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연방 민주공화국 1
3월 중순이 되자 드디어 베일에 가려져 있던 통일헌법의 시안이 공개됐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예상대로 ‘대통합 코리아연방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연방에 참여하는 주정부의 단위를 놀랍게도 기존의 남북한 정부가 아닌 열두 개의 광역권 지방 주정부로 규정되었다.
전국을 모두 열두 개의 지역단위로 나누어서 그 지역의 주정부가 연방에 참여하는 형태가 골자였다.
현실적인 관건은 서울경기의 수도권 중심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달려있었다.
삼일특공대는 그 해답을 인근의 지자체들이 연합하여 규모를 키우는 메가시티에서 찾았다.
그러면서도 남과 북 할 것 없이 각 지방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고려하여 출발당시에는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하고자 했다.
장차는 세계적인 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일천만 명 규모의 메가시티를 지향하면서도 당장은 인구수의 최소 하한선을 300만 명 이상으로 지정하는 타협안이었다.
남쪽은 이미 메가시티 구성을 위한 각 지방정부들 간 논의와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북쪽의 사정은 달랐다.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경험이 전무한 북쪽으로서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구상에 들어가야 했다.
통일국가의 골격을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던 남북국회의 십 인 위원회가 지구촌사람들이 궁금해하던 코리아연방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가급적이면 남쪽과 북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여러 지혜들을 모아봤지만 현실적인 인구수의 편차 때문에 자치주의 숫자를 동일하게 배분할 수는 없었다.
남쪽은 여섯 개, 북쪽은 다섯 개의 자치주로 최종 결정되었다.
하지만 분단시절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라져있었던 강원도는 하나의 자치주로 통합되는 보상을 받게 되면서 통일자치주라는 특별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의외의 자치주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것은 뜨거운 관심사였던 코리아연방의 새로운 신행정수도가 들어설 비무장지대였다.
서울도 평양도 아닌 오랜 세월 남북분단의 상징과도 같았던 비무장지대가 신행정수도로 전격 합의되었다.
이것은 남과 북의 어느 일방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한반도 통일의 평등정신을 고려한 역사적인 결정이었다.
이 역시 삼일특공대의 아이디어를 십 인 위원회가 받아들이면서 결정된 파격적인 조치였다.
신행정수도의 이름을 여론조사의 형태로 공모한 결과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광개토대왕 특별시로 결정되었다.
대통합 코리아연방의 신행정수도가 들어서는 비무장지대는 이억칠천삼백여 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면적이다.
한국전쟁의 오랜 상처가 남아있던 비무장지대의 개발청사진을 국제공모로 결정하기로 하자 세계는 또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남쪽이 여섯 개, 북쪽이 다섯 개, 그 한가운데 위치한 광개토대왕 자치주를 합하여 모두 열두 개의 자치주로 연방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첫 삽도 뜨지 못한 광개토대왕 특별시의 상주인구 300만 명 시대는 요원한 일이어서 현실적으로는 열한 개의 자치주 시대가 상당기간 지속될 예정이었다.
이렇듯 각 자치주 정부의 단위를 광역지방권의 단위로 나누었던 제1차적인 목적은 내실 있는 지방자치의 실현에 있었지만 또 다른 속사정도 있었다.
일 년 전, 얼떨결에 시작된 남과 북의 통일논의는 다분히 형식적인 위상의 연방정부로 출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느슨한 구조로는 남북정부의 사소한 갈등에도 언제라도 또다시 깨어질 위험성이 있어 특단의 대안마련이 필요했다.
통일헌법의 초안 작업에 참여했던 십 인 위원회는 오랜 세월 분단되었던 두 체제의 장벽을 효율적으로 허물려는 삼일특공대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남북한 정부의 권한을 분산시켜서 두 번 다시는 깨어지지 않을 굳건한 통일을 다지는 것!
이 시급한 과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삼일특공대는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실현을 제안했다.
