었다.
더 이상의 소란은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지만 중국인 기사는 애당초 신사협정 따위를 지킬 의도가 없었다.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는 은밀하게 휴대폰의 전원 버튼이 눌러졌다.
호텔주차장에서 카드결제를 하기 전 규태로부터 돌려받은 휴대폰의 전원을 켬으로써 자신의 현재 위치를 노출시키려는 의도였다.
이제 돈도 받았겠다 더 이상은 공안에 쫓기는 조선인들과 함께 여행할 마음이 사라졌고 또 자신을 겁박했던 정 과장 일행을 혼내주고 싶었다.
문제가 터졌음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인 기사의 바지주머니에서 그동안 대기 중이던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완력으로 중국인 기사의 바지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압수한 정 과장이 크게 낙담한 표정을 짓더니 차량을 운전하던 요원에게 소리쳤다.
“방향을 돌려서 다시 내려가!”
정 과장이 중국인 기사의 옆구리를 오른손으로 한차례 가격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인 기사는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정 과장이 푸념하듯이 내뱉는 말이다.
“지금 우리의 위치는 노출되었을 테니 모두 우리를 믿고서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소천지의 표시판이 보이는 양 갈래의 도로 지점에 이르자 정 과장이 직접 중국인 기사의 휴대폰을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잠시 후 차가 도착한 곳은 중국인 기사가 처음부터 택시의 목적지라고 말하던 소천지의 진입로 입구였다.
요원 한 명이 중국인 기사의 뺨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한 후 차에서 내리게 했다.
함께 차에서 내린 정 과장이 가죽잠바의 안주머니에서 꺼낸 지갑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중국인 기사에게 지폐를 건넸다.
“당신 휴대폰은 내가 산속으로 던져버렸으니까 이걸로 요즘 새로 나온 최신 폰을 하나 장만하도록 해!”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어깨까지 토닥이면서 친절하게 악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쓸데없는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겠다는 프로 요원다운 뒤끝 조치였다.
중국인 기사가 떠나가는 차량을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있자 상윤이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다.
“어젯밤 우리가 천지에 간다고 했지 언제 소천지에 간다고 기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