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북공정 1
이제 출발이다.
점점 더 심해지는 안개 천지에 둘러싸여서 십여 미터의 전방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상윤 대장은 어제 지나온 작은 숲길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조선소년단 시절부터 백두산 종주 행사라면 빠짐없이 참가했었는데 그때 배운 습관들이 아직도 몸에 뵈어 있었다.
상윤은 어제 이 길을 지나올 때 백두산에 서식하는 온갖 동물들처럼 그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면서 지나왔다.
군데군데 나뭇가지를 꺾어 표식을 남기기도 했고 돌멩이를 발로 차면서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상윤 대장의 마음은 다급했다.
오늘 점심 안으로 삼지연못가역 텐트촌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했다.
급한 마음에 두어 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산행을 강행했던 탓에 뒤따르던 세 여자들의 체력이 한계치에 이르고 말았다.
턱까지 차오른 거친 숨소리가 마침내 상윤을 뒤 돌아보게 했다.
경은과 진숙이 앞에서 뒤에서 은하를 당기고 밀면서 힘겹게 올라오고 있었다.
두 남자가 이 감동적인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머쓱한 표정이 되어서 쉴 자리를 찾아보았다.
주변을 서성이던 규태가 마침 볕이 잘 드는 너럭바위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은하의 자리부터 챙기던 경은이 자신의 배낭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호텔 식당에서부터 챙겨 온 샌드위치와 커피다.
“이모님은 오늘 아무것도 못 드셨잖아요,
다 식어버렸지만 이거라도 드시면 좀 나아지실 거예요”
그러자 규태도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자신의 배낭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간식용으로 잔뜩 준비해 왔던 육포덩이와 미처 먹을 새가 없었던 도시락까지 꺼냈다.
규태가 킁킁대면서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다행히 도시락의 상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무젓가락으로 한 모금 시식까지 해보고는 히죽거리면서 하는 말이다.
“묵을만하네! 다들 도시락 꺼내서 묵으면 되겠다,
금강산이나 백두산이나 식후경은 매한가지 아니겠나? 앉은 김에 밥이나 묵고 가자”
아니나 다를까. 여태 새벽에 먹은 샌드위치 하나로 백두산을 강행군하고 있었으니 체력이 바닥나기 일보직전이었다.
차갑게 얼어버린 도시락이었지만 북한당국이 정성스럽게 장만해 준 도시락은 백두산산행에 특화된 고열량의 도시락이었다.
몇 젓가락을 먹자마자 벌써부터 열기가 올라오면서 삽시간에 게 눈 감추듯 깨끗이 비워버렸다.
간식으로 육포까지 한 입 물어뜯고 있을 때였다. 저 밑에서부터 킁킁거리는 산짐승의 소리가 들려왔다.
상윤이 주의를 집중하면서 귀를 쫑긋거리더니 작은 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백두산 멧돼지들이야!
냄새를 맡고 몰려왔던 모양인데 빨리 여기를 벗어나는 게 좋갔어!”
이 다급한 와중에도 규태의 번쩍이는 재치는 진가를 발휘했다.
“육포! 육포 한 덩이를 먹이로 주고 가면 시간을 벌 수 있지 않겠나,
한 덩어리만 남겨두고 가보자!”
겨울철에 배고픈 멧돼지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행동은 다반사로 발생했지만 다행히 규태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한 무리의 멧돼지 가족들은 규태가 남겨둔 육포 한 덩이를 서로 먹겠다며 저들끼리 박 터지게 싸웠다.
그 덕분에 미니 탐험대는 식탐 많은 멧돼지 무리들을 따돌리고 힘든 줄도 모르고 한참을 올라왔다.
상윤이 또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제10호 경계비를 발견한 것인데 모두는 더욱 긴장하면서 위로 올라갔다.
어제처럼 중국 국경수비대를 또다시 만날 수도 있어 숨소리조차 억제하면서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다행히 10호와 9호 경계비를 지날 때까지도 중국 국경수비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매사에 경계심을 내려놓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 문제였다.
토문강의 물길 흔적이 보이자 마치 반가운 고향의 흔적이라도 발견한 냥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꼼짝 마! 손들어!
손 안 들면 쏜다! 모두 손들어!”
중국 국경수비대 군인 세 명이 바위틈 뒤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총을 겨누며 다가왔다.
상윤이 침착하게 손을 들면서 일어서자 나머지 일행들도 두 손을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진숙이 앞으로 나가면서 상윤의 말을 중국 군인들에게 통역했다.
“오해 마시오! 우리는 조선사람들인데 장군봉을 올랐다가 잠시 길을 잃었소,
길을 잃은 선량한 인민들이니 우릴 그냥 보내주시오!”
이때 총구를 겨누던 두 병사들 뒤에서 이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상사계급장을 단 자가 앞으로 나섰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시끄럽다! 우리의 국경을 침범했으니 월경죄로 체포하겠다!