그러나 과거 독일의 방식처럼 일방이 일방을 흡수하는 형태가 아니라 쌍방이 동등한 입장에서 합치되는 방식은 요소요소에 악마가 숨어 있었다.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듯이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았다면 통일헌법의 시안을 이렇듯 속전속결로 완성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북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인구수는 절반 가까이나 적었지만 어쨌든 남북한 동률이 아닌 남쪽보다도 하나가 부족한 주차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북쪽에는 정 위원장이라는 압도적 파워의 의사 결정권자가 있었다.
현실적인 인구수의 편차를 고려할 때 이러한 결정의 불가피성을 자신의 인민들에게 차근히 설득했다.
이번에도 그는 통일과정에서 나타난 사소한 디테일의 싹들을 자신의 카리스마로 정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남쪽도 마찬가지였다. 북쪽보다도 배 가까이나 인구가 많았지만 강원도를 떼어주고서도 인구수의 최하한을 삼백만 명으로 설정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통일을 갈망하는 다수의 남쪽 사람들은 이 모두를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통일 이후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였지만 말이다.
독도전쟁을 겪었고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을 겪은 터였다.
한반도에서 축약적으로 일어났던 여러 특별한 상황들은 팔천만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소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우리 민족 중심의 집단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렇다고 대통합 코리아연방의 출범과 함께 곧바로 남북한의 기존 정부를 해산할 수는 없었다.
85년간 분단된 두 체제가 어느 날 갑자기 물리적 화학적으로 통합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남북한의 정부기능을 십 년이라는 경과기간을 가지면서 점진적으로 연방정부로 이양시키는 완충작용이 필요했다.
이로써 기존의 남북한 정부는 헌법의 부칙에 경과규정을 삽입함으로써 향후 십 년의 생명줄을 더 연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피했을지라도 대단히 위험한 동거로 평가받았다.
여전히 국가의 중요 권력은 남북한의 기존정부에 집중된 상황에서 새롭게 출범하는 연방정부와 주자치정부가 함께 공존하는 입장이었다.
자칫 상다리의 균형이 맞지 않아 애써 차린 소중한 밥상을 엎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한반도의 팔천만 구성원들이 어떻게 균형감각을 발휘하면서 대통합 코리아연방을 안착시켜 나갈지 세계인들의 귀추가 주목되었다.
독도가 선명하게 표기된 하늘색 한반도기를 통일 연방의 국기로,
한민족의 애환이 서린 아리랑을 통일 연방의 애국가로,
서로 다정하게 마주 선 무궁화와 목란이 통일연방의 국화로 무난하게 합의되었다.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가 채택되었다.
연방의회에서 과반수 의원의 지지를 받은 총리후보자를 연방대통령이 임명하면 연방총리는 내각을 구성하여 실질적으로 정부를 통치할 권한이 주어졌다.
단 한차례의 중임만 허용된 연방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로서의 역할만 행사할 뿐 대부분의 실질적인 권한들은 모두 연방총리의 몫이었다.
초대 연방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는 대통합코리아 연방의 UN가입 문제였다.
대내외적인 통일의 상징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였지만 남북한의 통일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주변국들의 동의 여부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늦어도 4월 말까지는 기존의 남북한 의회에서 통일헌법의 시안을 의결하기로 합의되었다.
하지만 4월 중순에 접어들도록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논란거리가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국호의 문제였다.
남북 양쪽 모두에서 코리아라는 외래어를 정식의 국호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들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당초 십 인 위원회에서도 외래어 국호에 대한 거부반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삼일특공대가 제안했던 ‘대통합 코리아연방 민주공화국’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사실은 남북한 모두에서 수용할 수 있는 국호 찾기가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느 일방의 흡수통일이 아닌 상호합의에 의한 평화적인 통일이었기에 발생한 문제였다.
대한, 조선, 민국, 한국과 같은 기존의 명칭은 배제되어야 했고 어느 쪽의 거부반응도 없는 양쪽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국호가 필요했다.
그래도 코리아라는 이름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남북한의 단일 체육팀이 구성될 때마다 사용하던 익숙한 이름으로서 외국에서도 남북한 모두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었다.
일각에서는 한반도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반도라는 지리적 형태를 국호로 내세우기에는 마땅치 않다는 여론이 비등하여 고심 끝에 코리아로 낙점이 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