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북공정 2
삼지연못가역 천막촌에서는 벌써 두 시간째 해단식까지 미루면서 천신만고 끝에 백두산을 넘어온 미니탐험대를 기다렸다.
이때 느닷없이 정 위원장 일행이 들이닥치자 남북대학생들이 운집해 있던 천막촌은 이내 열광의 도가니로 돌변하고 말았다.
정 위원장을 향한 북녘학생들의 과도한 환영분위기가 남쪽 학생들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차츰 또 다른 형식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넉넉함을 보여주었다.
이때 우리 동포를 구하고 돌아오는 미니탐험대를 마중 가자는 상록수 대장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제안에 고무된 일만의 남북대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또다시 행군 대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정 위원장이 뚜벅뚜벅 상록수대장에게 다가오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불편하지 않다면 우리도 좀 끼워주지 않겠습니까? 상록수대장!”
정 위원장의 이 말에 적잖이 당황한 상록수대장이 멈칫하면서도 당돌하게 답변했다.
“대신 맨 앞줄에 서 주신다면 끼워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좌중은 일시에 폭소가 터져버렸고, 정 위원장이 함께 온 노동당 상무위원들에게 손짓을 하면서 호방하게 말했다.
“상록수 대장동무의 말이 옳습니다!
명색이 인민의 최고 지도부인 우리가 최고 앞줄에 서는 것은 합당한 조치가 맞습니다,
우리당의 상무위원들은 모두 내 옆으로 나란히 서시라요!
우리 때문에 행군대열이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 열심히들 걷기요!”
KBS가 특집생방송으로 방영하던 지금 이 장면은 전 세계로 송출되면서 지구촌 사람들의 눈과 귀를 또다시 한반도로 집중시켰다.
대통령 환송식 때의 만세사건 이후 중국은 온갖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여 중국동포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심지어는 배은하라는 한국인을 납치하여 만세사건을 한국정부의 공작으로 몰아가려고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서 일이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렸다.
그런데 외교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건이 될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북한이 먼저 배은하 납치사건과 백두산 무단 월경사건을 전 세계에 까발리고 나섰다.
사건을 최대한 이슈화하여 이번 기회에 동북공정의 존폐를 놓고서 중국과 사생결단식의 정면 대결을 시도할 참이다.
방송카메라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중국을 탈출한 배은하 일행을 맞이하기 위한 남북대학생탐험대의 행진이 시작됐다.
동북공정을 깨부수기 위한 북한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지금 전 세계인들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수십 개의 장대 깃발을 앞장세우고 씩씩하게 행진하는 행군대열의 맨 앞줄에 정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최고 지도부가 나란히 섰다.
이런 모습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국당국으로서는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상록수대장의 선창에 따라서 엄청난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을 때 방송카메라는 특별히 정 위원장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했다.
그야말로 중국지도부를 경악하게 만든 다음 장면이 곧바로 연출되었다.
정 위원장을 위시한 북한의 최고 지도부가 오른손을 힘차게 흔들면서 상록수대장이 선창 하는 구호를 따라서 외쳤다.
“동위토문 서위압록! 대통합코리아연방 만세!”
“동북공정 박살 내자! 대통합코리아연방 만세!”
“동간도 땅 회복하자! 대통합코리아연방 만세!”
TV를 통하여 이 감동적인 장면을 지켜보던 팔천만의 코리아연방 국민들은 다 함께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치졸하면서도 비열한 방식으로 우리의 국토를 넘보려던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일격을 날리는 통쾌한 모습이었다.
독도에서 시작된 우리 민족과 주변국가들 간의 영토전쟁은 이제 중국의 동북공정을 끝장내려는 북한의 대반격으로 전환되었다.
중국의 대응여부에 따라서는 양국 간의 더 큰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구호제창으로 분위기가 최절정으로 달아오르자 통기타를 어깨에 둘러맨 상록수대장이 기타 줄을 멋들어지게 튕기면서 그녀의 상징곡을 전주 하기 시작했다.
다 함께 상록수를 합창할 때 정 위원장도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거대한 행군대열에 장중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백두산의 산천초목도 떨쳐 일어나 함께 춤추며 합창하는 듯했다.
이때 맞은편에서 올라오던 행군 대열을 발견한 백두산부대의 지프차가 백여 미터 전방에서 멈추어 섰다.
