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56)

잊혀진 독재자의 도발 3

by 맥도강

연일 관저 밖에서 외쳐대는 인민들의 들끓는 호소를 목도하면서 정 위원장의 얼굴도 벌겋게 상기되었다.

통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권력을 아낌없이 다 내려놓았던 정 위원장이다.

이제 더 이상 인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사실이 그 자신의 상실감으로 다가왔고 그것을 참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 시기 정 위원장이 가졌을법한 상실감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공감의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바로 민 대통령과 연방대통령이었다.

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아직 민주주의 시스템에 생소한 정 위원장으로서는 섭섭한 마음으로 다가왔다.

대관절 그놈의 민주주의가 무엇이 간데 연방국회위에 군림하는 아홉 명의 지식분자들 손아귀에 우리 인민들의 생존 여탈권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절차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손을 놓고 있는 두 대통령에 대하여는 아직 내색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불신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문제이기에 앞서 북쪽 인민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부득이 정 위원장이 나서야만 되는 상황으로 내어 몰렸다.

정 위원장은 이 같은 사태를 마냥 방치하게 된다면 독일 통일 후 동독인들이 겪었던 2등 국민으로서의 차별적 대우가 고착화될 수 있다고 봤다.

오직 자신을 믿고서 민족통일의 대장정에 순순히 따라준 인민들에게 이 같은 차별을 감내하게 할 수는 없었다.

북쪽 인민들의 하소연은 어차피 그 자신의 몫일터 정 위원장은 평소 그 자신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기로 결심한 후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민 대통령이나 연방대통령에게는 단 한마디의 통보도 없이 네 명의 북쪽출신 국정자문위원들을 대동하고 광개토대왕 시를 찾았다.

정 위원장 일행이 갑자기 들이닥친 곳은 연방정부청사 인근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건물이었다.

정 위원장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헌법재판소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연방정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연방대통령으로부터 다급하게 연락받은 민 대통령도 지금 만사를 제쳐놓고 광개토대왕 시를 향해서 달려가는 중이다.


헌법재판소의 1층 현관 앞에는 정복 입은 경비들에 의해서 출입자들이 일일이 통제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번잡스러운 출입절차 따위를 깡그리 무시한 앞장선 네 명의 국정자문위원들이 눈에 쌍심지를 켠 채 거칠게 밀고 나아갔다.

어렴풋이나마 상대를 짐작한 직원들은 크게 당황하면서 허둥대기 바빴고 속수무책으로 저지선이 뚫리고 말았다.

때마침 오늘 헌법재판소에는 다른 중요사건으로 전원재판부가 열릴 예정이어서 아홉 명의 판사들이 모두 재판관 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정위원장 일행이 탄 엘리베이터가 3층에 당도했지만 십여 발자국 거리에 있던 소장실 앞은 인적도 없이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행들이 소장실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소장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문밖으로 나와서 정 위원장을 영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정 위원장의 얼굴표정에선 그 자신의 상실감이 적나라케 드러났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번 빙긋이 웃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주위를 물리친 정 위원장이 직접 구둣발로 힘껏 문을 걷어찼는데 얼마나 세차게 찼던지 문 열리는 소리가 ‘쾅!’하고 우렁차게 들렸다.

여지없이 소장실의 목문이 활짝 열어젖히자 그 안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몇몇의 판사들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어색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정 위원장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은 사무처의 긴급 보고를 통해서 이미 알고는 있었다.

지만 헌법재판소의 소장 체면에 뛰어 내려가서 맞이하기도 그렇고 해서 어정대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정 위원장이 직접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어찌 되었던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그 상황은 대단히 어색하고 민망했지만 얼굴을 대면하게 되었으니 인사는 해야 했다.

오랜 법관생활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헌법재판소장은 다분히 뻣뻣한 태도로 정 위원장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방문하신다는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주시니 저희들로선 대단히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만 용무가 있으실 것 같으니 앉아서 말씀하시죠!”


이때 정찰총국장 출신으로 곽 사령관과 함께 정 위원장의 분신으로 통하는 림광철이 삿대질까지 하면서 큰 소리로 호통 쳤다.

“뭐요! 연락도 없이 갑자기 와서 당황스럽다고!

그래서 국정자문위원장님께서 친히 방문하셨는데도 소장이라는 작자가 나와 보지도 않았어!

뭐야 당신! 당신이 뭔데 우리나라 연방 지분의 절반이나 보유하고 계시는 우리 위원장님을 홀대하는 거야!”

림광철이 이 정도로 까지 소장실을 거칠게 뒤집어놓고 있었지만 정 위원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봤다.


화가 덜 풀린 림광철이 소장과 판사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오늘 당신들이 이 나라의 국정자문위원장님께 행한 크나큰 무례에 대하여 지금 당장 정중하게 사과하시오! 어서!”

그럼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흥분한 림광철이 오른손을 들어 뺨이라도 때릴 것 같은 동작으로 판사들을 압박했다.

그제서야 분위기에 압도된 판사들이 잠시 움츠려드는 기색을 보이기는 했지만 끝내 사과의 말은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의 고고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하여 저항이라도 하겠다는 듯 뻣뻣한 자세 그대로 선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됐어! 그만들 하라우! 이만하면 충분히들 알아들었을 테니까,

이제 그만 들하고 당신들도 여기로 와서 자리에 앉지 그래?”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정 위원장이 함께 온 네 명의 자문위원들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 자신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우두커니 서있던 몇몇의 판사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비워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9인석의 둥근 탁자에는 정 위원장을 비롯한 그의 일행들이 둘러앉았는데 그들 모두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정 위원장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헌법재판소장을 쏘아보며 말했다.

“오늘 내가 여러 판사들한테 할 이야기가 있었어 걸음을 하였으니까 괜찮으시다면 나머지 재판관들도 모두 불러줄 수 있겠습니까?”

상기된 표정과는 달리 정 위원장의 어투는 어느새 공손하게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버린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며 머뭇거리던 소장이 비서실장에게 그렇게 하라고 머리를 까딱였다.

“모두들 모이라고 연락했으니 곧 자리를 함께 하겠습니다만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 저희들에게 먼저 말씀을”

림광철이 또다시 눈알을 부랄이면서 소장의 말을 잘라먹었다.

“감히 이 작자가 누구한테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위원장님께서 하명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만 한 치의 거짓부렁도 없이 답변하면 될 일을!”


이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와중에 연방대통령이 상기된 표정으로 불쑥 들어왔다.

얼마나 다급하게 달려왔으면 손에 든 손수건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하던 연방대통령은 정 위원장과 의례적인 악수만 나눈 채 정 위원장의 반대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머지 재판관들이 모두 들어왔을 때는 앉을자리가 모자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소장이 연방대통령을 바라보며 보다 넓은 회의실로 옳기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자 반대편에 앉아있던 정 위원장이 정색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번잡스럽게들 하지 말고 그냥 여기서 얘기합시다!

정신이 어지러우니까 소장님도 그 빈자리에 대충 앉으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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