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28)

목련꽃 구출작전 6

by 맥도강

백두산 서문의 우거진 숲 속,

일필휘지로 휘어 갈긴 ‘장백호텔’의 현판이 한눈에도 주변의 호텔들을 충분히 압도했다.

이 호텔의 맨 꼭대기 층에 자리한 장백산천지회 사무실에서는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팽팽한 적막감이 흘렀다.

이때 심복 훠치산이 건네준 전화기에서는 길림성 공안국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드디어 도망친 일당들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북파방향 소천지 인근입니다,

헬기를 보냈으니 편하게 이용하십시오!”


왕 회장이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소천지라? 거긴 또 왜 갔을까?

영험하다는 소천지의 물 한 사발을 떠다 놓고 뭘 빌러 갔을까?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게 해 달라고?”


훠치산이 왕 회장이 꺼내든 시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회장님 이건 순전히 저의 상상력입니다만 정상적으로는 출국이 어려우니까 혹시…”

“혹시 뭐? 장백산을 넘어서 조선으로 가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정상적으로는 출국이 안되니까 밀항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왕 회장이 목으로 시거연기를 넘기려다가 갑자기 사례에 걸리고 말았다.


큰 동작으로 기침을 여러 차례 한 후에야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훠치산을 바라봤다.

“이 엄동설한에 장백산을 넘어서 어디로 간다고?

아니지 아니지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도 아니겠어,

지금으로선 그 방법 말고는 딱히 여기를 벗어날 방법이 없을 거란 말이야,

훠치산! 곧 헬기가 도착할 거야,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반드시 그 년을 잡아와야 될 거야,

이번에도 놓친다면 내가 널 용서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한 왕 회장이 서랍에서 꺼낸 권총으로 훠치산의 얼굴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자신의 말을 허투루 듣지 말라는 경고를 이런 식으로 하고 있었다.

총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훠치산이 식은땀을 흘리며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반드시 그 계집년을 잡아서 회장님 앞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틀림없이 그렇게 해야만 될 것이야!

이번에도 날 실망시킨다면 차라리 천지 물속으로 뛰어드는 편이 나을 거야,

내 말 명심해 훠치산!

오늘이 배은하 년 탈출에 대한 너의 죗값을 탕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사실을!”


길림성 공안국의 헬기 세 대가 소천지의 상공에 나타났다.

공안헬기가 나타나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중국인 기사가 아래에서부터 격한 동작으로 양손을 흔들어댔다.

이것을 신호로 판단한 공안헬기 한 대가 산언덕으로 착지를 시도했고 나머지 두 대는 백두산의 정상을 향해 가던 길을 재촉했다.

착지한 헬기에서 내린 공안이 중국인 기사의 신원을 확인한 뒤 함께 헬기에 올랐다.


백두산 천지에 솟구친 천문봉 아래 주차장에는 이미 도착한 두 대의 헬기가 프로펠러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그 옆으로 세 번째 헬기가 착지하려는 순간 천지 저편에서부터 짙은 안개가 빠른 속도로 몰려오면서 십여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천지로 변하고 말았다.


헬기에서 내린 중국인 기사가 먼저 와서 대기 중이던 훠치산과 그의 부하들에게 여유롭게 웃으면서 다가갔다.

제법 거만한 폼새로 훠치산에게 악수까지 청했던 것은 자신이 은하 일당의 얼굴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만큼 알아서 잘 대접하라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그렇잖아도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던 훠치산이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중국인 기사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그런가 싶더니 인정사정없이 볼때기를 연속적으로 후려갈긴 뒤 훠치산의 부하들에 의해서 강제로 무릎 꿇렸다.


그제야 돌아가는 사태를 파악한 중국인 기사가 훠치산의 발아래 바짝 엎드려서 죽을죄를 지었다며 싹싹 빌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다소 듣기가 거북할 정도로 훠치산 특유의 쇳소리 섞인 고음이 신경질적으로 난사되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증표다.

“나 지금 극한으로 열받아 있으니까 빨리빨리 말해!

배은하와 함께 있던 연놈들이 모두 몇 명이야?”

초긴장 상태에서 훠치산이 갑자기 몇 명이냐고 묻자 중국인 기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던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꾸물거렸다.


그러자 화를 다스리지 못한 훠치산이 오른 구둣발로 중국인 기사의 얼굴을 가격하는 몸짓을 취했다.

“다섯 명인가 여섯 명쯤 됩니다!”

