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32)

굿바이 동북공정 4

by 맥도강

어제저녁 떠들썩하게 진행되었던 삼지연못가역 천막촌에서의 해단식을 끝으로 모두는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떠날 준비를 마치고 혼자 서있던 규태에게 여전히 씩씩한 표정의 진숙이 다가와 다정한 미소로 악수를 권했다.

“어제 내가 동무한테 딱 잘라서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한 건 말이야,

동무가 싫어서가 아니고 가까이 있는 경은동무를 바라보라는 뜻이었는데 내 말 알아들은 것 맞지?

이럴 때 여자들은 숙명적으로 이런 분야에서는 굉장히 촉이 뛰어나거든,

경은동무의 눈빛을 보면 그 마음속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 단박에 알 수가 있단 말이야,

동무가 잘 좀 챙겨주라우!

솔직히 말해서 동무입장에선 경은동무 정도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되는 것 아니네?”


따지고 보면 진숙의 말이 타당하다는 것을 규태가 모를 리 없었다.

뒤통수가 간지러웠던지 겸연쩍게 웃으면서 걸쭉한 입담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상윤 동무래 진숙동무를 바라보는 눈매가 심상치 않던데 내가 봤을 때 말이야,

둘은 속궁합까지는 몰라도 겉궁합은 찰떡궁합이 확실해 보이니까 진득하게 잘 사귀어보란 말이야!”

“아! 이 동무래 생긴 건 미련 곰탱이같이 생겼지만 눈치 하나는 백 단도 더 되는 동무구만!

우리 사이를 벌써부터 눈치챘었단 말이지!

맞아 상윤은 저학년 때부터 일편단심 나 하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를 자처했는데 그런 상윤의 마음을 이제 더는 외면하지 못할 것 같아,

더 그랬다간 왠지 벌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사람들이 의리로 살아야 되는 것 아니 갔네?”


때마침 저 만치서 상윤이 다가왔다.

진숙과 함께 있는 규태의 어깨를 왼손으로 감싸면서 특별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동무! 조국의 통일대업은 이제 시작되었으니까 우리 모두 연방정부의 안착을 위해서 일익을 담당해야 되지 안 갔어!

나와 진숙동무는 진즉부터 연방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랬어,

우린 앞으로도 좋은 동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주 연락하자고!”


상윤이 악수를 하자면서 오른손을 내밀었을 때 규태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상윤의 목을 감싸는 장난기를 발동했다.

“내가 어제오늘 동무를 겪어보니까 말이야,

판단력과 통솔력도 뛰어나서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딱 한 가지가 문제야!

동무는 인민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등한시하는 나쁜 습성이 있던데 고것은 앞으로 좀 고치라야!

고것만 빼고 나면 동무래 코리아연방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도 있갔어!”


규태의 장난기 섞인 인사말은 모두에게 한바탕의 폭소를 터트리게 했지만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상윤이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대통합 코리아연방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으니 더욱더 민주적인 소양을 쌓아야 돼 갔지,

하지만 우리가 당면했던 요 며칠의 엄중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 않았갔어?

동무가 좀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라우!”


이때 경은이 은하와 함께 나란히 팔짱을 끼고 다가왔다.

은하가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다소곳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제 생명의 은인들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옆자리에 서있던 진숙이 은하의 두 손을 따듯하게 부여잡았다.

“은혜라뇨? 같은 코리아연방의 인민들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헤어지면 고우신 우리 이모님을 언제나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다시 뵙는 그날까지 무탈하시고요”


진숙의 이 말에 규태가 또 호들갑을 떨고 나섰다.

“무슨 소리! 앞으로도 자주 만나야지,

봄가을로 백두산 종주도 하고 서울과 평양에도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야,

아참! 또 여름에는 부산 해운대로 한번 놀러 와야지?

부산 내려오면 내가 화끈하게 한턱 쏠 테니까!”

규태의 넋두리에 환하게 웃던 은하가 또다시 모두에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래요! 규태 씨 말대로 우리 모두 자주 만나도록 해요,

서울 오시면 반드시 연락을 주시고요,

여러분들을 꼭 한번 저희 집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미니탐험대원들이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을 때 남쪽을 향하는 특별열차가 서서히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수천 명의 남쪽 학생들을 태운 열차가 삼지연못가역을 출발하자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쉬운 석별의 정을 표현했다.

나란히 함께 앉은 은하와 경은 그 맞은편의 규태가 떠나가는 열차의 차창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우두커니 떠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던 진숙과 상윤도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2030년 2월의 춘절연휴가 끝나자 계엄령에서 해제된 연변일대는 모처럼 만의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의미의 악몽일 뿐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다.

두 달간이나 지속된 계엄령 기간 동안 우리 동포들은 마치 역모의 죄를 지은 중죄인처럼 제대로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계엄령의 해제와 동시에 취해진 조선족 자치주의 해체는 그야말로 현실적인 문제와 맞닥뜨리는 심각한 문제였다.

78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 최초의 자치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자치주의 청사만 폐쇄되는 것이 아니었다.

연변일대에 걸려있던 한글간판들이 모조리 떼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동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도 우리말과 우리글의 사용이 전면 중지되었다.

중국당국의 의사는 분명하고도 명확했다.

중국인으로 동화되어서 살아가던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의 조국으로 떠나라는 협박이었다.


물론 유화책도 병행되었는데 대대적인 사면조치 덕분에 기수와 경태가 풀려나는 행운을 얻었다.

구치소 앞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인파들 속에는 경태와의 재회를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져서 하염없이 철문 쪽을 주시했다.

