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55)

잊혀진 독재자의 도발 2

by 맥도강

이른 새벽부터 민 대통령은 마당의 여기저기를 거닐면서 연방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여러 시련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팔십 년 이상을 다른 체제로 살아왔는데 살림을 합쳤다고 해서 어찌 하루아침에 생각까지 같아질 수 있겠는가?

하나의 생각으로 녹아들려면 오래된 상감청자처럼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어서 어느 일방의 집단적 상실감이 생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집단의 상실감이 커지면 극단적으로 대응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는 법!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연방의 현실을 감안할 때 반드시 치밀한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정 위원장 스스로 상실감을 가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이제 막 아침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민 대통령의 성북동 자택으로 정 위원장이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일전에 대통령님께서 전해주신 보고서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는데 제 마음에도 쏙 들었습니다,

보고서를 보고 있자면 우리 연방의 미래는 대단히 희망적으로 보인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특정 정당의 독주가 아니라 이렇게 생각이 다른 세 개의 정당이 함께 공존할 수만 있다면 우리 연방도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조선의 역동적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요사이는 제가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윤 소장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요”

“아 예 꼭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 허구한 날 광화문광장에서 떠들어대는 저 시끄러운 소리는 대체 언제쯤 잦아들 것 같습니까?

연방법까지 만들어진 마당에 소득도 없는 저따위의 노릇을 지속하는 자들의 속내야 뻔하겠습니다만 난 당체 헌법재판소라는 것이…”


은연중 정 위원장이 헌법재판소에 대한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자 잠시 머뭇거리던 민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생각엔 아마도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청구를 기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위원장님께는 여러모로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실 것까지는 없습니다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애초 우리가 통일헌법을 제정할 때 좀 더 꼼꼼하게 챙겨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단 말입니다,

인민들의 총의로 선출된 연방의회라는 기구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무엇 때문에 별도의 옥상옥 기관을 또 만들어서는 이 사단을 초래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난 그 아홉 명의 판사들이 모여서 연방법이 옳으니 틀리니 하는 심판을 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드디어 정 위원장의 입에서 불만 섞인 발언까지 튀어나오자 민 대통령은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위원장님!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죠?

아마도 걱정하시는 일없이 모든 것이 잘 처리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절차가 그렇다 보니 번잡스럽게 되었을 뿐인데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은 민 대통령이 새벽에 배달된 조간신문을 펼쳐보았다.

어김없이 오늘자 신문지면도 온통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제로 도배되어 있다.

일본의 사주를 받은 신일진회의 농간질에 온 나라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이 무렵에 맞추어서 대형사고까지 터지고 말았다.


평일의 낮 시간이라 인적이 한산하던 개성시내의 어느 단독주택 단지에 낯선 차량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서울 말씨를 사용하는 수십 명의 청장년 남녀들이 우르르 차량에서 내려 삼사 명씩 조를 짜고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이들의 손에는 자신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명의로 된 땅문서와 내용증명서가 쥐어져 있었다.

내용증명서에는 자신들을 1946년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에 의해서 불법적으로 집터를 몰수당한 진정한 토지소유자의 상속인들로 소개하면,

이제 토지의 소유권을 회복하러 왔으니 한 달 내로 집을 비워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생판 처음 보는 남의 집 대문에 발길질을 해대며 우체함에 자신들이 가지고 온 서류들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작성한 내용증명서를 오전에 우체국에 접수시키자 말자 그 사본을 들고 달려와서는 이 같은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지 말이야!

구십 년이 다되도록 주인허락도 없이 남의 땅에서 집을 짓고 살았으면 보상을 해주던지 집을 비워주던지 해야 될 것 아니야!”


갑자기 남쪽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뜬금없이 소란을 일으키자 영문을 모르던 거주자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와 사태를 파악하게 되었다.

대부분 사업장에 출근한 시간이라 주택단지에는 연로한 거주자들뿐이다.

대략적으로 내용증명서를 읽어본 거주자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출근한 며느리 대신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나온 칠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고함치듯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요?