지프와 군용 트럭에서 내린 은하와 미니 탐험대원들은 이 압도적인 광경에 전율을 금치 못했다.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와’하는 남북대학생들의 함성소리가 온 백두산을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연출되지 않은 이 감동적인 장면을 조선중앙 TV와 KBS가 놓칠 리 없었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화면들은 또다시 전 세계인들의 안방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이번에도 외신들은 한반도와 중국 간 역사전쟁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했다.
당일자 워싱턴 포스트의 인터넷판 기사에서는 동북공정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주목하면서 특별히 이 시점을 선택하여 대대적으로 반격하는 이유를 파고들었다.
그동안의 모욕을 인내하면서 꾹꾹 눌러두었던 북중간의 문제를 한꺼번에 분출하고 나선 것은 통일 이후를 대비한 확실한 매듭짓기 수순으로 분석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분석은 사실이었다.
중국은 한국대통령의 방중 이후 동북공정의 제3단계라 할 수 있는 북한영토의 병합조치를 전격적으로 중단했지만 동북공정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또다시 언제라도 제3단계의 동북공정이 재개될 수 있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조치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동북공정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겠다는 북한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표출되었다.
실제로 남북한의 통일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신흥강대국의 탄생을 의미하는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통일을 앞둔 북한은 지금 중국당국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리고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동북공정을 종국적 불가역적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중국과는 전쟁도 불사하는 적성국이 될 수 있음을 세계만방에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장백호텔의 왕 회장 사무실에서는 훠치산이 무릎을 꿇은 채 왕 회장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왕 회장은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모습으로 시거연기를 천장으로 쏘아 올리면서 TV화면을 주시했다.
갑자기 영웅이 되어버린 배은하가 남북대학생들의 함성 속에서 정 위원장과 포옹하는 모습이 CNN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훠치산! 각오는 되었겠지?”
훠치산은 이제 꼼짝없이 죽게 된 현실을 받아들였던지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편안하게 말했다.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회장님이 내리시는 그 어떤 처분도 달게 받겠습니다”
회장실 밖에서는 장백산천지회의 중간급 간부 예닐곱 명이 무릎을 꿇은 채 훠치산의 구명을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 회장의 진노가 워낙 컸던 탓에 감히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왕 회장이 리모컨으로 TV를 끈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통유리창으로 펼쳐진 백두산의 풍광을 바라보며 특유의 중저음 톤으로 천천히 말했다.
“그 어떤 처분이라도 달게 받겠다,
그건 당연한 말이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미련 같은 것은 남기지 말고 모두 말해봐?”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살려달라고 하소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만 왕 회장의 평소 스타일을 잘 아는 훠치산은 달랐다.
의연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우리 만주족의 과업을 망쳐버린 제가 무슨 염치가 있어 다른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선이 강탈해 간 절반의 장백산을 되찾는 대업에 그동안 회장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살아서는 소임을 다하지 못했지만 죽어서 혼령이 되어서라도 회장님을 돕겠습니다”
훠치산의 이 말에 왕 회장의 굳은 표정이 조금씩 풀리면서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가 닫혔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때 복도에서 훠치산을 탄원하던 천지회의 중간간부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왕회장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모두를 섭렵하듯 찬찬히 훑어본 왕 회장이 안주머니에서 자신의 소음권총을 꺼내 들었다.
“우리는 만주족의 후예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비록 훠치산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인정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왕 회장이 훠치산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을 때 모두는 훠치산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탁!’ 다시 ‘탁!’ 또다시 ‘탁!’이었다.
왕 회장이 세발을 모두 발사했지만 그때마다 총알이 없는 상태에서 발사되었다.
왕 회장이 훠치산에게 겨누었던 소음 총을 자신의 안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훠치산! 결코 너는 오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 너의 목숨은 우리 선조들의 혼령이 살아 숨 쉬는 장백산에 바쳐진 것이야,
너의 목숨은 이제 장백산에 저당 잡혔으니 잃어버린 장백산을 되찾는 대업에 목숨을 바쳐야 한다!”
이렇게 하여 훠치산의 목숨은 극적으로 구명되었지만 백두산을 중심으로 전개될 이들의 극성스러움은 오히려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적어도 명분을 내세우는 삼합회 패거리였다.
자신들 선조의 이념을 계승하려는 강한 뿌리의식을 가지고 있어 작은 이해관계로 이합집산 하는 일반적인 삼합회와는 그 차원이 달랐다.
저들이 말하는 장백산,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양국이 나누어서 공유하는 어정쩡한 상황에서는 어차피 장백산천지회의 앞날은 보장되어 있었다.
중국정부가 나서기 곤란한 각종 궂은일들을 수행하는 용역단체를 자임하면서 자신들 조직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