잔뜩 겁먹은 중국인 기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훠치산이 일어섰다.

“한두 놈도 아니고 대여섯 놈이라면 찾기는 쉬울 거야 그렇지?

시간이 없으니까 지금 여기서 빨리 찾아보자고!

살고 싶으면 반드시 찾아내야 될 거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중국인 기사를 앞장세운 훠치산 일당은 이른 아침부터 백두산 천지를 구경하기 위하여 산에 올랐던 수백 명의 인파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녔다.

오늘 훠치산은 왕 회장으로부터 마지막 경고까지 받았던 터라 일이 잘못될 경우 자신의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훠치산은 지금 오직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중국인 기사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거칠게 재촉했다.


반면에 중국인 기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 대신 자신의 미숙한 행위에 대한 회한으로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당국의 수배를 받던 중요 외국인을 고발했을 때는 영웅대접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칭찬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수모나 당하려고 조선인들을 배신하고 당국에 협조했었나 생각하니 회한의 감정이 울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만큼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전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그 또한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충실한 밀고자의 역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장백산천지회와 공안들이 북파코스의 중국령 천지에서 백두산의 안개와 싸우고 있었을 때 짙은 밤색의 9인승 SUV차량은 서파코스를 이용하여 유유히 백두산을 올랐다.

정 과장이 자신의 손목시계로 확인한 시각이 오전 열 시를 넘기고 있었다.

안개에 둘러싸인 백두산의 풍경은 오늘의 대장정을 환영하는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어 주었다.


드디어 1442 계단이 보이기 시작하자 미니 탐험대의 상윤 대장이 적당한 지점에서 차량을 세우게 했다.

“오늘 정 과장님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인솔하겠습니다!”

정 과장이 은하의 복장상태를 가만히 살피고 있었을 때 은하는 외투의 안주머니에서 귀덮개모자를 꺼내어 머리에 썼다.

온전한 형태의 등산복 차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소 경선이 시장 갈 때 입던 겨울복장이라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일월 한겨울에 백두산을 종주하는 행장으로서는 미덥지가 않았던지 정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은하의 목에 감아주었다.

“지금도 전 이건 정말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제 판단은 잠시 유보시키고 여러분들의 무사 귀환만 빌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가셔야 합니다!

특히 배은하 씨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서 모쪼록 여러분들의 협조를 당부합니다!”


경은이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배낭에서 빨간색의 새 등산화를 꺼내더니 은하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건 제가 예비로 준비한 등산화인데 이모님한테 드릴게요, 운동화보다는 그래도 나을 겁니다!”

경은이 건네준 빨간색의 등산화로 갈아 신은 은하가 자신에게 꼭 맞는다면서 깡충깡충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흡족해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 과장이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으로 미니탐험대원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미니탐험대가 1442 계단의 주변을 벗어나자 정 과장은 곧장 곽 차장에게 상황보고를 시도했다.

“차장님! 방금 배은하 씨와 남북대학생 네 명이 북중국경 지점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북중국경 지점이라니?”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지금 백두산 서파코스를 이용해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사히 넘어간다면 지금 시각이 열 시를 넘겼으니까 아마도 오후 두 시경에는 북중국경을 넘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어지간히 말려보았습니다만 배은하 씨의 의지가 워낙 강력해서 더 이상은 도리가 없었습니다,

고생한 기억 때문인지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저도 지금의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이곳의 사정으로 볼 때 배은하 씨가 국내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루트인 것은 사실입니다”

“휴∼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나중에 따져볼 일이고 이미 시작된 일이라면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그쪽에 꼬리라도 잡히는 날엔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프니까 정 과장이 뒷수습을 잘하도록!”


곽 차장이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취한 제1차적 조치는 국정원장에게 보고하여 북한의 정찰총국에 이 사실을 신속하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미니 탐험대의 안전한 복귀는 이제 북한당국으로 넘겨졌지만 곽 차장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누구보다도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 윤 비서관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곽 차장의 연락을 받은 윤 비서관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곽 차장으로부터 목련꽃 배송작전이 잘못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지 일주일 만의 연락이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은하를 구출하여 지금 백두산을 넘어오는 중이라 한다.

아직 온전하게 은하의 안전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천신만고 끝에 장백산천지회라는 삼합회로부터 탈출하여 생존이 확인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윤 비서관의 가슴속에 억눌려있던 벅찬 감정이 용솟음치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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