기수가 먼저 철문 밖으로 걸어 나오자 기다리던 그의 가족들이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기수를 둘러쌌다.

반갑게 재회하는 기수가족의 모습을 경선은 멀찍이서 바라만 볼뿐 다시 구치소의 철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침내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이 밖으로 걸어 나왔지만 당장은 다가가지를 못하고 아름드리 느티나무 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경선의 이런 모습을 발견한 사람은 가족들과 먼저 재회 중이던 기수였다.

기수의 귀띔을 받은 경태가 느티나무 쪽을 향해서 다가갔고 둘은 망설이지 않고 격하게 포옹했다.

이럴 땐 그 어떤 말보다도 가슴과 가슴의 밀착으로 서로 간의 감정을 교감하는 방식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대단히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경태가 말했다.

“교도관으로부터 처음 사면 소식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압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경태의 가슴속에 파묻힌 경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데요?”

“경선 씨와 내가 만들어갈 우리 가족의 행복한 미래!”

이 감동적인 프러포즈에 대한 대답이었을까.

그녀의 심장소리가 쿵쾅거리면서 경태의 허리춤을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성주가 박장대소를 하면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에서 선남선녀 한 쌍이 벌이던 이 아름다운 광경은 주변의 지인들을 한꺼번에 몰려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노총각과 한번 다녀온 청상과부의 새로운 인생을 축하하는 작은 무대가 만들어졌다.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경선에게 다가간 성주가 검은 비닐에 담긴 따끈따끈한 두부 한 무를 건네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어디를 잠시 들렀다가 오는 길인데 말입니다,

거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가르쳐 주는 거라,

두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서 삼십 초 안에 두부 한 무를 다 먹는다면 모든 액운을 물리치고 잘 살 수 있다고 하던데 어째 도전 한번 해볼라요?”


성주가 장난 삼아서 하는 말이었지만 액운을 물리치고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두 사람으로서도 맞장구를 쳐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싼 지인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으면서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자 성주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게임을 시작하는 동작을 취했다.

반듯하게 높이 들었던 오른팔을 아래로 쭉 내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시작!”

시작 소리와 함께 경태가 먼저 두부를 먹기 시작했다.

숨도 쉬지 않고 두부 한 무를 우작스럽게 먹는가 싶더니 반도 먹지 못하고 그만 체하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경선이 경태의 등을 두드리는 와중에도 성주는 쉬지 않고 초시간을 재고 있었다.

“17초, 18초…”

경태의 체증이 겨우 가라앉고 있었을 때 초조한 표정의 경선이 순간적으로 경태의 손에 쥐어져 있던 비닐봉지를 낚아챘다.

경태가 반쯤 먹다만 생두부를 꺼내 들고 우적우적 잘도 먹어치웠다.

“27초, 28초”

드디어 마지막 한 조각의 두부를 입속으로 밀어 넣고 경선이 빈 봉지를 높이 들었을 때 성주가 큰 소리로 승리의 피날레를 불었다.

“삼십 초! 성공했습니다! 여러분 축하해 주십시오!

드디어 오늘 한 쌍의 원앙이 탄생했습니다,

우와 이건 뭐 거의 기네스북감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두부 잘 먹는 신부를 본 적이 없는데요,

새 신부님! 도대체 비법이 뭡니까?

혹시 두부공장 집 딸이라도 됩니까?”

성주가 마이크라도 되는 듯 볼펜을 경선의 입에다 갖다 대고 물었을 때 수줍음 많은 경선이 경태의 뒤로 숨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집에서 콩농사를 지어서 어릴 때부터 신물이 나도록 두부를 많이 먹어서 그래요”

이 말에 모두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경선을 자신들의 무리로 받아들였다.


창우는 두 사람의 석방을 축하하기 위해 인근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난 돼지갈비 식당을 통째 예약해 두었다.

뒤늦게 합류한 연구소의 청년단원들까지 합세하여 드넓은 홀 안이 가득 들어찼다.

경태의 옆 자리를 지키던 경선도 어느새 이들의 형수나 제수씨로 불리게 되었다.

자리에 앉은 창우가 일행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앞으로의 생각들은 정하고 있나?”

소주대신 자작으로 막걸리 한잔을 들이켠 성주가 향토연구소의 소장답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뭘 어쩌고 말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여기가 우리 고향인데 고향을 지켜야지요!

조선족 자치주가 아니면 어떻고 한족들이 또 엄청나게 밀고 들어오면 어떻습니까?

고향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난 여기서 끝까지 우리 땅을 지킬 겁니다!”


다정한 눈빛으로 경선의 얼굴을 바라보던 경태도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우리도 그렇게 할 겁니다!

조상님이 물려주신 땅인데 누구 좋아라고 여기를 비워준단 말입니까? 택도 없지요!”

기수도 소주잔 대신 성주가 부어주는 막걸리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웃으며 말했다.

나도 동감입니다! 경태 말대로 누구 좋으라고 떠난단 말입니까?

어쩐지 지금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것 같아서 당분간 여기를 안 떠날 생각입니다,

배 교수님이 우리한테 남겨주신 그 말씀이 난 아직도 귓전에서 맴돌고 있거든요,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대통합이 될지 중통합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별 셋을 노래하면서 여기서 그냥 살아가렵니다”


이때 창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기수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자칫 이 말이 흘러 나가기라도 한다면 또다시 큰 곤욕을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창우도 바로 이 말 때문에 아버지 생전에 크게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위험한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민족의 대통합은 중국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야말로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말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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