반항하면 발사할 테니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상윤 대장이 일행들에게 그렇게 하자고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면서 모두는 두 손을 든 채 가만히 무릎을 꿇었다.
이때 의무병사 한 명이 일행들 앞으로 다가와 잔뜩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양손을 뒤로하라고 소리쳤다.
케이블타이를 꺼내 들고 한 명씩 양손 뒤로 결박할 땐 마치 포로를 결박할 때의 우쭐한 표정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백두산정계비가 보일 텐데 여기서 다시 중국으로 잡혀간다고 생각하니 모두는 억장이 무너졌다.
특히 은하의 허탈감은 극한의 스트레스로 몰려왔다. 갑자기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경은과 진숙이 급히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은하에게 다가가려고 동동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기적이 찾아왔다.
위쪽 백두산정계비 방향으로부터 바스락바스락하는 발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래쪽을 향해서 겨누어지던 총부리들이 보였다.
눈앞에서 갑자기 정의의 우리 편이 떡하니 나타났다.
하나 둘 아니 수십 개의 총부리들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중국 군인들을 위협하는 정반대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꼼짝 마! 물러서지 않으면 발사한다!
여기는 조선 령이다,
제9호 경계비 밑으로 물러서지 않으면 발사하겠다! 물러서라!”
어제 남북대학생탐험대를 씩씩하게 맞이했던 바로 그 백두산부대 병사들이었다.
총부리를 겨누면서 수십 명의 북한군 병사들이 한 발 한 발 우리 쪽을 향해서 다가왔다.
당황한 중국 군인들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9호 경계비 뒤로 물러나자 그제야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다행히 은하도 차츰 혈색이 되돌아오면서 정신을 회복했다.
진숙과 경은이 급한 대로 자신들의 머리를 이용하여 은하의 몸 여기저기를 긴급하게 마사지한 효력이었다.
미니탐험대가 1442 계단 옆의 샛길을 출발한 지 네 시간 만인 오후 두 시를 넘겨서야 드디어 북한 땅으로 무사 귀환했다.
잠시 후 진짜 흑곰처럼 생긴 백두산부대의 중대장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때 중천에 떠있던 태양빛이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지면서 신비한 광채를 만들어 냈다.
중대장이 케이블타이의 절단부터 지시한 뒤 은하와 일행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만면의 미소를 머금었다.
“거기 배은하 씨가 맞지요?
몸상태는 어떻습니까? 혈색을 보아하니 일없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 옆은 상윤동무하고 진숙동무가 맞습니까?
거기 두 동무는 남조선 동무들이고”
상윤이 케이블 타이가 절단된 손을 어루만지면서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예 맞습니다! 이 분은 배은하 씨가 맞습니다,
우리는 백두산정계비 행사에 참여한 북남의 대학생들입니다”
긴장했던 근육들이 한꺼번에 풀렸던지 일행들은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서 서로를 멍하니 쳐다봤다.
규태는 아예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운 채 백두산의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맥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백두산을 뒤덮었던 안개천지는 언제 사라졌던지 모두 물러난 상태였다.
백두산흑곰으로 통하는 이 대위가 일행들 곁으로 다가왔다.
백두산을 호령하는 야생 흑곰답게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와 까무 짭짭한 얼굴에서 풍기는 강렬한 인상은 간부급 야전 군인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작열했다.
“그렇잖아도 정찰총국의 연락을 받고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동무들이 귀환할 예정이니 정중히 모시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못가역 텐트촌까지 안내할 테니까 우리 차로 갑시다!”
북한당국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정도로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중 간의 관계가 원만했을 때의 일이고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찰총국의 보고를 받은 정 위원장이 직접 행동에 나섬으로써 이번 사건의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이렇게 되자 남북대학생탐험대의 해단식이 정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당 정치국의 상무위원들이 총 출동하는 메머드급 행사로 변질돼 버렸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미 취재 중이던 조선중앙방송과 KBS는 실시간 생방송체제로 전환되었고 평양시내에 주재 중이던 외신특파원들이 앞을 다퉈 삼지연못가역으로 몰려들었다.
동북공정의 실질적인 최대 피해자이면서도 지금까지 일관되게 침묵했던 것은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분노를 한꺼번에 폭발시키려고 했다.
조선중앙방송에서는 동북공정을 규탄하는 특집방송을 긴급 편성했다.
사실 제작은 진즉에 해두었지만 방송으로 내어 보낼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으로 창고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던 울분의 필름들을 모두 끄집어냈다.
억눌렸던 중국에 대한 격한 감정들이 여과 없이 표출되면서 심지어는 땟놈이라는 방송 멘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할 정도로 그 수위는 높았다.
조선중앙방송의 반동북공정 특집 방송은 KBS에서도 동시 방송되면서 중국과 곧 전면전이라도 벌일 기세로 반중국 열기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