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독재자의 도발 4
정 위원장의 정색한 표정과 말투는 함께 있던 이들의 간담이 서늘하게 할 만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소장과 몇몇 재판관들이 군말 없이 빈자리에 앉자 나머지 재판관들은 바로 그 뒤에서 바짝 경직된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웬만큼 자리가 정돈되자 정 위원장이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이 자리에는 우리 연방의 최고 어른이신 연방대통령님께서도 계시고 하니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갔습니다,
조국이 통일된 지 이제 겨우 삼 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지금 온 나라가 1946년도에 단행된 토지개혁 문제로 난리도 아니란 말입니다!
연방 법률도 제정되고 해서 난 깔끔하게 다 정리되었다 생각했는데 또 무슨 법률의 위헌성을 따진다고 하면서 여기 헌법재판소에 계류시켜 둔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이 문제로 해서 지금 우리 인민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피로도는 하늘을 찌를 지경인데도 여기 헌법재판소에서는 대체 뭣들을 하고 있는 겁니까?
빨리빨리 판결을 내려서 인민들의 고통을 해결할 생각들은 하지 않고 차일피일 시간을 끄면서 뭉개는 이유가 대체 뭐냔 말입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을 껌벅이던 연방대통령이 시선을 소장에게 고정시킨 채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위원장님의 말씀이 온당하지 않습니까?
물론 헌법재판소의 입장도 있겠지만, 이렇게 지체될 일이 아님에도 이 문제를 대하는 여러분들의 자세가 안일한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가 됩니다,
소장님께서도 따로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이던 한번 해보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 역정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던가!
비록 지금은 국정자문위원장이라는 한직으로 물러나 있기는 하지만 한때는 미국대통령과 맞짱을 뜨던 무시무시한 정 위원장이다.
또 한 사람은 명실 공히 대고려연방을 대표하는 연방대통령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강직한 재판관으로 살아온 헌법재판소장은 주눅 든 기색 하나 없이 일관되게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사건을 접수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을 뿐입니다,
저희들도 연방의 사정을 고려하여 가급적 서둘러서 심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들여다보아야 할 내용들이 많아서 앞으로도 두 달가량은 더 소요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과 위원장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하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할 말을 다하던 소장의 발언이 끝나자 정 위원장의 얼굴에서 또다시 노기를 띠기 시작했다.
“좋소! 그렇다고 칩시다!
심리를 하는데 앞으로도 두 달이 더 소요된다면 그럼 뭐 연방법이 위헌을 했다는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해보세오? 그렇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소장이 나머지 재판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범 답안을 말했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판결이 날지에 대해서는 어떤 예단도 할 수가 없습니다,
심리를 더 해봐야만”
정 위원장이 더는 들을 대답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황한 연방대통령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정 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판관들을 일일이 둘러보면서 쏘아붙이듯 말했다.
심중 깊숙이 숨겨두었던 그 자신의 의중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이 사건 더 이상 심리하지 마시오!
아니 내가 못하게 만들 테니까 그리들 아시오! 당신들은 이제 해산되었소!”
그리고 함께 일어선 연방대통령을 향해서도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방대통령님께 대고려연방의 국정자문위원장으로서 정중하게 요청드립니다!”
이 상황에서 연로한 연방대통령이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자세는 그저 멋쩍은 표정을 지어면서 주섬주섬 말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여움을 푸시고 일단 저희들 간에 대화를 좀 더 나누어 보시지요?”
정 위원장이 목이 탔던지 탁자 위에 놓인 물 컵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다시 말했다.
“두 번 말씀드리지 안 갔습니다!
연방헌법을 개정해서라도 헌법재판소를 해산시켜야겠습니다!
인민들의 총의로 선출된 연방의회가 공식적으로 제정한 법률이란 말입니다,
이런 법률을 두고서 위헌성을 따진다며 이러쿵저러쿵 말 많고 탈 많은 이 따위의 비효율적인 기구가 우리 연방에 존재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할 말을 다한 것 같으니 저희들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정 위원장은 오늘의 이 거사가 단순히 북측인민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정치이벤트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려는 듯, 연방대통령을 대하는 태도가 매몰차게 차가웠다.
연방대통령과의 간단한 눈인사조차 외면한 채 정 위원장 일행이 소장실을 나가버린 바로 그때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연방대통령이 일순간 얼굴색깔이 흑색으로 변하면서 몸을 휘청였다.
이때 소장실밖에서 대기 중이던 비서실장이 다급하게 달려와 혈압강하제를 긴급 복용하게 조치한 뒤에야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정 위원장과 동행한 네 명의 북쪽출신 국정자문위원들과 연방대통령까지 대고려연방을 움직이는 최고위의 권력층이 헌법재판소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외부에 알려졌다.
정 위원장 일행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왔을 때는 먹잇감을 발견한 내외신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서 포위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서울을 출발했던 민 대통령의 차량이 이 시각 광개토대왕 시로 들어섰다.
옆자리에 동석한 윤 소장이 태블릿 PC 화면을 통해서 국내외 통신의 뉴스 속보를 빠른 속도로 정독했다.
이것을 민 대통령에게 보여주자 화면 속에 나타난 자극적인 헤드라인 문구만으로도 민 대통령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겨야 했다.
“연방대통령님을 뵈어야겠어요, 그 어른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실지…”
‘정 위원장! 헌법재판소 해산하지 않으면 다시 갈라서겠다고 선언!’
‘긴급속보! 대고려연방 또다시 분단위기!’
‘헌법재판소를 구둣발로 걷어찬 민주주의의 패륜아!’
‘민주주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잊혀진 독재자의 도발!’