이 집은 경애하시는 위원장님으로부터 하사 받은 틀림없는 우리 집이란 말입네다,

우리 명의로 등기까지 다 마쳤는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이 보다는 낫겠수다, 적당이 들 하슈! 적당히!”


근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뚱뚱한 중년여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을 쳤다.

유난히도 큰 귀걸이와 두툼한 금목걸이가 뽀얀 살결사이로 철렁이고 있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그쪽인 것 같은데 여기 적힌 내용증명서나 똑바로 읽어보고 말하세요!”

“읽어보나 마나지! 뉴스에서 하도 떠들어대서 우리도 알만큼은 다 안단 말입니다!

연방법에서도 개인에게는 소송 전을 못하게 돼 있는데 그러니 이거이다 되지도 않을 미친 개소리지 않아요?

따슨밥들 자시고 그렇게도 할 일들이 없으십니까?

작작 들 하시고 이제 그만들 남쪽으로 돌아가시라요!”

그러면서 보란 듯이 우편함에 꽂아둔 내용증명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자 뚱뚱한 중년여자가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소리쳤다.

“이 할망구가 뚫린 입이라고 다 같은 입인 줄 아나?

뭐 미친개소리! 그동안 주인허락도 없이 남의 땅에서 집 짓고 이만큼이라도 잘 살았으면 고맙다고 할 것이지,

뭐! 미친개소리가 어쩌고 어째! 아 그래 알았어요 알았어!

시끄럽게들 떠들 것 없고 할망구가 좋아하는 그 연방법대로 한번 해보자고요!

여기 내용증명서에 나와 있는 대로 딱 한 달의 말미를 줄 테니까 그때까지 집을 비워주던가 아니면 땅세를 내던가?

양단간에 선택을 하란 말이요!

안 그랬다간 헌법재판소 판결이 내려지는 대로 집이고 뭐고 불도저로 확 밀어버릴 테니까!”


그 사이 급히 연락을 받고 직장에서 달려온 거주자들이 모여들었다.

큰 키에 비쩍 마른 중년사내가 남쪽 사람들을 향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이 주택단지의 인민반장이요!

보아하니 여러분들이 옛날 이 집터 지주의 자손들인 것 같소만 알 만한 사람들이 지금 여기서 뭐 하는 횡패질이요!

따질 것이 있으면 연방정부에 가서나 따질 것이지 북조선사람들이 좀 가난하게 산다 싶으니까 만만하다 이것이요?

몽둥이로 혼쭐들을 내기 전에 퍼떡 물러나기요!”


인민반장의 말에 건너편에 서있던 운동 꽤나 한 듯 한 거구의 청년이 호기롭게도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대뜸 인민반장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 영감탱이는 우리가 젊잖게 말로 해서는 도무지 못 알아 처먹는 인간이구만!

우리 땅에서 나가달라는데 뭔 말들이 그렇게도 많아?

우리 땅에서 그만큼 잘 먹고 잘살았으면 이제는 좀 꺼지란 말이야!”

이 말과 동시에 잡았던 멱살을 세차게 밀쳐버리니 연로한 인민반장이 사정없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이 모습을 지켜본 거주자들은 한결같이 눈들이 뒤집히고 말았다.

근처에 보이던 빗자루며 쓰레기통이며 심지어는 삽이던 낫이던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던 집어 들었다.

두 패로 나뉜 이 날의 집단난투극은 자치주의 경찰이 출동하여 진압할 때까지 살벌하게 전개되었고 중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 간 사람들이 양쪽에서 모두 열 명이 넘었다.


이날 발생했던 충격적인 사건은 삽시간에 북쪽 다섯 개 주로 전파되어 남쪽에 대한 민심이 크게 악화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통일이전부터 남한지역에서는 북한지역의 땅문서가 꾸준히 거래되고 있었는데 몇몇 사채업자가 매집한 땅문서만 해도 수십만 평에 이를 정도였다.

이들이 북쪽 다섯 개 주지역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갖은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자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정 위원장의 관저 앞으로 몰려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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